주디스 루이스 허먼, 김정아 옮김, 북하우스, 2024
외서 기획을 하다 보면 많은 원고를 검토하게 됩니다. 그중 계약까지 이르는 원고는 많지 않고, 책의 성격, 예산, 분량, 난이도 같은 다양한 이유에서 거의 대부분을 포기하게 되는데요. 우리가 출간하지는 못하더라도 꼭 읽고 싶다, 정말 아쉽다, 하는 책들은 상당수 나중에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됩니다. 『진실과 회복』 역시 그런 책이었어요. 주디스 허먼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관한 책 『트라우마』로 널리 알려진 정신의학자이지요.( 책타래에서도 오래전에 이 책을 소개한 적이 있어요.) 『진실과 회복』은 출간 이전 『 트라우마』의 후속편 격으로 소개를 받은 원고였는데요. 번역 출간된 이 책의 부제는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위한 정의’입니다. 『트라우마』에서 허먼이 강조하는 바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소수자와 약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렇기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요소를 떼어놓을 수 없다는 지점이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 트라우마 회복에서의 ‘정의’에 대해 조명하는 책입니다. 믿고 읽는 김정아 번역가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는 점도 덧붙이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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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쉐, 강영희 옮김, 은행나무, 2024
민음사 문학잡지 《 릿터》 기획회의에 이따금 참여하고 있어요. 제게는 문학 편집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한데요. 이번 회의에서 최근의 대만과 중국 소설 열풍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장바구니에 담게 된 책입니다. 『격정세계』는 함께 모여 책을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설입니다. 제게 흥미롭게 다가온 부분은 이 소설이 ‘문학이 가져다주는 앎과 구원’이라는, 아주 고전적이고도 어떻게 보면 나이브해 보이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책 소개에 따르면 “지리멸렬해진 현대인의 삶에 문학과 사랑이 격정을 불러일으켜 구원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긴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믿을 수 없을 만치 이상적인 주제를 다루는 소설이 한국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가 뭘까? 독자들은 지금 책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그런 궁금증에서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책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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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수, 미디어버스, 2024
제목, 주제, 그리고 표지 디자인. 시네필이라는 집단이 한국에서 등장하기 시작하고, 영화에 대한 책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인 1990년대를 의도적으로 소환한 디자인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도둑일기』는 동시대 시네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작권 침해 행위로 규정되는, 토렌트로 이루어지는 영화 공유, 자발적 자막 제작을 통해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영화들을 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해적질’이 어떻게 영화제가 아니면 볼 수 없을 영화들, 상업 제도 안에서 선택받지 못하면 선보일 기회가 없는 영화들이 관객을 만나는 통로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산업인 동시에 예술이기도 한 매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통 경험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고요. 저 역시 이 해적들 덕분에 수많은 영화와 만날 수 있었기에, 일종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읽어보려 하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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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엘리슨, 정윤미 옮김, 북스톤, 2024
현지에서 출간되었을 때 한국어판으로도 꼭 만나보면 좋겠다 생각했던 터라 국내 출간 소식이 아주 반가웠어요. 저자 마크 엘리슨은 집수리 보조로 시작해 40년 동안 집 짓는 일을 해온 ‘뉴욕 최고의 목수’입니다. 어떤 까다로운 작업도 못 한다고 말한 적 없이 가장 정교하고 호화로우며 아름다운 집을 지어왔고, 고객 중에는 데이비드 보위, 로비 윌리엄스 같은 유명인도 많다고요. 마크 엘리슨이 짓는 집처럼 책 역시 명확한 고객이 존재하고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상품인 동시에 그 이상의 무언가이기도 할 텐데요, 그래서 오랫동안 그런 물건을 만들어온 대가의 이야기에 대번에 관심이 갔습니다. ‘여전히 “마스터(Master)”라 불리기를 거부한다’는 점도 아주 멋지게 느껴집니다. 한국어판의 가장 멋진 점은 역시 BUILDING이라는 다소 얌전한 원제를 지금처럼 직관적으로 바꾼 판단이 아닐까 해요. 명확한 고객, 그러니까 독자에게 가닿을 수 있는 빠르고 정확한 방법을 고민한 끝에 나올 수 있었던 신의 한 수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배우고 싶은 감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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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아, 참새책방, 2024
『 랩 걸』 이후로 국내외 여성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꾸준히 소개되고 있는 것 같아요.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시작으로 국내 작가들의 이야기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고요. 반비 편집부에서도 야심차게 준비중인 책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갯가재를 연구하며 눈길이 닿지 않던 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생물학자이자, 갯가재와 연구 못지않게 가족과 아이를 사랑하는 리서치 맘의 에세이예요. (어제도 원고를 정리하다 감동적인 대목을 만나 자리에서 울먹울먹…… 어서 소개하고 싶어요!) 그렇다보니 비슷한 분야의 책에는 무조건 눈길이 가는데요. 이 책을 쓴 황정아 작가는 여성 과학자이고, 교수이자 연구자이며, 세 아이의 엄마입니다. 가정도, 연구도, 우주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 매 순간 모든 여성을 대표해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자세로 일하고 매 순간 자신과 싸워야 했다고요. 많은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곧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선택의 괴로움으로 돌아오는 상황이 아직도 여성들에게는 빈번하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이런저런 기로에서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며 살아온 여자들의 이야기를 저 역시 적극 소개하고 싶다고 주먹을 불끈 쥐게 됩니다. 우선 손안의 원고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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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설리번·벤저민 하디, 김미정 옮김, 비즈니스북스, 2023
위의 두 책를 골라놓고 보니 일과 삶이 어우러지거나 또는 불화하는 시간을 거쳐온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저는 일에 대해서, 일과 나의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편입니다. 책타래 구독자 여러분도 그러시겠지요? 요새는 일에 대한 자세를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책에도 꽤 관심이 가는데, 이 책 역시 그런 맥락에서 눈에 들어왔어요. 저는 맡은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는 것 못지않게 좋은 동료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 어쩌면 좋은 동료가 되는 것까지가 업무를 잘해내는 것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요, 이 책을 보면 어떻게 해야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을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장바구니에 넣어보았습니다. (이 글을 보고 있을 동료 여러분들, 제게 아쉬운 점이 보인다면 부디 언제나 기탄없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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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리, 정미영 옮김, 품(도서출판), 2020
뒤늦게 ‘푸른잔디회’라는 단체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뇌성마비장애인들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일본의 급진적 장애운동단체인데요. 이 ‘푸른잔디회’ 활동가의 인터뷰를 읽다가 눈에 띈 이름이 바로 ‘김만리’였습니다. 재일한국인 2세로 중증장애인이자 장애인권운동가로, 극단 ‘타이헨(態變)’을 창단해서 신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 담긴 다수의 작품을 만들어왔다고 해요. 『꽃은 향기로워도』는 '김만리'가 장애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써 내려간 책인데요. 일본 장애해방운동의 역사를 관통해온 그의 기록들을 통해, 자본주의에 반하는 몸의 표현들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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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경·김다희·조슬기·박연미·신덕호·전용완·이재영·김동신·박소영·오혜진·굿퀘스천, 아트북스, 2024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이 여전히 제게는 쉽지만은 않지만, 디자이너에게 책의 디자인을 의뢰하고 부탁하는 것만큼은 유독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언어로 소통해야 할 것인지, 이런 레퍼런스를 제안해도 좋을지, 디자이너의 상상을 제한하거나 불가능한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 이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진 책을 주로 펴내는 출판사 ‘사월의눈’ 운영자이기도 한 저자가 여러 북디자이너를 만난 기록을 담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편집자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 디자이너와 더 잘 대화하기 위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010년대 이후로 양적·질적으로 팽창해온 독립출판이 기존의 상업출판과 어떤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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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카 쿠르니아완, 박소현 옮김, 오월의봄, 2017
오랜만에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예매 실패로 두 편밖에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어디에도 가깝지 않은」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유독 기억에 남았습니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필리핀계 미등록 이주민인 감독이 9/11 이후 시민권을 얻지 못하는 자신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전반부, 할머니와 함께 마닐라로 떠나 가족의 역사, 더 나아가 스페인 제국주의와 미국의 필리핀 점령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후반부. 위에서 아래를 향해 매끄럽게 연속되는 식으로 가족사를 그려나가기보다는, 식민주의라는 맥락 속에서 분절적이고 파편화된 형태로 가족의 역사를 다룬 점이 무척 인상 깊었어요. 영화를 보고 나니 때마침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이 책이 떠올랐습니다.(인도네시아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요.) 서구가 아닌 시각으로 조각난 역사를 더듬어간다는다는 것에 대해 더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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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레터에서 '세계 책의 날'을 기념해, '인생책'을 꼽아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애정을 기꺼이 털어놓으며 자신의 인생책을 소개해주셨어요.
그중 구독자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세 편의 글을 소개합니다.
🧙♀️
재난 속에서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 책입니다. 기후위기와 사회적 재난으로 고통받는 우리 사회 구성원에게 깨닫게 해주는 지점이 많은 책이기도 하고요. 사실 리베카 솔닛의 책이라면 그냥 다 좋아합니다.ㅎㅎ―구독자 반디
"내 전부를 바치고 싶은 그런 책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이라니,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누군가가 부럽네요. 저는 '전부를 바치고 싶다.'까지는 않지만, 분기마다 다시 꺼내 읽는 책이 있습니다. 에리히 프롬의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인데요. 좋아하는 사람과 처음 만나는 날에 기념으로 구입해서 그 사람이 표지에 낙서를 해줬고, 처음 읽으며 무기력에 대해 알게 되었고 제가 무기력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몇 번이고 읽는 지금에도 새롭게, 혹은 그 사이에 또 잊어버렸던 나의 무기력한 모습을 알게 되어 항상 머리를 맞고 있습니다. 우울증, 번아웃, 성인애착장애로 조금씩 문제가 섞여 내가 정말 잘 못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때에, 그렇게 살지 말라고, 내 탓이 아니라고, 너는 지금 이러고 있지 않냐고 물어보고 알려주는 지혜를 매번 받아요. 오늘도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읽고서 감사하게 덮고 가방 속에 넣은 채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읽어줬음 좋겠어요.―구독자 망망
어느 순간, 고요한 적막이 끔찍하게 싫어서 언제든 주변에 소음을 만들어 놓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조용한 시간에는 내 내면을 들여다 봐야 할 것 같고....... 내 시끄러운 속이 다 들리는 것 같아 싫었거든요. 오랜 기간 나를 외면하다 보니, 자아는 없고 남들에게 최적으로 맞춰진 배려형 로봇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때 지인의 적극추천을 받아 읽게 된 책이 권여선 작가의 『각각의 계절』이었습니다. '아주 잘 살고 있다!'라고 선뜻 말하긴 어려운 여러 인물들의 삶, 그 속을 들여다보는 도중 자꾸만 보이는 내 모습에 부끄러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나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인정과 포용이 가장 필요한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어딘가 서늘하고, 지나치게 덤덤한 문체로 다가올 각각의 계절들을 살아가게 할 힘을 만들어준다 느꼈습니다. 추진력을 잃고 미동도 없던 날들에서 벗어나게 해준 책입니다.―구독자 공기
* 위 세 분께는 이벤트에 관한 메일을 보내드렸습니다. 확인을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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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없이 자연스럽게』 ⅹ 『인생샷 뒤의 여자들』 콜라보 북토크
'나'를 찍는 여자들은 나르시시스트일까요?
카메라 뒤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사진 찍는 여자들'에 대한 면밀하고도 다정한 탐구가 담긴 두 책, 『 빈틈없이 자연스럽게』와 『 인생샷 뒤의 여자들』이 만났습니다. 북토크에서 찍는 사람인 동시에 찍히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시대, 피드 안팎에서 마주한 얼굴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일시: 2024년 5월 24일(금) 저녁 7시 30분〰️ 장소: 서울 중구 서소문로 89-31 알라딘 빌딩 1층 강연장〰️ 패널: 황의진, 김지효〰️ 참가비: 무료〰️ 초대 인원: 40명〰️ 신청: 링크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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