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디자인의 핵심 중 하나인 타이포그래피가 문제였습니다. 로마자 알파벳과 한글의 생김새와 그것이 전달하는 느낌은 상당히 달라서, 그냥 똑같이 볼드한 고딕체를 택하기만 한다고 똑같은 느낌을 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디자이너에 따르면, “알파벳을 한글로 대체하고 보니 한글이 영문보다 획이 많고 덩어리감이 커서 다소 우악스럽게 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사진과 타이포가 서로 자기주장을 하며 충돌하는 듯하기도 했고요.” 기왕 동일한 디자인을 쓸 수 없다면 좀 더 한글에 걸맞은, 더 안정적인 디자인을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마치 미술작품 같은 느낌을 주는, 붉은 프레임 정중앙에 사진이 위치한 지금의 레이아웃입니다.
이 레이아웃으로 어느 정도 완성되었을 무렵, 불현듯 ‘디자인이 너무 강하지 않은가? 정작 텍스트는 훨씬 더 내밀하고 정서적인데, 원고의 그런 성격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디자이너는 제 우려를 듣고 완전히 다른 톤의, 훨씬 더 정서적인 시안을 만들어주었어요. 눈이 잘 보이도록 클로즈업하고 모노톤으로 처리한 새로운 시안도 사실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트랜스남성의 이야기인데, 트랜지션 후의 달라진 신체가 잘 보이도록 사진 전체를 보여주는 디자인이 맞는 것 같다.’는 고려, 그리고 ‘엘리엇 페이지의 당당함을 보여주고 싶다.’는 디자이너의 최초 의도를 따라 원안으로 돌아갔습니다.
표지가 책의 내용을 담아내는 얼굴이라면, 책이 가지고 있는 여러 성격 중 무엇을 제일 앞으로 보여주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계속해서 하게 했던 책입니다. 특히 소수자를 재현할 때, 그 사람을 어떤 모습으로 보여주고자 하는가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기도 했고요. 저는 지금 와서 돌아보면서도 결국은 맞는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