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닛은 장미를 심는 오웰의 행동이 미래의 편에 서서 인류의 내일에 기여하는 일이었다고 말하며, 오웰을 비롯해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어온 여러 사람의 이름을 거론합니다.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인물은 바로 러시아의 농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인데요. 바빌로프는 “5대륙 모두에서 식용 작물의 씨앗을 수집한 세계에서 유일한 인물”(180쪽)로, ‘종자 은행’이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떠올리고, 레닌그라드(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지명)에 세계 최대의 종자 은행을 설립하는 등 자신의 뜻을 구체적인 현실로 옮기는 데 성공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미래를 향한 메시지를 씨앗에 담아 전달하고자 했던 바빌로프의 인도적 열망은 가짜 과학자 트로핌 리센코에 의해 중단되고 맙니다.
리센코는 멘델주의 유전학*에 대립하는 반유전학자로서 스탈린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합니다. 그는 유전자가 변화와 발전이 가능한 개념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사상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해 설명하고, 스탈린 정권은 거짓말과 쇼맨십에 능한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합니다.
이러한 소련의 상황에 대해 한 기자는 “쇼맨십이야말로 소련의 가장 특징적인 산물”이라고 썼습니다. 현실을 개선하기보다 은폐하는 데 급급하고, 거짓말이 지성을 압도하게 된 체제를 비판한 것이죠. 오웰 역시 거짓말의 제국에 대해 이러한 비판을 남깁니다.
“전체주의가 진짜 무서운 것은 그것이 ‘가혹 행위’를 자행한다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진실이라는 개념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를 통제하려 한다.”(『오웰의 장미』, 198쪽)
정혜윤의 『앞으로 올 사랑』은 팬데믹 이후 달라진 인류의 삶을 조명하며 새로운 세계로 잘 들어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저자는 흑사병 시대에 쓰인 조반니 보카치오의 책, 『데카메론』 속 열 가지 주제를 제시하며 각 주제와 관련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새로운 사랑’의 형태에 대해 묻습니다.
그중 「관대한 마음으로 모험을 행하는 자의 이야기」는 앞서 솔닛이 언급한 농학자 ‘바빌로프’의 사랑을 소개하는 챕터로, 이 챕터에서 저자는 갖은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씨앗’의 힘을 믿었던 바빌로프와 동료들의 희망이 자연과 인간, 모든 생명을 연결하는 거대한 사랑의 시작점이었음을 이야기하는데요.
“그들은 다가올 세상에 책임감을 가졌다. 최후의 순간까지 삶을 미래와 연결시켰다. (……) 그들에게 다른 숨은 이유 같은 건 없었다. 대가도 보상도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하는 게 살아가는 이유 자체였다. 다른 이유는 필요 없는 것, 이것이 가장 급진적인 사랑이다. 이런 자발성이 주체적인 인간을 만든다.” (『앞으로 올 사랑』, 279쪽)
바빌로프가 죽은 후, 그가 수집한 씨앗들로부터 자라난 400가지의 새로운 작물들은 기근의 빈도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리센코의 거짓말이 뿌리가 썩은 식물처럼 힘없이 고개를 떨군 데 비해 바빌로프가 심은 씨앗은 사랑의 강한 힘을 증명하듯 오래 남아 우리에게 큰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음모와 거짓, 분쟁과 혼란이 가득한 절망의 시대를 통과해나가는 우리는 내일을 위해 무엇을 심을 수 있을까요? 『앞으로 올 사랑』과 『오웰의 장미』를 함께 읽으며 질문의 답을 찾아가실 수 있길 바랍니다.
*멘델주의 유전학: 획득형질의 유전과 환경에 따른 생명체의 가변성을 인정해 유전자의 고정 불변적 성격을 주장한 법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