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건·최윤성, 박현성 사진, 책읽는수요일, 2018
지난달, 짧게나마 속초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발 닿는 대로 걸으며, 지도 위에 뜨는 유명한 장소들을 찾아가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곳은 ‘칠성조선소’였습니다.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배를 만들고 수리했지만, 결국 2017년에 문을 닫은 곳이지요. 『나는 속초의 배 목수입니다』에는 수산업의 도시였던 속초에서 평생 목선(木船)을 만들어온 배 목수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양태인과 전용원, 두 배 목수의 말들이 조선소와 집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과 교차하는 책이지요. 타향인 속초에 와서 배 목수로 일했던,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의 결이 자아내는 이야기를 통해 관광도시가 아닌, 근현대사를 겪어낸 개개인의 기억 집합체로서의 속초를 만나보고자 이 책을 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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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 차이카, 박성혜 옮김, 필로우, 2023
혼자 살기 시작한 뒤로 인스타그램의 검색 탭에 세련된 인테리어 사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색으로 페인트칠한 벽에 무심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미드센추리모던 디자인 가구들, 때때로 그 위에 놓인 애플 기기들을 보다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 사진 속 제품의 가격을 검색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열망』은 자기 과시로 상업화된 ‘미니멀리즘’을 꼬집는 책입니다. (서문을 쓴 지아 톨렌티노의 말에 따르면) “곤도 마리에와 그 동지들이 …… 대중화한 삶의 방식”이 아닌 사상이나 태도로서의 미니멀리즘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니멀리즘의 기존 의미를 뒤집자는 것이지요. “우리의 침실은 깨끗해졌을지 몰라도 세상은 여전히 형편없다”는 책 속의 문장처럼 소비 중심의 인스타그램 게시글 너머의 세상을 직시하며, 새로운 삶의 태도를 얻길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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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밀리아 호건, 박다솜 옮김, 이콘, 2023
최근 ‘워케이션’이라는 신조어를 알게 됐습니다.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팬데믹 이후로 업무 형태가 유연해지며 생겨난, 휴가지에서 일하는 새로운 근무 형태를 뜻한다고 해요. 일과 휴식의 경계가 불분명해진 시대에 누군가에게는 생산성을 높이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잠시, ‘휴가지에서까지 일해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워케이션 역시 “좋은” 회사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혜택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업무와 휴식이 갈수록 분리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노동자를 옭아매지 않는 노동이 가능할까요. 점점 양극화되는 노동을 어떻게 변혁할 수 있을까요. 자본주의하에서 착취의 기획이 되어버린 노동을 고발하는 이 책의 원제인 “Lost in Work: Escaping Capitalism”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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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맨다 몬텔, 김다봄·이민경 옮김, 아르테, 2023
컬트는 제 오랜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왜 그렇게 컬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취약함 때문에 사람들이 일견 말이 안 되어 보이는 사상이나 집단이나 사람의 맹목적인 추종자가 될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컬트는 비단 ‘사이비 종교’의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니까요. 정치인, 인플루언서, 각종 힐링 산업까지, 지금 우리 주변에도 컬트의 틀로 읽을 수 있는 현상은 상당히 많습니다. 『컬티시』는 컬트의 여러 요소 중에서도 언어의 문제를 다룹니다. 우리를 자발적인 추종자로 만드는 컬트 언어는 어떤 형태를 하고 있는지부터, 피트니스 산업과 소셜미디어까지 아주 현재적인 컬트의 문제까지 다룬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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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정 외, 사우, 2022
우리의 지식체계는 서구의(제국의) 지식을 바탕으로 쌓아 올려져왔지요. 저 역시 배운 것은 유럽의 사상이고, 지금도 미국을 담론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데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점차 저의 시선이 아시아를 향하게 되는 걸 느껴요. 개인적인 관심사의 변화도 있겠지만, 세계의 지형 자체가 변화하면서 받게 된 당연한 영향인 것 같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동남아시아는, 그렇게 가까운 곳이면서도 ‘휴양지’로서 단편적으로 방문하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전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문화가 교차하면서 형성되어온 아주 매력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동남아시아에 관한 대중서 자체가 그리 많이 출간되어 있지는 않은데, 이 책은 한국의 동남아 연구자들이 ‘도시’를 중심으로 쉽게 쓴 책이라 하여 읽어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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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다카미쓰, 지비원 옮김, 메멘토, 2023
이 책의 부제는 ‘서양 학술용어 번역과 근대의 탄생’입니다. 마침 바로 위에 언급한, 우리의 지식은 서구를 바탕으로 한다는 내용과도 연결되는 책인데요. (서구 지식의) 번역을 통한 근대어의 탄생은 사실상 근대 그 자체의 탄생과도 같습니다. 이전에 없던 개념을 새로운 언어를 통해 만들어내는 과정이었으니까요. 이 책은 일본의 근대 학술사 연구자인 저자가 19세기 계몽사상가 니시 아마네의 「백학연환」이라는 문서를 알게 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이는 ‘서구의 학술’을 쉽게 설명하기 강의한 내용의 기록인데, 저자는 이 문헌을 통해 ‘학술’과 관련된 각종 용어가 번역되는 과정, 그럼으로써 어떤 말이 탄생하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한국에서 현재 사용되는 근대적 개념어 역시 많은 부분 일본의 영향을 받았기에 그런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 같고, ‘번역’ 자체에 관해서도 시사하는 점이 많을 듯해 담아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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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 이김, 2023
얼마 전 교통·철학 연구자 전현우의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를 재미있게, 약간 감동을 받아가며 읽었어요. 인간이 지닌 이동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이동의 위기에서 시작해, 기후위기 시대의 철학을 시도하는 글을 읽으며 내 이동의 열망을 어떻게 실현할지, 나의 이동이 기후위기를 가속화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떤 사회를 요구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어요. 여하간, 전현우 연구자의 신작 출간을 기다려왔습니다. 이 책에서는 “지역균형발전의 축 세종시의 관문이자 국내 유일한 고속철도의 분기역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문제점을 얼마나 끈질기게 파고들었을지, 철도에 대한 사랑(?)이 이번 책에서는 얼마큼 드러날지, 어떤 흥미로운 도표들이 있을지……! 무엇보다 저에게는 KTX 경유지 중 하나로만 알고 있던 오송역 ‘문제’를 통해 기후위기 대응에서 철도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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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라, 김경원 옮김, 원더박스, 2023
구술사, 생활사, 미시사와 관련된 작업을 좀 더 잘 알고 싶어서 고른 책입니다. 이 책은 제주 4·3 사건을 전후로 제주도를 떠나 일본에 정착하게 된 재일코리안 가족의 생애를 기록한 작업입니다. 재일코리안 3세인 저자는 사회학자이자 책에서 다뤄지는 가족 구성원의 조카라는 위치에서 생활사를 써나가는데, 책 소개를 보고 나면 이런 독특한 위치에서 4·3 사건과 디아스포라의 삶, 가족의 생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분석하고, 성찰했을까 궁금해요. 가족과의 거리 두기는 늘 아슬아슬하기도 하니까요.
이 책의 첫 문장이 기억에 남는데요. “우리 친척이 좀 ‘별난’ 사람들 같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소위 대문자 역사에서 배제되거나 가려진 이야기들을 드러내는 생활사의 방법론을 따라가다 보면, 정상성, 보편성 같은 개념이 자연스럽게 흩트러지는 것 같아요. 이 가족의 ‘별남’에는 어떤 역사와 맥락이 있을지 알아가는 독서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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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용 외 기획·편집, 미디어버스, 2023
이 책은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술 출판, 소규모 출판 단위들의 ‘실천’을 다룹니다. 예술 출판이라 하면 아티스트 북 등을 쉽게 떠올리게 되는데요, 이 책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출판인이나 아티스트 북 작가가 아닌 예술가, 디자이너, 기획자 등이 선보인 책 작업들, 책을 매개로 한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동명의 전시를 보고 책의 출간을 기다려왔어요. 전시장에 비치되어 있던, 아시아 여러 도시에서 온 책들을 재밌게 봤는데요. 제가 주로 읽고 만들어온 책과는 형식과 결이 다른 책을 넘겨보면서 이런 기획과 실험을 해볼 수 있고, 책에 이렇게도 접근해볼 수 있다는 것이 신나게 느껴졌어요.
“아시아에서 함께하기의 방식들”이라는 부제가 말하듯, 이 책은 싱가포르, 방콕, 홍콩 등의 예술/독립 출판 문화를 개별적으로 보기보다 “역사적이고 지역적인 맥락 안에 배치하고 함께 읽어내려” 했다고 말합니다. 편집자 Y 님이 여러 번 소개한 아시아에 관한 책들을 접하면서, 또 같이 일하면서 영향을 받아서인지 저도 아시아, 특히 동남아시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려 하는데요. 예술 출판을 주제로 아시아의 책, 서점, 창작자 들의 연결을 가늠해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이 책은 현재 더북소사이어티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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