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비가 동시에 펴낸 두 권의 리베카 솔닛 책, 『오웰의 장미』와 『야만의 꿈들』 어떻게 읽고 계신가요? 오늘 책타래는 『야만의 꿈들』의 위 문장에 착안해, 담당 편집자가 나름대로 그려본 리베카 솔닛의 ‘책 지도’입니다. 워낙 다작하는 작가답게 한국에 지금까지 출간된 책만도 15종에 달합니다. 역사가, 에세이스트, 활동가, 비평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작가이니만큼 솔닛의 책들도 몇 갈래로 나누어볼 수 있고, 독자 여러분이 알고 계신 솔닛의 매력도 각각 그 얼굴이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이 지도는 솔닛의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길잡이로 활용하셔도 좋겠고, 어떤 책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무슨 책과 무슨 책을 함께 읽으면 좋을지 하는 독서 가이드로 삼아주셔도 좋겠습니다.(오늘 레터가 좀 길지만, 15종의 책을 최대한 압축적으로 다루고자 했으니 너른 이해를 부탁드립니다.🙂)―편집자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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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에서 인간의 행동 중 가장 사유를 닮은 행위로서의 ‘걷기’를 주제로 삼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솔닛의 글쓰기야말로 걷기와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원래 가던 대로에서 벗어나 샛길로 접어들기도 하고 때로 길을 잃기도 하는 연상적인 글쓰기가 그렇습니다. 『야만의 꿈들』에서 네바다 핵실험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넓은 사막과 국립공원 곳곳을 걸어 다닌 길들은 ‘걷기’ 자체에 대한 사유(『걷기의 인문학』)로 이어졌고, 『길 잃기 안내서』는 이런 연상적 글쓰기를 보다 적극적으로 펼쳐 보인 책입니다. 글의 형식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적극적으로 ‘길 잃기’를 권하는 내용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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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은 『길 잃기 안내서』의 ‘컴패니언 북’(앞선 책과 나란히 가며, 앞선 책을 더 정교하게 심화하는 책)으로 소개되었던 책입니다. 원서 표지는 같은 디자인 요소를 공유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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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닛은 “『길 잃기 안내서』는 내가 산문을 통해 할 수 있는 일과 산문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에 자유로운 날개를 달아주어 2013년에 『멀고도 가까운』을 펴낼 수 있게 해주었”다고 말합니다. 두 권 모두 예상치 못한 연상과 연결을 통해, 솔닛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하여 에세이라는 장르의 글쓰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아주 풍요로운 책들이라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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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은 솔닛 스스로 자신의 책 중 가장 페미니즘적인 책이라고 일컬은 책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솔닛의 저서들 바탕을 흐르던 이 페미니즘적 사유는 보다 직접적으로 페미니즘 이슈를 다룬 책들, 2014년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를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를 탄생시킵니다. 페미니스트로서 솔닛에게 관심이 있으시다면, 아마도 가장 많은 분들이 이미 읽으셨을 책, 『남자들은……』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어머니와 딸, 돌봄, 연결과 연대……와 같은 중요한 페미니즘 주제들을 다룬 『멀고도 가까운』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사유와 문제의식은 뒤이어 출간되는, 다시 쓴 페미니스트 신데렐라 이야기인 『해방자 신데렐라』, 여성 작가로서의 회고록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에서도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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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 신데렐라』는 솔닛의 첫 번째 픽션인 동시에, 잘 알려진 신데렐라 이야기의 솔닛식 다시 쓰기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전에도 솔닛은 이런 작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길 잃기 안내서』의 챕터 「두 개의 화살촉」에서였는데요. 여기서 솔닛은 히치콕의 『현기증』에 등장하는 여성 조연, ‘미지’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추락에 관한, 상승에 대한 공포를 다룬 원작과 달리, 중력과 상승 모두 즐거움이 되는 새로운 이야기로요. 이후 정식 출간되는 솔닛의 픽션을 예비하는 이야기로서 이 작품, 책이 되지는 않은 이야기인 「슬립」을 만나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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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는 『길 잃기 안내서』에 대해 “어떤 책은 ‘이 작가가 지닌 감성의 엔진이 여기 다 모여 있구나.’ 하는 은밀한 발견의 기쁨을 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 그대로, 이 책은 ‘솔닛을 만든 이야기와 장소들’에 관한 책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솔닛이 쓴 에세이 중 가장 내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쓰이고 15년 뒤에 출간된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은 솔닛의 첫 번째 ‘회고록’입니다. 이 책은 특히 여성 작가로서 지금의 솔닛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개인적이고도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입니다. 젊은 솔닛과 중견 작가 솔닛이 쓴 이 두 권의 책에서 ‘무엇이 나를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만날 수 있고, 이는 독자들에게도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도록 이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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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인문학』이 담고 있는 중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는 ‘걷기의 위기’입니다. 솔닛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로 하여금 걷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살도록 강제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면서 마주치는 거리나 광장과 같은 공적 공간의 상실, 곧 공공성의 상실로 이어지고, 우리 몸의 경험 역시 파편화되고 가상화됩니다. 이런 테크놀로지, 몸, 속도의 문제에 관심 있으시다면 이런 주제들이 더욱 깊이 다루어진 『그림자의 강』을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19세기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한 한 사진작가를 출발점 삼아, ‘현대의 탄생’을 고찰한 이 책은 철도, 영화, 실리콘밸리까지 비교도 안 되게 빨라진 삶의 속도가 현대인에게 선사한 새로운 정체성을 다룹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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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머이브리지를 다루는 책이지만, 『그림자의 강』은 이미지 시대가 어떻게 열렸는지, 그러면서 곧 ‘현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까지 나아갑니다. 이처럼 단순한 평전이 아닌 솔닛 방식의 예술비평은 『오웰의 장미』에서 한층 더 무르익은 모습으로 재등장합니다. 이 책은 ‘장미를 심은 작가’, 현실에 발 딛은, 손으로 만져지는 기쁨과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긴 작가로서 조지 오웰을 재발견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오웰로부터 시작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 기후위기, 여성 참정권 운동, 스탈린주의와 제국주의까지 마음껏 나아가며 탐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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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닛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를 꼽으라면 ‘장소’가 빠질 수 없을 겁니다. 장소의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장소를 역동적으로 읽는 글을 쓰며, 또 장소는 솔닛의 여러 책의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야만의 꿈들』은 대표적으로 미 서부, 그중에서도 네바다 핵실험장과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무대로 하여 ‘인간은 장소와 어떻게 관계 맺는가’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과 『걷기의 인문학』 사이에 출간된 『마음의 발걸음』의 무대는 아일랜드입니다. 솔닛은 자신의 반쪽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 아일랜드를 찾아가고, 그 ‘뿌리 뽑힌 땅’에서 유럽 중심성과 정전의 권위를 무너뜨릴 이야기들을 건져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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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와 함께 『야만의 꿈들』의 두 번째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시민사회, 비폭력 직접행동으로 세상을 바꾸어내는 사람들입니다. 솔닛은 추상적인 희망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땅에 발을 딛고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운동과 변화들로부터 얻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변화가 일어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은 『어둠 속의 희망』으로 시작하여 이처럼 시의성을 갖고 현재에 개입하는 글을 모은 여러 권의 책들로 이어집니다. 정치적인 목소리로서 솔닛의 글이 궁금하신 분들에게 추천하는 갈래의 책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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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야만의 꿈들』의 ‘시민사회’는 운동이 펼쳐지는 장소에서 모이기도 하고 다시 흩어지기도 하는 유연한 연대를 보여줍니다. 이런 관심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더욱 본격적으로 다루어지는데요. 대재난의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자발적인 공동체가 갖는 힘에 주목합니다. 또 두 책은 대항서사(counternarratives)에 대한 관심이라는 측면에서도 연결됩니다. 『야만의 꿈들』이 동부/유럽 위주의 역사에 반발하며 새로이 써 내려간 미국의 역사라면, 『이 폐허를 응시하라』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재난 이미지에 대항합니다. 솔닛이 새로 쓰는 재난 서사는 재난이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전 사회의 문제와 약점, 그리고 재난 이후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기쁨과 연대의식에 주목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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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그린 솔닛 책 지도,
오늘 책타래 어떠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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