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화·성한아·임소연·장하원, 에디토리얼, 2021
참여관찰이라는 인류학적 방법론을 적용해 현장연구를 수행한 과학기술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책을 쓴 네 명의 연구자들은 ‘연루’라는 키워드를 통해 자신과 현장의 관계를 기술합니다. ‘연루되었다’는 표현이 인상 깊게 남았는데요, 민족지 연구자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상태를 잘 보여주는 이 말은 흔히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과학과 연구자가, 또 과학책 독자가 어떻게 새롭게 관계 맺을 수 있는가 하는 힌트가 되는 것도 같습니다. 저는 늘 현장연구 이야기를 좋아해왔는데요(TMI), 이 연구방법론을 좀처럼 취하지 않는 과학계 안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경험되었을까, 연구자들이 어떤 불화와 마주치고 협상했을까, 하는 내용이 다루어지지 않을까 하여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
기시 마사히코, 정세경 옮김, 두 번째테제, 2021
이 책도 구술사, 생활사와 질적연구에 관한 책이네요. 저자가 오키나와 사람들의 동화와 아이덴티티 문제에 관해 연구하면서 얻게 된 문제의식과 현장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제주에 다녀오면서 변방의 역사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가, 착취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지역과 관계 맺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하던 와중에 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어떻게 듣고 또 이야기할 것인가에 관해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버지니아 울프, 최애리 옮김, 열린책들, 2022
‘표지가 예쁘다고 있는 책을 또 사는 일은 그만두자.’라고 결심해왔지만, 이번에 새로 출간된 버지니아 울프 산문선은 장바구니에 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책장에 꽂아두기만 해도 배가 부를 것 같은 아름다운 컬러 아닌가요?) 여기 수록된 대부분의 에세이는 이미 국내에 여러 차례 소개된 것들이지만, 분명한 테마 아래 선별되고 새로이 엮인 구성으로 만나는 일은 또 다른 독서의 경험이지 않을까, 하고 합리화해봅니다. 게다가 『댈러웨이 부인』과 『등대로』 등 버지니아 울프의 여러 작품을 소개해왔던 최애리 번역가가 선별, 번역하고 해설을 더한 판본이라고 하니, 역시 덕후로서는 사지 않을 수 없는 선집입니다. |
우춘희, 교양인, 2022
한국 농촌 사회가 빈곤화, 고령화, 노동인구 부족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고 하죠. 젊은 층이 떠나버린 농촌의 일터를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는 기사도 자주 접할 수 있고요. 하지만 저는 먹을거리에 관한 한 마지막 ‘소비자’로만 살아오면서 그것을 생산해낸 사람들, 그들의 노동조건과 생활 환경에 대해서 자꾸 잊어버리게 됩니다. 건강한 먹거리, 자연환경을 고려한 식탁보다도 ‘사람’에 관해 더 무지했던 것 같아요……. 농촌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고통을 몰라도 되는 특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주노동 문제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저자는 직접 깻잎밭에서 일해가며 『깻잎 투쟁기』를 썼습니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1500일을 함께한 기록인 이 책은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현장과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여성 이주노동자, 농장주, 인력사무소 운영자 등을 만나고 취재해, 열악한 노동 환경뿐 아니라 한국의 외국인 고용제도, ‘불법 체류자’ 문제, 성폭력 문제, 이주민의 ‘건강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결코 ‘인력’으로 치환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삶을 말”하는 이 책을 통해 저의 무지를 한꺼풀 벗겨낼 수 있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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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야 이바시키나, 김지은 옮김, 책읽는곰, 2022
『해방자 신데렐라』를 만들면서 그림책을 자주 챙겨보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세계를 보는 관점을 새로 배우기도 하고, 아름다움의 기준이 넓어지기도 하고, 책이 별로 없었던 어린 시절을 보상하기도 합니다. 『해방자 신데렐라』에 아름답고 멋진 해설을 써주시기도 한 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김지은 선생님이 옮긴 그림책을 자주 검색해보는데요. 6월에 출간된 이 책은 온라인 서점 미리보기로 마리야 이바시키나의 수채화를 보는 순간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과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17개국의 71개 단어를 담고 있는 책이라는 소개 글을 읽고는 구매하기를 누를 수밖에 없었고요.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빗어 내리는 일’을 뜻하는 포르투갈어 cafuné가 표현되어 있는 표지를 얼른 실물로 보고 싶어요. |
전나환·남웅·이동윤·김대현, 토탈미술관, 2022
이 책은 2021년 겨울 세상을 떠난 전나환 미술 작가가 생전 마지막으로 선보인 개인전 ‘앵콜’의 도록입니다. 작가는 ‘오픈리 퀴어’로서 자신의 성적 지향을 작가적 정체성 삼아 퀴어 커뮤니티와 다양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회화,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꾸준히 발표했습니다. 성소수자 당사자들, 특히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다양한 옆모습을 담은 초상 시리즈를 오래 오래 봤던 기억이 있어요. 이 도록에 담긴 개인전은 작가가 처음으로 영상을 중심에 두고 만든 전시인데요, 방역지침에 따라 문 닫은 이태원의 게이클럽을 무대로 드랙퀸 '아네싸'의 퍼포먼스 과정의 안팎이 담겨 있습니다. 도록에 담긴 전시 기록 그리고 미술비평가 남웅, 역사학자 김대현, 영화평론가 이동윤의 글을 통해 이태원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로 번졌던 2020년을 되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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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은, 파란, 2022
최근에 조금 민망한 일이 있었어요. 출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곤 하는데 그날따라 소설 속 인물들의 말과 행동이 제 이야기 같은 거예요. 그 상황 속 감정이 어땠을지, 어떤 마음이었을지가 손을 잡은 것처럼 생생해서 눈앞이 흐려지더라고요. 스스로도 놀라 서둘러 핸드폰에 얼굴을 비췄는데 눈이 너무 새빨개서 내릴 때까지 바닥만 봤어요. 아마 비슷한 일을 근래에 겪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요란하게 읽지는 않았겠죠. 『그때 그 말들』에서 백지은 평론가는 그때와 그 말이 만날 때 생기는 경험을 전합니다. “비평의 의무는 경험이라는 개별적 지각, 즉 스타일의 자기 체험을 전개할 수 있는 지평을 (선택이 아니라) 발생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라고도 말하는데요. 제 민망한 경험이 선택할 수 없는 필연적 순간이었음을 전하는 것 같아 인상 깊었고 다른 사람의 그런 순간을 알아보고 싶었어요. 저자가 읽기(크리틱)와 쓰기(에세이)의 동행인 ‘크릿세이’라 명명한 이 글 속에서 또 어떤 필연을 발견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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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이, 냥이의야옹, 2021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갈 때면 늘 바뀐 거리와 만나게 됩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들르던 가게가 문을 닫기도 하고 흔적조차 없어져 공터로 변해 있기도 합니다. 다행히 늘 가던 마트, 극장, PC방은 그대로지만 쪼그라드는 지역 인구 앞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우울해지곤 해요. 그곳들이 모두 사라지면 내가 사랑하던 동네도 없어지는 걸까요. 『도시의 속살』에서 저자도 같은 생각을 해요. 그리고 자신의 도시를 남기기 위해 저자를 이루는 여성과 노동, 지역의 시선으로 부산 당감동을 재구성합니다. 한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전에 없던 도시가 탄생하는 과정을 보고 싶었고 그 끝에서 저의 도시를 남길 방법을 찾고 싶었어요. “구구돌스의 가사처럼 세상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너만은 내가 누구인지 알았으면 한다”는 마음으로요. 덧붙여, 책을 소개하는 만화가 너무 재밌어서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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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W. 사이드·데이비드 버사미언, 장호연 옮김, 마티, 2011
요즘 작업하는 원고에서 언급돼 장바구니에 담은 책입니다. “침묵하는 지식인에게”라는 부제가 무거운데요. 스스로 지식인이라는 자각은 전혀 없고 다만 ‘왜 늘 지식인은 침묵할까?’ 하는 고민에 답을 찾고 싶어 골랐습니다. 이 책에서 팔레스타인 출신 학자 사이드는 아르메니아 난민 출신 전문 인터뷰어 버사미언과 대담을 나눕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을 주제로 한 이 대담에서 사이드는 자신이 강단을 넘어 실천적인 정치에 참여하게 된 것에 대해 “내게 정말로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것이 “어느 순간에 당연한 어떤 ‘부름’에 이끌렸던 것”이라며 “거의 승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진실을 말하겠다는 의지의 문제”라고 답합니다. 지식은 넘쳐나지만 지식이 취해야 할 태도가 흔들리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침묵을 깨야 할지 이 책을 통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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