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타래를 시작하는 책은 서동욱의 『타자철학』입니다. 제게도 몇 년 만에 만들어보는 본격 철학서였는데요. 저자가 10여 년간 강의한 내용에 바탕을 두고 쓰인 책이라서인지, 혼자서라면 읽기 어려웠을 원전 텍스트들이 쏙쏙 이해되는 경험을 하며 만들었습니다.
‘타자’는 현대철학의 핵심 주제이자 오늘날 철학이 떠맡은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많은 문제는 근대 이래 성립된 자아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생겨난 부작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비인간과 환경을 도구적으로 대한 결과 맞닥뜨린 기후위기, 인종차별과 그에 따른 수많은 죽음, 소수자에 대한 반감을 바탕 삼아 집권한 극우 정당들…… 같은, 우리를 둘러싼 풍경 말입니다. 타자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타자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우리에게 타자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같이 던지고 또 고민할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하려 합니다.―편집자 Y
|
원서는 2018년에, 한국에서는 2019년에 출간된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이졸데 카림의 책입니다. 출간연도만큼이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가까운 철학이라는 생각이 물씬 드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핵심 주제어는 ‘다원화’입니다. 카림은 지난 이제껏 사회를 지탱해온 ‘상상된 공동체’, 즉 민족 국가라는 동질 사회의 환상이 지난 20~30여 년간 침식되었으며 그 결과 다원화 사회를 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다원화의 흐름과 그에 맞선 재동질화의 압력이 공존하고 있는 게 지금의 사회라고 말하며, 카림은 이 압력들이 개인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카림이 말하는 타자들은 이런 조건 아래에서 우리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변화하는 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존재들입니다. 유럽 사례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도 낯선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원화, 개인주의, 정체성 같은 개념들을 우리가 마주하는 사례들을 자료 삼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민족이 빈번하게 재등장하는 것은 민족이 침식되고 있다는 명제의 반박이 되지 못한다. 모순되게도 민족의 귀환은 오히려 민족의 침식을 가리키는 증거다. 귀환한 것은 ‘낡은’ 민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귀환한 민족은 다양한 대중을 묶기 위한 정치 서사가 아니다. 다양성을 ‘하나의’ 사회로 묶으려는 서사가 아닌 것이다.
오늘날 유럽 연합에 대한 저항으로 등장하여 자기 자리를 재탈환하려는 민족은 다른 무언가가, 통합의 서사로부터 분열의 서사가 되었다. 지금의 민족 서사는 국민의 50퍼센트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 민족 서사는 나머지 절반의 국민을 반대한다.”―『나와 타자들』, 30쪽
|
예전에도 책타래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책입니다. 당시에는 공동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소개했었는데요. 이미 제목에서 알 수 있듯(타자론과 관련된 단어들로 이루어진 제목이라고 생각한다면), 타자에 관해 사유하고자 할 때 대단히 유효한 여러 가지 참조점을 던져주는 책입니다. 하나 예를 들자면 ‘무조건적 환대’ 또는 ‘절대적 환대’가 가능한가, 타자에 대한 응답으로서 환대가 지닌 역설(‘적을 환대할 수 있는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관해 말하는 대목이 그렇습니다. 김현경은 이러한 환대가 불가능한 이상이라고 말하는 데리다에 반대하며, “절대적 환대가 타자의 영토에 유폐되어 자신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뻗치는 일, 그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자리를 주는 일, 즉 무차별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사회 안에 빼앗길 수 없는 자리/장소를 마련해주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환대가 필요하며 또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204쪽)라고 말합니다.(『타자철학』에서 다루어지는, 데리다의 무조건적 환대와 민주정에 관한 논의와 나란히 읽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 같습니다.)
인터넷 서점 리뷰를 통해 한 독자는 “콘크리트 치고 굳을 때까지 양생 기간을 지켜야 다음 작업을 하듯, 한 장 읽을 때마다 내 머리에 그 내용이 자리 잡을 시간이 필요했”(알라딘 독자 ‘잘잘라’ 님 리뷰로부터)던 책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번 책타래를 쓰기 위해 책을 다시 떠들어보면서, 저 역시 새로이 얻은 화두들을 가지고 ‘콘크리트 양생’을 다시 해보아야겠다 생각이 드네요. |
철학책 편집자 박동수는 2019년부터 ‘편집자를 위한 철학 독서회’를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이 책은 독서회에서 동료 편집자들과 함께 읽고, 검토하고, 의미를 찾아낸 열 권의 책으로 말하는 ‘오늘의 철학’입니다. 제목에 ‘독서 모임’이라는 말이 들어가지만, 모임 자체에 관한 소회나 경험이 아니라 모임에서 함께 읽은(그리고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과 또 함께 읽게 될) 책들을 소개하는 책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 책들은 그냥 철학이 아니라 ‘오늘의 철학’이라고 말합니다. 대부분 21세기에 나왔고 한국에서는 출간된 지 10년이 지나지 않은 책들입니다. 하지만 출간 시점만이 기준은 아닙니다. 각 부 제목은 이렇습니다. 1부, 타자들과 함께하는 삶. 2부, 느긋하게 이어 가는 대화. 3부,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방법. 책은 이 주제와 방법론과 지향점이 바로 오늘의 철학을 설명한다고 봅니다. 의식적으로 가려 뽑은 ‘동시대의 사유’가, 『타자철학』에서 다루어지는 사상가들과 어떤 흐름에서 어떻게 만나고 또 이들에게 비판적일 수 있는지 나란히 읽어보아도 좋겠습니다.
“철학책 독서 모임을 해 보면 그런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애초에 철학책이라는 것 자체가 일상의 언어와는 상이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지만, 철학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우리는 각자가 개념을 이해하는 방식이나 규범을 생각하는 방식이 서로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된다. 철학책이 규범과 규칙의 근거를 묻기 때문에, 철학책을 매개로 대화하는 우리들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규범과 규칙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따져 묻게 된다. 그러다 보면 대체 우리가 어디까지 소통할 수 있는지, 어디에서 소통이 불가능한지를 점차 깨닫게 된다.”―『철학책 독서 모임』, 14쪽 |
💌 독서 모임을 모집하고 있어요! 💌
『타자철학』을, 그리고 같이 읽으면 좋을 책들을 소개했지만, 역시 선뜻 손이 안 가는 ‘벽돌책’이죠. 포기하지 않고 함께 읽어보자는 취지에서 온라인 독서 모임을 마련했습니다. 4주간 하이데거, 레비나스, 사르트르, 들뢰즈 네 명 사상가를 다룬 챕터를 읽고, 5주째에는 저자 서동욱 교수, 연구자 강선형, 이솔 박사와 함께하는 온라인 북토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신청은 반비 인스타그램 @banbibooks에서 댓글을 달아주세요! |
(주)사이언스북스 banbi@minumsa.com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1길 62 강남출판문화센터 6층 02-515-2000 수신거부 Unsubscribe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