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애나 러스, 나현영 옮김, 포도밭출판사, 2020
논쟁적 SF 작가 할란 엘리슨의 단편 「소년과 개」(『제프티는 다섯 살』, 아작, 2017 수록)를 읽고 나서 장바구니에 담은 책입니다. 엘리슨은 제게 오랜만에 ‘아, 단편 읽는 재미가 이런 것이었지.’라고 생각하게 한 탁월한 작가인 한편,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소년과 개」는 대단히 여성혐오적이라는 비판을 벗어나기 힘든 소설입니다.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대중)문화 속에서 유구하게 남성 간 유대에 여성이 어떻게 사용되어왔는가를 그림같이 보여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는데요. SF 작가이자 비평가, 페미니스트, 퀴어 활동가인 조애나 러스의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에 실린 「소년과 개: 최종 해결」이 여기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하여 읽어보려 합니다. 이 글 외에도 「누군가 날 죽이려 하는데 그게 아무래도 내 남편인 것 같아: 모던 고딕」, 「최근 유행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 대하여」 등 흥미진진해 보이는 제목들이 목차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마침 인류학자 정헌목의 『SF와 인류학이 그리는 전복적 세계』(가제)를 기획하는 중이라서(이 책의 일부는 문학잡지 《릿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많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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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포메란츠·스티븐 토픽, 박광식·김정아 옮김, 심산, 2021
책의 부제는 ‘교역으로 읽는 세계사 산책’입니다. 672쪽에 달하는 만만찮은 분량의 역사서인데요. 소개를 인용하자면 “근대 유럽의 산업 혁명에서 비롯된 새로운 제조 및 교환 방식이 이전까지의 독자적이고 고립적이던 사회를 하나로 묶은 것이라는 관점에 문제를 제기하”는 책이라고 합니다. 저자들은 하나의 흐름으로 수렴되는 역사를 기술하기보다 세계 역사와 무역의 다양한 면모를 다각적으로 제시하려 했다고 해요. 제가 처음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게 된 이유는 동남아시아 항구도시를 무대로 활약하며 탄탄한 지역 네트워크와 큰 자본을 구축했던 여성 무역상들에 관해 더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 챕터 외에도 교역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 차 있는 차례로 구성되어 있어요. 저자들이 각각 중국 역사, 라틴아메리카 역사라는, 흔히 근대의 구심점으로 여겨지는 유럽이 아닌 지역 연구자들인 점도 책을 한층 더 흥미롭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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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샤 리네한, 정미나·박지니 옮김, 비잉, 2022
심리 치료법 중 하나인 변증법적 행동치료(DBT)에 관심이 있었지만, 한국에 출간된 DBT 관련 도서나 DBT 창시자 마샤 리네한의 저서는 너무 전문적이라 읽을 엄두를 못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리네한의 회고록이 번역 출간되었다고 해서 장바구니에 담아두었어요. 회고록이니만큼 DBT 자체보다는 리네한의 생애가 더 주되게 다루어지겠지만, 리네한 역시 오랜 기간 자해와 자살사고에 시달리던 정서장애 환자였기에 그런 생애와 관련되어 ‘살 만한 가치 있는 삶을 만드는 인생 기술’(이 책의 원제는 ‘살 만한 가치 있는 삶을 만들기(Building a Life Worth Living)’입니다.)로서 DBT에 관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양극성장애 환자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케이 레드필드 제이미슨의 회고록 『조울병,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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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디너tv 유튜브에서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 저자 강의를 진행했는데요. 패널로 출연하신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김도현 선생께서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 중 하나로 이 책을 추천해주셨어요. 제목인 ‘시설사회’란 “시설을 통해 시설 밖을 정상화하고, 지배권력을 유지·강화하는 사회”를 뜻해요. 그렇기에 구체적으로 집, 보호소, 쉼터, 요양병원, 도시 등의 장소에서 장애인, 노숙인, 난민, 비혼모, 탈가정 청소년, HIV 감염인 등이 어떻게 ‘시설화’되는지 밝히고, 시설을 낳는 억압의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시설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정상’이 무엇인지 규정하고 그 바깥을 은폐하는 방식이자 원리이고요. 장애인 이동권·노동권·탈시설권리 보장을 위한 운동이 이어지는 때, 이 책을 통해 시설이 어떻게 여러 소수자를 사회에서 배제하는지, 탈시설 문제가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해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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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시인의 아시아 여행기입니다. 문학 작가들의 산문 시리즈 ‘문지 에크리’에 속해 있어요. 이 독특한 제목이 일요일 밤의 불안감을 누르려 누워 있던…… 중에 갑자기 떠올랐어요.🙄 ‘대지를 흔드는 듯한 울림’,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의 글쓰기 등 SNS에서 본 책에 대한 강렬한 감상을 기억할 만큼 인상 깊은 책이었는데 왜 여태 안 읽었을까 싶었던 거죠. 특별한 제목만큼이나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책인 것 같아요. “제3세계의 여성시인”으로서 현실 판단과 자기 인식에서 시작하는 이 여행기는 시 쓰기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나는 여자하기와 짐승하기로 실재하는 아시아를 여행했다.”(14쪽) 읽고서 구독자분들과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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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하라 슌, 김미정 옮김, 글항아리, 2017
태평양 군도의 근대사를 다룬 책입니다. 추천받아 알게 된 책이에요. ‘해양쓰레기’를 매개로 인간과 비인간이 엮이는 과정을 탐구하는, 환경학 연구자 김지혜의 책을 기획 중인데요(《릿터》에 절찬리 연재 중💌✨). 그러면서 “수천, 수만 킬로미터 길이의 해저 케이블 수백 개가 깔려 있”고, “1년에 20억 톤 이상의 화물이 운반되고, 10만 척 이상의 배가 돌아다”니는 ‘해양’이라는 공간에 관심이 생겼거든요(「해양쓰레기 탐사기」). 군도라 하면 내륙의 시선에서 이국적인 자연, 또는 변방 정도로 타자화되곤 합니다. 태평양의 군도 오가사와라 제도와 이오 열도의 주민들은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일본군과 미군에 의해 난민 상태에 처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요. 일본 내에서도 잊힌 이들의 사회사적 경험을 다루면서 이 책은 군도와 섬 주민들의 관점에서 식민주의에 기반한 세계화의 전개 양상을 추적합니다. 군도와 바다의 눈으로 바라보는 현대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제 편협한 시각을 조금이라도 깨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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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A. 워개프트, 방진이 옮김, 돌베개, 2022
엊그제 트위터에서 영상 하나를 봤어요. 백인 남성과 여성이 농장에 찾아가 닭고기를 사는 영상 속에서 남성은 살아 있는 닭 중에서 가져갈 것을 직접 고르고 그 자리에서 닭을 손질하는 모습에 당황합니다. 연신 “마트에 가서 사면 안 될까?”라고 말하면서요. 다소 우스운 모습이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저 또한 고기를 소비하지만 직접 키우거나 잡지 않았으니까요. 『고기에 대한 명상』은 동물과 사람, 고기의 관계를 지우는 공장식 축산업의 다음을 생각하는 책입니다. 육식 시스템을 바꿀 배양육 산업에 주목하고 여기에 따라오는 여러 질문을 사회와 정치, 정의의 차원에서 답합니다. 인간 세포로 배양한 고기에 관한 문제나 동물을 죽이지 않고 고기를 얻는 것의 윤리적 문제 등이 특히 궁금했어요. 전에 없던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상상해보고자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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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노동자로 살게 되니 글을 쓸 때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틀린 글자가 있지는 않은지, 비속어를 쓰지는 않았는지 자꾸만 확인하게 되는데요. 친구들과 대화하는 채팅방에서도 그럴 때가 있어 가끔 답답합니다. 띄어쓰기도 틀리고, 줄임말도 쓰고, 초성만 남발할 때 통하는 게 분명히 있으니까요. 『미끄러지는 말들』에서 저자는 이렇게 잘못된 말로 취급되는 언어들을 수집합니다. 누가 들어도 일본어의 잔재로 들리는 공사 현장의 언어부터 외지인은 의미를 추측할 수조차 없는 방언,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너도나도 쓰고 있는 신조어까지 폭넓게 아우릅니다. 모두 순화의 대상이 되는 말들이지만 책은 그 생각에 의문을 던집니다. 그 말들이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할지 그리고 제할지 고민하는 일이 일에서도 또 삶에서도 중요해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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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여름의 사이, 활짝 핀 꽃들이 가득한 5월은 나들이를 가기에 또 축제를 열기에 가장 좋은 때가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대목을 노리는 축제가 한창인 와중에도 5월에는 결코 축제를 열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5·18을 기억하는 광주가 그곳입니다. 그렇지만 도시에는 여러 사람이 있고 각자 다른 것을 원합니다. 또 5·18을 기념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각자의 입장에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 도시를 통치하는가』에서 저자는 광주에 나타나는 각양각색의 욕망이 어떻게 부딪치고 위계를 만들어 도시를 구성하는지 분석합니다. 중앙과 지방, 문화와 경제, 기억과 개발이 갈등을 겪을 때 경계선이 어디에 그어질지 그리고 그 선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광주에서 찾아보고 싶어 이 책을 골랐습니다. 애도와 기억이 장소가 되는 이 도시가 곧 우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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