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책타래는 코로나19가 제기한 중요한 이슈과 과제를 낱낱이 살피고 그에 답하는 책에서 시작하려 해요. K-방역, 환자의 우선순위, 백신과 인권, 돌봄, 장애와 노화, 공포와 혐오, 의료에서 인간중심주의 넘어서기, ‘휴먼 챌린지’라는 논쟁적 사안에 이르기까지, 첨예하고 근본적인 주제들을 의료윤리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어요. 이 지긋지긋한 팬데믹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냐고, 이제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가는 것 아니냐고 반문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코로나19에 완전한 ‘종식’을 선언하긴 어렵다고 하죠. 또 다른 팬데믹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하고요. 무엇보다 내가 다시 건강해지기 위해, 개인과 사회가 ‘함께’ 건강해지려면, 감염병 대응 과정에서 제시된 논쟁거리를 깊이 재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건강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들이 던져집니다. 상태 아닌 동사로서의 건강이란 무엇일까? 사회, 경제, 환경을 건강 자체의 구성 요소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진정 건강하려면 ‘누구’부터 ‘무엇’까지의 건강을 고려해야 할까? 국가가 시혜적으로 지키는 국민의 건강 개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렇게 건강 개념을 재정의해낼 때 초유의 재난을 야기한 ‘이전’의 세계로 역행하지 않고 ‘이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합니다.
이 책을 만들면서 공교롭게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자가 격리를 경험했어요. 이열치열(?). 두렵고 아프고 외롭기도 한 시간 틈틈이 건강, 질병, 장애를 경험하고 사유하는 책들을 봤는데요. 격리, 질병, 장애를 내 삶에서 몰아내야 할 것으로 여기는 데서 한 발 나아가게 해준 소중한 책 두 권을 나누고 싶어요.―편집자 p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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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철학자와 임상 현장을 연구해온 의료인류학자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이에요.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는 “죽음이 지금 여기에 찾아왔고 내일 약속조차 못 지킬지” 모르는 상황에 있으면서 ‘그럼에도’ 의료인류학자 이소노 마호에게 서신 교환을 제안해요. 남은 생을 암 환자가 아니라 철학자로서 계속 살아가겠다는 결심의 표명이기도 합니다. 이 여정에 동반한 이소노 마호는 인류학의 통찰을 소개해가며 화두를 던지고, 선택의 방향을 제시하고, 두 사람이 “우연성에 몸을 내맡긴 채” “철저하게 대화”할 수 있게 북돋는 역할을 맡지요. 그렇게 진행되는 대화는 우연과 필연, 선택과 불확실성, 질병과 의료, 삶과 죽음을 넘나듭니다.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이 보호주의적 보건의료의 한계를 비판한다면, 이들의 편지는 환자를 배려하고 보호하려는 태도가 경직된 관계 맺기와 삶을 야기한다는 점을 짚어냅니다.
편지들은 구체적이면서 예리한 언어로, 울림이 큰 사색을 담아내고 있어요. 글을 주고받는 행위가 갖는 우발적 가능성, 마주침의 힘 등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데요. ‘불운’과 ‘불행’이 혼동되어 쓰인 편지가 그에 관한 힘 있는 사유를 이끌어낸 것처럼요. 또 스무 통의 편지의 행간에는 두 사람만의 우정의 방식, 고유하게 서로를 돌보는 관계 맺음이 넘실댑니다. 덕분에 함께 돌봄이 곧 함께 살아감이라는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의 말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어요.
“제가 지금 겪는 어려움은 아마도 미야노 씨가 저와 대화하면서 어떤 미래를 보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다는 것에서 기인합니다. 그래서 미야노 씨가 그 미래를 해방해준다면 저는 퍽 편해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미래란 죽음과 관련 있으며, 죽음에 대해 묻는 것은 이 사회가 고안한 대화의 규칙에서 원칙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심지어 제가 죽음에 대해 물어보는 이유도 저 자신이 편해지고 싶다는 자기중심적인 것입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픈 사람에게 해도 괜찮은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저는 사회가 정한 규칙을 넘어서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에게 미야노 씨는 아픈 사람도 암 환자도 아니라 철학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야노라는 철학자와 철저하게 대화한 끝에 펼쳐질 풍경을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171~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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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운동가이자 장애 권리 행정가, ‘미국장애인법 제정 과정의 원동력이었던 인물’ 주디스 휴먼의 자서전이에요. 이 책은 인간(human) 나아가 시민이 되기 위한 투쟁기이자 그럼으로써 결국 ‘내’가 되었던 휴먼(Heumann)의 일대기를 담고 있습니다. 책에는 어렸을 적 소아마비를 앓아 휠체어를 타게 된 그가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로 다섯 살에 학교 입학을 거부당하면서 장애인의 권리를 위한 긴 투쟁을 시작”했다고 소개되어 있는데요. 그의 회고를 통해 “사람들이 늘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차별”을 인정받기 위해, 비장애인이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누리고 있는 특권을 해체하기 위해 오랜 시간 투쟁해온 과정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휴먼이 이뤄낸 변화에 관한 이야기에는 어떤 행동에 어떻게 연대할지, “혼자 만들 수 없는” 변화를 어떻게 일궈낼 수 있을지, “함께 싸워줄 친구들”을 어떻게 모을지 등에 대한 영감과 깨달음도 담겨 있어요.
이 책과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을 나란히 놓아보면, 장애와 노화는 “우리와 분리된 병적 조건이 아니라 우리의 일부”라는 구절이 떠올라요.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삶의 조건”입니다. 장애와 노화를 삶과 사회에서 배제하거나 은폐하는 ‘시설화’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한 문제 제기와 함께,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과 노인을 어떻게 사회 안에서 돌볼 것인가를 묻는 일”입니다. 탈시설화는 단순히 “지역 바깥의 시설에서 지역 내 돌봄시설로의 전환”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장애인, 노인과 함께 살 수 있는 곳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차별금지법 제정과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투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두 책 모두 시의적절하게 우리에게 도착한 책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문제를 ‘고쳐서’ 해결되는 의료적 문제라고 보지 않았다. 우리는 접근성 부재가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고 보기 시작했다. 우리의 관점에서 장애는 누군가에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이러한 삶의 진실을 중심으로 인프라와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옳았따. 우리는 시민권 운동과 함께 성장했다. [……] 모든 사람이 사회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 아닐까?”―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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