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자 박철수는 한국의 주거 문화에 관해 가장 활발하게 또 대중적으로 발언하는 저자 중 하나입니다. 2013년 『아파트: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책을 통해 공간 논리라는 차원에서 아파트라는 주거형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도 했는데요. 2017년에 출간된 이 책은 그야말로 ‘박물지’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책입니다. 한국의 주거문화를 총망라하고 각각의 주거 양식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뿌리내리게 되었는가, 어떤 정책과 역사적 상황이 영향을 미쳤는가, 그러한 양식들을 통해 주조된 한국인의 문화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등을 매우 광범위하고도 세밀하게 다룹니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으로 처음에는 ‘백과’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었다고 하는데요, 백과라는 표현이 붙었어도 어색하지 않았을 만큼 방대하고 꼼꼼한 자료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거주 박물지’라는 최종 제목이 맞춤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도면, 사진 자료, 소설, 역사적 기록을 두루 망라하는 서술의 흥미진진함 덕분입니다. 책은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의 원형’으로서 상가주택으로 출발해 ‘불란서식 주택’으로 불렸던 양옥집을 거쳐, ‘식모방’에 얽힌 시대적 풍경과 ‘확장형 발코니’가 거쳐온 변화의 궤적을 들여다보고, 아파트 단지라는 양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와 모델하우스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살핍니다. 또 하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참고문헌이 바로 소설인데요, 저자는 한국인의 삶의 양식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이태준부터 황정은까지 한국 소설을 채택합니다. 그럼으로써 이 책에서 다루는 주거 양식들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이 도시와 집의 풍경들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틀로 그 의미가 선명해집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착하고 있는 마치 유전자와도 같은 내향적인 전용공간 중시 경향은 선분양제도와 모델하우스를 통해 우리에게 학습된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이 오롯이 사용할 수 있는 면적이나 공간은 최대로, 이웃과 나누거나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논리가 모델하우스에 이미 내재되어 있고, 우리는 그렇게 연출된 무대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학습 받고 훈육되었다."―『박철수의 거주 박물지』 357쪽 집과 주거에 관한 책은 주로 건축가나 사회학자의 저서가 많았습니다. 『집은 어떻게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나』는 신경과학과 고인류학의 눈에서 주거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 책이 핵심적으로 다루는 것은 바로 ‘집의 느낌(feeling at home)’으로, 인간이라는 종이 어떻게 집에서 살도록 진화했는지, 인간이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의 정체는 무엇인지 밝힙니다. 어떻게 보면 집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고 당연해서 굳이 책 한 권을 할애해서 다루어야 하는 문제인가, 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데요. 이 책의 탐색은 단순한 과학적 사실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집은 누구에게나 편안한 공간은 아닙니다. 그리고 모두가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집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집의 느낌’이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지는 현대의 주거 문제들이 잘 보여줍니다. 노숙인이나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편안한 집’이라는 것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듯 말입니다. 저자는 부동산 버블과 공공주택이라는 커다란 두 이슈를 중심으로 삼아, ‘집의 느낌’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현대의 주거 문제를 해결할 통찰을 제공하는지 보여줍니다. 한편 현대 사회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인간과 집의 관계(전통적인 가족 형태의 해체, 집보다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긴 현대인의 생활방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집과 관련된 즐거움들을 누릴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말합니다. 혈연이 아닌 이들과 가족을 꾸리고, 집을 단순히 휴식만 하는 곳이 아니라 더 많은 활동들이 벌어지는 곳으로 만들면서 말이죠. 코로나 이후 우리가 집과 맺는 관계가 더욱 중요해진 이 시기에 참고할 만한 구석이 많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집과 관련된 느낌들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와 안전감, 편안함(비록 이것은 종종 문화적 힘에 의해 정의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에게 기꺼이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것이 없을 때 더 잘 알게 될 가능성이 높은, 그런 종류의 즐거움일지라도 말이다. 바라건대 우리가 집의 느낌을 인식함으로써, 그러한 인식을 통해 그와 관련된 즐거움들을 증진할 수 있기를, 그리고 즐거움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즐기고, 그 즐거움이 떠났을 때에는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집은 어떻게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나』 23쪽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 중 하나가 공동체입니다. ‘아파트’와 ‘공동체’라니, 좀처럼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입니다. 이익집단으로서 아파트 재건축 조합이라든가 관에서 주도하는 (종종 실효를 내지 못하는) 커뮤니티 사업 등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도 합니다. 한편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가 주목하는 공동체는 이러한 집단들은 아닙니다. 이 책의 현장인 성일 노블하이츠 주민들 역시 서로에 대한 무관심을 미덕으로 여기며 지내왔지만, 단지 내 사고로 인한 아이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공동체가 출현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책의 마지막 장에 해당하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공동체란 무엇인지, 물리적으로 모여 산다는 하나의 조건 아래에서 공동체는 어떻게 가능하게 되는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공동체 또는 ‘사회’에 관한 질문을 숙고하고자 할 때, 인류학자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만큼 유효한 사유를 제공하는 책도 드물 것입니다. 김현경은 ‘사회적 성원권’과 ‘환대’ 같은 문제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학자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언제 ‘사람’으로서 받아들여지는가, 누군가를 성원으로서 환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어떻게 해서 국민이 되고 가족의 일원이 되는가 등의 질문을 차근차근 다룹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된 이론들을 다루면서도 그 이론들을 구체적인 사례와 현실 세계의 문제들과 긴밀하게 연결 지어 서술하기에, 추상적인 개념과 질문을 우리 자신의 문제로 가져와 사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입니다. "절대적 환대가 타자의 영토에 유폐되어 자신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일, 그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자리를 주는 일, 즉 무차별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사회 안에 빼앗길 수 없는 자리/장소를 마련해주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환대가 필요하며 또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환대는 실로 우정이나 사랑 같은 단어가 의미를 갖기 위한 조건이다."―『사람, 장소, 환대』 204쪽 |
책과 책을 잇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