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MI 부속도 읽어보자 ① 머리말, 차례, 부록, 주, 찾아보기 등 본문 전반부와 후반부에 붙는 부속 편집물을 보통 ‘부속’이라 일컫습니다. 부속의 지위를 부여받았지만, 부속의 내용이 독서에 큰 영향을 줄 때도 드물지 않습니다. 얼마 전 저도 «마음의 발걸음»을 옮긴 김정아 번역가의 ‘역자 후기’가 들어왔을 때, 원고가 새롭게 읽히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청년 솔닛의 이야기”, “한편으로는 청년 솔닛의 거세고 뾰족한 목소리에 매료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 젊은 여성 솔닛의 육체적 취약함을 함께 경험할 수밖에 없다.” 역자 후기를 통해 솔닛이란 화자의 얼굴과 표정이 한순간에 다시 그려졌고, 전에는 잘 설명되지 않던 글 곳곳에서 느낀 예리함과 꺼끌거림, 긴장감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훌륭한 역자 후기는 역시 좋은 가이드가 됩니다. 여러 모로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마음의 발걸음»을 만들면서 생각났던 책 중 하나가 W. G. 제발트의 소설들, 그중에서도 «토성의 고리»입니다. 이 책도 (고대 왕국의 터였던 영국 동남부 지방을) 여행하는 책이고, 제발트 역시 여행자이자 풍경과 폐허에서 흔적을 읽어내는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한편 제발트의 글은 어디가 중심가나 큰길인지, 어디가 샛길인지 애초에 구분이 가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여행하지요. 그렇기에 쉬어 읽기, 부분만 읽기, 순서 뒤섞어 읽기 등등이 가능하기도 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토성의 고리»의 차례를 보면, 심지어 5장이 “
[조지프] 콘래드와 [로저] 케이스먼트”라는 키워드로 시작합니다.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도 그 무엇보다 솔닛의 언어로 만난 이 로저 케이스먼트에 있습니다. 애초에 영국인이 아니지만 영국에 대한 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아일랜드의 퀴어 독립영웅. 그를 다루는 «마음의 발걸음»의 4장 ‘나비 수집가’는 책에서도 특별히 더 아름답습니다. ‘역자 후기’에는 그에 관한 한 편의 글을 읽겠단 독자뿐 아니라, 이 책 중 한 장을 읽어보겠단 독자에게도 이 4장을 추천한다고 쓰여 있기도 하고요. 케이스먼트가 침묵당한 것에 목소리를 줄 수 있었던 까닭에 대해, 솔닛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아일랜드인이라는 정체성 덕분인 것 못지않게 동성애자라는 정체성 덕분이 아니었을까?” 한데, 제발트도 «토성의 고리»에서 이와 아주 비슷한 통찰을 전합니다. “바로 케이스먼트의 동성애가 그에게 사회계급과 인종의 벽을 넘어서 권력의 중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억압과 착취, 노예화와 불구화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주었다는 것이다.” ― «토성의 고리», 161쪽 콩고 밀림에서 제국주의의 실체와 함께 아일랜드에선 보이지 않았던 아일랜드의 현실을 깨달아간 케이스먼트에게 콩고는 너무나 중요한 장소였겠지요. 게다가 그는 “이 지역 전체가 일종의 강제노동 수용소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 제국주의 정책의 잔혹한 착취 방식에 “무가치하게 허비되”는 원주민들의 목숨을 기록한 콩고 보고서를 써냅니다. 당시 현실을 더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그래픽노블이 «콩고»입니다. 콘래드가 자신의 콩고강 운항 경험을 소설화한(케이스먼트와 함께 지낸 경험도 등장) «암흑의 핵심»을 바탕으로 하고요. 콘래드 본인으로 등장하는 «콩고»의 주인공은 계몽 및 자선 사업으로 포장된 제국주의의 허상을 깨닫지만, “우리의 부르주아식 윤리는 이 대륙에 발을 딛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고 말한 케이스먼트 수준의 인식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이 간극은 목탄으로 그린, 절제된 대사로 구성된 장면들로 복합적으로 때론 먹먹하게 다가옵니다. 콘래드는 ‘킨샤사’로 가 거기서부터 콩고강을 따라 배를 운항해야 하는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당시 벨기에 레오폴드 2세의 지배 아래 레오폴드빌이라고 불렸고 그 근교의 원주민 거주 지역을 부르는 명칭이던, 오늘날 수도의 이름 킨샤사. 킨샤사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사회과학서가 있습니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는 도시사회학자 마이크 데이비스가 현대 도시의 문제, 그중에서도 슬럼을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조망하는 책입니다. 이미 모던 클래식 같은 책이지만 굳이 또 강력 추천하고 싶은 건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세계관이 조금은 달라지는 듯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 마녀들은] 가족의 비참함과 도시의 아노미를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는 희생제물의 역할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 남자아이는 사진자 빈선 베크만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람들 800명을 잡아먹었어요. 비행기 사고랑 자동차 사고가 나게 해서 죽였어요. 인어를 따라서 벨기에에 갔었어요. …… 아직 태어나지 않은 동생들도 내가 다 죽였어요.” ― «슬럼, 지구를 뒤덮다», 251쪽 특히 킨샤사를 다루는 대목이 기억에 남았는데요. 책에 따르면 “킨샤사는 공식 경제와 비공식 경제의 자리가 뒤바뀐 도시”,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보살핌을 제공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듯”한 도시입니다. 이어, 이런 위기가 어떻게 오순절파 교회를 성행시키고 마녀에 대한 공포를 되살리는지, 어떻게 극빈 가정 아이들 수천 명이 ‘마녀’로 낙인찍혀 거리로 내몰리는지를 다룹니다. 현대 도시 킨샤사가 겪는 이런 문제들을 앞서 소개한 책들, 케이스먼트와 함께 생각해보면 신자유주의 이전부터 존재해온 문제의 원인도 느낄 수 있습니다. 솔닛의 아일랜드 여행엔 ‘돌’이 자주 등장합니다. 왜 여행 기억에 돌이 많이 남았을까요? 그보다 솔닛이 들려주는 돌 이야기가 제 기억에 남았다고 보는 편이 맞겠습니다. ‘베라의 할멈’, “말없는 유령”으로 여러 세대를 지켜본 돌담, 이주민·외부인의 증거인 ‘환상열석’ 등등. 책을 읽고 아일랜드에서 가장 가보고 싶어진 곳은 석회암 침식 지형, 표지 이미지로도 쓴 돌땅 지역 ‘버른’이고요. 솔닛도 귀를 세울 듯한, 돌의 상징적 의미나 돌이 지닌 모종의 초월적 힘에 대해 여러 갈래로 펼쳐내는 책은 ‘사로잡힌 돌’과 돌에 ‘사로잡힌 사람’이 공존하는, 미술 작가 김영글의 «사로잡힌 돌»입니다. “요컨대, 수집의 기쁨은 돌의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함에서 온다. 내가 모을 수 있는 돌은 그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만약 세상에 돌이 단 한 개밖에 없다면 그것은 엄청나게 값어치가 나가겠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물일 것이 틀림없다.” ― «사로잡힌 돌», 16쪽 작가는 스스로를 ‘돌의 이미지를 수집하는 수집가’라고 말하며, 다양한 돌과 그 돌에 얽힌 신비롭고 때론 웃긴 기억·작업·사건 등을 무척 흥미롭게 엮어냅니다. 돌이라는 재료에 관한
“가벼운 주의산만의 상상력”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본다는 것의 의미, 재현과 구현의 차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등에 관한 생각과 닿게 됩니다. 고유한 방식으로 돌에서 이야기와 이미지를 길어내는 이 책은 또한 “이미지 수집가는 역사가가 과거의 사건들 앞에서 그러듯이 이미지의 파편들 앞에서 별자리를 찾는 사람”이라고 명명하는데요. 아일랜드의 풍경에서 공식 역사의 뒷면을 찾고, “고정과 유동, 기억과 망각, 순종과 혼종, 뿌리와 날개”의 이분법을 흩트리는 솔닛 역시 이미지 수집가가 아닐까요? 💌 TMI 부속도 읽어보자 ② 평소 보지 않으셨다면 ‘감사의 말’도 한 번쯤 확인해보세요. 구체적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 다양한 방법 속에서 제법 읽을 것이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때론 나의 ‘최애’ 작가가 또 다른 최애와 (솔닛과 마이크 데이비스처럼) 서로의 저작을 독려하고 의견을 교류하는 동료 관계임을 발견하기도 해요. 한편 인상 깊은 점은, 연구 및 저술 활동에 도움을 받은 도서관과 아카이브 기관, 사서에 대한 감사를 빼놓지 않는 책이 많다는 점입니다. «여행하는 말들»은 «마음의 발걸음»에서의 여행을 주로 언어의 차원에서 하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 다와다 요코는 열아홉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홀로 독일로 건너갔고, 완전히 낯선 언어를 배워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독일어와 일본어 두 나라의 말로 창작하고 있는, 실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입니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같은 극동아시아 주민으로서 젊은 여성 혼자 자기 의지로 유럽에 살면서, 양자택일하지 않고 일본과 독일을 오가는 삶이 얼마나 녹록지 않았을지 좀 더 가깝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나는 많은 언어를 학습하는 것 자체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 언어 자체보다 두 언어 사이의 좁은 공간이 중요하다. 나는 A어로도 B어로도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A어와 B어 사이에서 시적 계곡을 발견해 떨어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 «여행하는 말들», 52쪽 부제에 들어가 있는 ‘엑소포니’란 모어(태어나서 처음 익힌 말)가 아닌 언어로 쓴 문학, 또는 모어 바깥으로 나간 상태를 뜻하는 말로,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입니다. 다와다 요코는 여러 나라와 언어를 여행하며 각각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엑소포니를 예민하게 관찰하고 감각합니다. 그러면서 언어민족주의는 물론 번역, 소수언어와 공용어, 이주자문학 등 묵직한 주제를 유쾌하고 깊은 사유로, 경험적으로 섬세하게 풀어갑니다. 자기 자신이 말 그대로 ‘여행하는 말들’로서 역할 해나간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책타래 어떻게 보셨나요? |
책과 책을 잇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