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타래로 들어가기 전에! 케이틀린 도티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영상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한국 독자들의 존재가 왜 특별한지, 팬데믹의 시대에 우리는 왜 죽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반갑고도 친근한 편지, 지금 열어보세요. 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케이틀린 도티 영상 편지를 보실 수 있는 링크로 넘어갑니다. 😃 케이틀린 도티는 자신이 죽은 뒤 자연매장(시신을 그대로 묻음으로써 부패해 흙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장례 방식)을 함으로써, 우주로부터 빌려온 원자를 자연에 되돌려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에서는, 그 연장선상에서 시신으로 퇴비를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는 연구자들을 찾아가지요. 죽음 또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인류세’라는 용어가 이제는 낯설지 않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가 지구 전체에 유례없는 장악력을 발휘하고 있는 시대를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 인류는 지구의 거의 모든 요소를, 지형과 동식물과 바다와 태양의 열까지도 우리 자신을 위해 변형하고 이용하며 자연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인류세가 낳은 여러 가지 문제들, 즉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 도시화, 에너지 고갈 등의 수많은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기 어려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합니다. 박물학자이자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자연과 과학에 대한 아름다운 글을 쓰는 다이앤 애커먼의 『휴먼 에이지』는 인류세의 여러 측면을 살펴볼 수 있도록 독자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 책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도대체 왜 ‘인류세’라는 것인지, 인류가 지구에 대해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지부터, 우리가 저질러놓은 파괴적인 영향을 수습하기 위해 어떤 관점으로 자연과의 관계를 새로이 설정해야 할지까지 다루고 있는데요. 세계 곳곳을 누비며 애커먼이 수집한 장면을 태피스트리처럼 직조한 이 책은, 애커먼의 글 자체도 아름답지만 김명남 번역가와의 궁합 또한 환상적입니다. 노래를 듣듯 읽게 되는 책이에요. “우리가 유례없는 위업을 달성하고 대규모로 지구를 지배하기 시작한 이 시점에, 우리는 바로 그 때문에 우리 종의 미래가 괴로워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연은 우리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 단순한 진실을 설령 반색하진 못할지언정 최소한 존중하는 것, 우리 종의 구원은 어느 정도는 여기에 달려 있다.” ―『휴먼 에이지』, 181쪽 장의사의 책에서 출발했는데 웬 문화인류학, 싶으실 것도 같습니다.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의 태도가 우리가 문화인류학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태도와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어 고른 책입니다. 낯설고 다른 문화를 섣불리 대상화하지 않고 그것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조심스럽게 살피는 태도, 소통하고 공감하려 노력하되 외부인인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는 태도, 나아가 낯선 문화를 통해서 자신의 문화를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는 태도 말입니다.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은 한국의 문화인류학자들이 쓴 인류학 입문서입니다.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인류학이란 무엇인가, 인류학자는 왜 현지조사를 하는가 하는 큰 질문부터 젠더, 계급, 몸, 경제 등의 주제까지 아우르면서 쉽고 친절하게 문화인류학의 얼개를 그려 보여주는 책입니다. 각 챕터마다 더 읽어보면 좋을 책의 목록을 제공하고 있어 인류학 공부의 출발점으로 삼기에도 적합합니다. 2003년 출간된 책임을 감안하고 읽어야 하는 대목도 몇 있지만(개정판이 나오기를 기다려봅니다!), 그 점을 고려하더라도 충분히 도움이 되는 입문서입니다. “다른 문화와의 대면은 성장 과정에서 무뎌지거나 억압되었던 자신의 문화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과 감수성을 회복시켜 준다. 즉, 자기 문화를 보다 잘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문화인류학은 ‘인간의 거울’이라 불리기도 한다. 문화인류학자들이 구태여 다른 문화로 현지조사를 떠나는 것은 자신의 문화를 더 잘 알기 위해서, 즉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30쪽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가 의례라는 측면에서 죽음을 더 잘 다룰 수 있게 돕는 책이라면, 『슬픔의 위안』은 사별의 슬픔을 더 잘 다룰 수 있도록 돕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슬픔이라는 가슴 저미는 화제를 드러내놓고 말하기를 꺼리는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힙니다. 극심한 슬픔의 고통 속에서 혼자라고 느끼는, 뼛속 깊이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덜 외롭고 덜 두렵게 해주고 싶었고, 슬픔이란 주제에 대해 더 많이 말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고요. 그런 책을 쓰기 위해 저자들은 출판물, 영화, 음악 등의 여러 자료와 더불어 상실의 경험을 기꺼이 들려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데 엮어냅니다. 책은 사별의 슬픔이 우리에게 지우는 무게, 슬픔과 정직하게 대면하는 방법, 뜻밖의 곳에서 찾아지는 위안…… 등으로 이어지는 짤막한 에세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머리말에서 저자들은 작가 C. S. 루이스의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라는 말을 인용합니다. 슬픔에 관한 책을 고를 때 특히나 적절한 표현이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때로 어디서도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자신의 수렁에 고립되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닿는 것 자체가 길을 마련해주기도 합니다. “슬픔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심리적 특전은 슬픔이 애매모호함을 이해하게 해주고 삶의 진실이 절대 하나가 아니라 적어도 둘, 보통은 그 이상임을 일깨운다는 점이다. 슬픔은 자기 이야기만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변화시킨다. 중요한 사람을 잃고 나면 삶은 절대 다시는 명백해지지 않는다. 다시는 삶이 ‘그냥 한 가지’가 될 수 없다.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음을 알고 난 뒤에는, 지금껏 알던 삶이 갑자기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는 말이다.” ―『슬픔의 위안』, 245쪽 이번 책타래 어떻게 보셨나요? |
책과 책을 잇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