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틀린 도티의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 또한 전문 직업인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이 시체를 불태우는 화장장 직원의 에세이라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매주 시체를 보러 가는’ 사람,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가 쓴 책입니다. 이 책은 법의학이란 무엇이고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가, 사망 사건에서 법의학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부터 시작해 죽음을 둘러싼 여러 생각거리들까지 나아갑니다. 1부는 「CSI」나 「그것이 알고싶다」 같은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법의학의 현장을 다루고 있는 한편, 2부와 3부는 죽음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맞춤한 죽음학 다이제스트 입문서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실제 서울대학교 강의인 ‘죽음의 과학적 이해’를 토대로 하여 쓰인 책이라 밝히고 있는데요, 학부 수업 정도의 난이도로 뇌사, 자살, 웰다잉까지 여러 논쟁적인 이슈들과 그것을 둘러싼 논의들을 차근차근 따라갈 수 있게 도와주는 책입니다. 💌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TMI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이라는 제목으로 케이틀린 도티의 책을 소개하는 데에 주저와 망설임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지나치게 시니컬한가? 죽음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는 책인데, 너무 가벼워 보이지는 않을까? '시체'라는 단어가 거부감을 주지는 않을까? 그럼에도 결국 담당 편집자가 가져온 1안이었던 이 제목을 채택한 데는, 케이틀린 도티의 독특한 캐릭터와 신랄한 블랙 유머를 살리고자 하는 의도가 컸습니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몇 개월 앞서 출간되어 너른 호응을 받으며 저희에게 ‘시체’가 들어가는 제목에 대한 용기(?)를 안겨준 책이기도 합니다. 장 아메리의 책은 『늙어감에 대하여』가 한국에서 널리 읽혔지요. 『자유죽음』이라는 대담한 제목의 이 책 역시 아메리의 주저 중 하나입니다. 아우슈비츠 생존작가인 장 아메리는 이 책에서 죽음의 자유라는 논쟁적인 주제를 다룹니다. 아메리는 자살이 “모든 삶의 충동, 살아 있는 존재의 끈질긴 자기보존 충동에 맞서” “자유를 가장 급진적으로, 어떤 점에서는 가장 생생하게” 실행하는 행위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자살이라는 단어를 ‘자유죽음’으로 고쳐 부를 것을 제안합니다. 아메리는 이 책을 쓴 2년 후 그 자신이 수면제를 먹고 자유죽음을 결행합니다.
죽음을 다룬 문학과 철학을 넘나들고 자살에 관해 이제껏 이야기되어온 주류 논의에 반기를 들며 칼날처럼 사유를 전개해나가는 책인데요. 자살자를 멈춰 세우고 다시 ‘기능할’ 수 있도록 사회로 돌려보내는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목표에 대한 격렬한 반박도 인상적인 동시에 대단히 논쟁적입니다. 죽음 그 자체까지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관해 깊고 폭넓은 사유를 제공해줄 책입니다. “자살을 감행하는 사람에게 있어 자유죽음이란 모든 죽음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것이지만, 자유죽음은 지극히 자연적이다. 그것도 드높은, 유일하게 우리 손으로 설정한 기준, 즉 존엄성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죽음이다.” ―『자유죽음』, 89쪽 케이틀린 도티는 어린 시절 쇼핑몰에서 한 아이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를 목격한 후 줄곧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혔음을 고백합니다. 도티에게 그 공포를 다루는 방법은 죽음을 다루는 문화에 심취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중세사를 전공하고 마녀 재판에 관한 논문을 쓴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고 해요. 책에서는 언뜻 언급될 뿐이지만, 유튜브와 SNS에서 만나는 도티의 모습에서 그녀의 청소년기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10대 고스족으로 그 시간들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고요. 관에 들어가는 체험을 하고 있는 케이틀린 도티. 고스는 젊은이들의 하위문화로, 새까만 드레스와 마찬가지로 검은 메이크업, 십자가나 해골 등의 장신구를 떠올리면 그려보기 쉽습니다. 고딕 문학과 호러영화 등에서 가져온 음울한 이미지, 1970~80년대 수지 앤 더 밴시스(Siouxsie and the Banshees), 더 큐어(The Cure) 같은 밴드들의 음악과 함께 영국 청년들 사이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수지 앤 더 밴시스의 보컬 수지 수. 문화연구자 캐서린 스푸너는 『다크 컬처』에서 현대의 고딕 문화가 어떤 원류를 지니고 있고, 여러 매체와 장르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고딕 문화의 향유자들의 욕망은 어떠한지를 다룹니다. 『프랑켄슈타인』 부터 드라마 「버피와 뱀파이어」까지, 고딕 스타일의 문화사를 일별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아주 좋은 안내서가 될 겁니다. 2006년에 쓰인 책이기에, 특히 고딕 문화가 대중적으로 부상했던 당시 시대상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호러 장르의 변용과 재해석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에도 여러모로 참조할 수 있는 책입니다.
“고딕은 우리가 어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미디어가 조장하는 두려움 속으로 후퇴할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과 불안에 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와 담론 집합을 제공한다.”―『다크 컬처』, 42쪽 끝으로 신간 소개를 겸해 가져온 책은 곧 출간될 케이틀린 도티의 후속작,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입니다. 전작에서 화장장에서의 경험과 더불어 자신이 미국의 장례 문화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했던 도티는,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다른’ 장례문화를 찾아 나섭니다. 말 그대로 세계 각국에서 장례를 어떤 방식으로 치르고 시신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고 듣고 기록한 답사기입니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의 ‘실전편’이라고 해야 할까요, 장례문화 여행기라고 해야 할까요. (전작에서도 소개되었던) 시신이 흙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자연매장, 야외 화장, 시신을 미라화하는 인도네시아의 사례, 멕시코의 망자의 날 퍼레이드, 소원을 들어주는 ‘냐티타’로 보존되는 볼리비아의 두개골들 등등. 획일화되고 상업화된 장의업 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망자를 대하는 새로운 방법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케이틀린 도티 특유의 블랙 유머가 어김없이 발휘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10월 말의 핼러윈에 맞추어 출간을 준비하고 있으니,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와 함께 망자들이 돌아오는 날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4~6주 동안 분해되고 나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거예요.’라고 카트리나는 설명했다. ‘분자들은 말 그대로 다른 분자로 변하고 다른 것으로 변하는 거죠.’ 이러한 분자의 변모 때문에 그녀는 이 과정에 ‘재구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시신 퇴비화’는 일반 대중에게 약간 강렬한 느낌을 주니까.) 재구성의 마지막 단계에는 가족들이 그 흙을 모아 자기 정원에 가져다 놓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정원 가꾸기를 좋아했던 한 어머니는 그 자신이 흙이 되어 새로운 삶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근간) 이번 책타래 어떻게 보셨나요? |
책과 책을 잇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