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하면 무엇을 전문하겠어?/ 문학이요./ 문학? 좋지./ 어렵지요?/ 어렵기야 어렵지만 잘만 하면 좋지. 영애는 독서를 많이 해서 문학을 하면 좋을 터이야. 사람은 개인적으로 사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사는 것이 사는 맛이 있으니까. 좋은 창작을 발표하여 사회적으로 한 사람이 된다면 더 기쁜 것이 없는 것이야."―『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80쪽 『문학소녀』가 한국 사회에서 글 쓰는 여성이 폄훼되어온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닿게 되는 작가는 나혜석이었습니다. 당대를 앞서간 여성 지식인이자 페미니스트였던 나혜석은 여성 억압적 사회에서 스캔들에 휩싸여 고된 말년을 보냈습니다. 이혼 이후 조선의 정조 관념과 가부장제를 비판한 「이혼고백장」과 「신생활에 들면서」는 엄청난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는데, 이 글들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대단히 날카롭고 명징한 논설입니다. 2018년 출간된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은 나혜석의 소설, 논설, 수필, 대담을 가려 뽑고 현대어로 순화한 선집입니다. 근대 여성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연구하는 장영은 교수가 엮고 해설을 덧붙임으로써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당시의 시대상과 나혜석의 글이 갖는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해줍니다. 여성이 글을 쓰고 말을 할 때 세상이 변한다고 믿었던 나혜석을 처음 만나기에 아주 알맞은 입구가 되어줄 책입니다. 여공이라는 존재는 한국 현대사 안에서 '산업역군', '급속한 산업화의 희생자', '계급 해방의 영웅' 등의 양가적인 이미지로 타자화되어왔습니다. 페미니스트 역사학사 루스 배러클러프는 이 책에서 여공에 대한 기존의 서사와 거리를 두며 한국 여공의 계보학을 새로 씁니다. 배러클러프는 1989년 한국을 처음 찾았을 때 또래의 십대 여공들을 만나게 됩니다. 낮에는 미싱을 돌리고 밤에는 『테스』를 읽던 이 여성들은 언젠가 자신의 글을 쓰고 싶어 했습니다. 이들의 문학적 열정에 매료된 배러클러프가 후일 한국의 여공들에 대해 쓴 박사논문이 이 책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배러클러프는 강경애부터 신경숙에 이르기까지 여성 노동자들의 자전적 수기와 소설을 분석하며, 이들의 실제 열망과 좌절을 읽어냅니다. 이 책의 부제는 '섹슈얼리티, 폭력, 그리고 재현의 문제'입니다. 섹슈얼리티와 폭력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가 여성의 노동과 별개 범주가 아님을 밝히고, 그 안에서 여성 노동자가 통제되고 동원되는 복잡한 역학을 밝히는 분석은 날카롭고 정확합니다. 언어를 빼앗긴 존재들이 스스로 말하고 쓴 것들에 귀를 기울이며, 이들이 어떻게 재현되어왔고 또 이들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에 관해 묻는 이 책의 질문은 사회에 대한 문학적 개입과 읽고 쓰기의 의미를 숙고하는 데에도 대단히 중요한 물음이 되어줍니다. "이 책에서는 여공들이 품었던 깊은 열망을 탐색하고, 그들이 원했던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디에서 즐거움을 찾았고, 누구로부터 승인/인정을 받고자 했는지 찾기 위해 여공들의 텍스트를 다시 읽고자 했다. 이 책에서는 여공에 대한 수많은 재현에 내재된 위선적인 오마주 대신, 우리에게 산업화 시기의 삶에 관해 새롭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여성 노동자계급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추적하고자 한다."―『여공 문학』 21쪽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은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읽기와 쓰기, 고독과 연대, 병과 돌봄, 삶과 죽음, 어머니와 딸의 관계……. 이 중 어디에 초점을 두어 읽느냐에 따라 그때마다 전혀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고요. 오늘은 이 책의 여러 테마들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된다고 할 수 있는 읽기와 쓰기, '이야기하기'가 가진 힘을 중심으로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솔닛은 자아가 우리의 삶이 만들어내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야기들을 엮어내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가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우리의 한계를 알아차리고 넘어서며 또 다른 누군가가 됩니다. 이것은 많은 동화의 기본적인 골자이기도 합니다. 솔닛은 우리가 그렇게 우리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을 만남으로써 변신하고 성장한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자아를 만들어내는 일에 근본적으로 이야기를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동시에 읽고 쓰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의사소통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솔닛은 책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한 많은 서사들을 호출하고, 자신이 만나온 이야기들이 어떻게 자신을 바꾸어놓았는가를 말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도 우리가 마주친 이야기들이 어떻게 나의 자아를 조형해왔는지를 다시 살필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가 된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책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마치 숲 속으로 달려 들어가듯 그 안으로 사라졌다. 나를 놀라게 했고, 지금까지도 놀라게 하는 것은 이야기의 숲과 고독 그 너머에 건너편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건너편으로 나가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직업의 특성상 고립되며, 또 그래야 할 필요가 있다. 가끔 재능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재능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희귀하지 않다. 오히려 그 재능은 많은 시간 동안의 고독을 견디고 계속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작가는 작가이기 전에 독자이며, 책 속에서, 책을 가로지르며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또한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서, 매우 친밀하지만, 지극히 외롭기도 한 그 행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멀고도 가까운』 96쪽 |
책과 책을 잇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