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카우프만의 『인문학의 미래』는 미국에서 1977년에 출간되었고, 한국에서도 1998년과 2011년에 두 차례 소개된 적이 있는 책입니다. 원 저술 시점으로부터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한국에서 다시 펴낸 데에는, 이 책이 여전히 ‘인문학’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울림과 각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카우프만이 주요하게 지적하고 있는 1970년대 미국 대학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가 한국의 현재 상황과 놀랍도록 닮아 있을 뿐 아니라, ‘인문학 공부’의 본질에 관해서도 거의 실용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의 구체적인 제언들을 하고 있는 책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서평, 번역, 편집’을 다루는 챕터에서, 지식을 매개하는 직업적 역할에 대한 통찰과 반성을 많이 얻기도 했고요.
한편 이 책은 학교 안팎에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 책입니다. 이번 책타래는 여기에서 출발해, 공부를, 그중에서도 ‘인문학’ 공부를 둘러싼 고민들을 확장시킬 수 있는 책들로 준비해봤습니다. 공부를 시작하기 참 좋은 계절인 3월, 여러분에게 이 책들이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편집자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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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포스트 시대의 지식 생산과 글쓰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연구자의 탄생』은, 열 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자신의 문제의식과 지식 생산에 관해 쓴 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문사회서를 만들면서, 또 널리 알리고 읽히게 하려 늘 고심하고 있는 저 역시 이 책을 기획한 편집자의 문제의식에 무척 공감했는데요.
"인문사회 출판의 역할 중 하나가 학계에서 생산된 지식을 일반 시민들과 연결하고 사회적 담론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때, 연구자들의 이야기는 왜 과거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할까? 여전히 좋은 연구자들이 존재하지만, 왜 기존에 인문·사회과학의 일이었던 것은 문학과 에세이의 몫처럼 보일까? 왜 문학으로부터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를 알고자 하고, 에세이로부터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났을까? 인문·사회과학의 언어, 학계에서 생산되는 지식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출판시장에서) 매력적일 수 있을까?”―『연구자의 탄생』 출판사 책 소개 중에서
그동안 인문사회 출판의 역할이라고 여겨진 문제들이, 점점 더 문학과 에세이에서 소화되고 또 독자들도 그러한 통로를 더 환영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형 안에서, 이런 고민은 출판편집자의 몫만은 아닐 겁니다. 1차적으로 담론을 생산하는 연구자들(이 책의 저자들)은 물론이고, 오랜 기간 인문사회서의 독자였던 이들에게도 중요한 화두일 것이라 생각해요. 이 책의 저자들은 연구자인 동시에 매우 적극적으로 ‘대중’(학계 밖) 독자를 향하는 작업들을 꾸준히 해온 필자들이기도 합니다. 각각의 글은 지식 생산과 글쓰기를 향해온 자신의 사적인 경로를 한국 사회라는 지형 안에서 성찰한 서로 다른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독자로서든 연구자로서든 편집자로서든, 인문사회라는 분야에 발 딛은 많은 이들에게 현재적인 영감과 통찰을 제공하는 책입니다.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도 오혜진이 언급했던, 2011년에 같은 결의 콘셉트로 출간된 『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변동』(김항, 이혜령, 그린비, 2011)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중견 인문학 연구자들과 당시의 젊은 인문학자들의 인터뷰 및 대담을 통해 한국 인문학의 궤적을 드러내려 했던 책인데요. 약 10년의 간격으로 출간된 『인터뷰』와 『연구자의 탄생』은 그 언어에서나 관점에서나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이 두 책을 비교해보시는 것도 흥미로운 독서가 될 듯합니다.)
"이 글이 연구자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과 동료 연구자들 그리고 연구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민들에게 읽히기를 바란다. 나의 이야기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동시에 오늘날 연구 영역이 풀어야 할 과제와 문제의식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는 자신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문제일 수도 있다. 모든 연구자가 자기 자신의 문제를 연구 주제로 삼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처한 문제나 환경을 외면하거나 직면하지 못하는 것 또한 문제이지 않겠는가. 긴 시간 많은 자원을 들이고 또 공부하며 연구하는 이 지난한 삶을 오늘도 살아가는 이들에게 우리는 왜 연구자가 되려고 했고, 왜 이 일을 하고 싶었는지, 당신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지 묻고 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천주희, 『연구자의 탄생』,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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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학생(배우는 사람)’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고 소개하는 저자 정승연의 『세미나책』은, 말하자면 인문학 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실용서입니다. 제목 그대로 ‘세미나를 하는 법’을 친절하게, 구체적으로, 먼저 세미나를 해본 사람의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담아 알려주는 책이에요. ‘독서 모임’과 ‘세미나’는 무엇이 다른지, 같이 세미나를 할 사람들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세미나를 진행하는 데에는 어떤 방법들이 있는지, 세미나에 적합한 인원은 몇 명인지, ‘발제’나 ‘정리문’ 같은 여러 장치들은 왜 고안되었고 우리의 공부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와 같은 아주 기초적이고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세미나라는 공부 형식이 낯설어서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도움이 필요한 독자부터, 세미나를 많이 해왔지만 ‘망한’ 경험도 많아 도움을 받고 싶은 독자까지 유용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을 역설하고 훌륭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문학 공부는, 아니 모든 공부는 혼자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음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고 논쟁해야만 더욱 풍부해질 수 있음을, 그 과정에서 아주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책이에요. 저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공부하는 설렘’을 오랜만에 기억해냈고, ‘세미나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 혼자 읽으며 미적지근한 느낌을 받았던 문장이라도 내 앞의 사람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세미나 시간에 모여 있을 때 그 사람이 자신이 느낀 흥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합니다. 내게 와서 죽었던 문장이 다시 부활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그 사람의 ‘흥분’에 감염된 나의 무의식은 내가 읽었던 모든 것들을 새롭게 배치합니다. 그건 텍스트의 의미가 다시 태어나는 사건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도 있습니다. 근사한 일이지요.”―『세미나책』,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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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TMI: 『인문학의 미래』는 디자인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본 책이기도 합니다. 표지의 ‘미래’라는 글자가 책의 하단, ‘책발’까지 이어지며, 뻗어나가고 확장되는 미래의 이미지를 형상화했습니다. "처음에 제안한 디자인은 제목의 의미와 느낌, 그리고 받침이 없이 뻗어 있는 ‘미래’ 활자의 형태와 본문 하단 여백 등의 조건이 모두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명쾌한 디자인입니다.” 이경민 디자이너의 이 메일은, 어떤 디자인을 가능하게 하는 데에는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어 공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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