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우승·김은정·이승택, 메멘토, 2022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 책을 읽다 보면 한국어로 쓰여 있음에도 도무지 뜻을 알 수 없는 표현과 마주하곤 해요. 답답함에 원서를 찾아보면 생각보다 더 쉬운 표현일 때가 많아요. 왜 이럴까 늘 고민하던 차에 『현대 한국어로 철학하기』를 보게 됐습니다. 이 책은 철학 표현들이 번역될 때 일상 언어를 반영하지 않고 옮겨지는 것에 문제를 제기해요. 철학 전공자에게는 익숙하겠지만 일반인에게는 도통 와닿지 않는 표현을 하나하나 지적하면서요. 그리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번역어로 무엇이 가능할지 제안합니다. 제목처럼 한국어로 철학하고 싶은 저로서는 무척 반가운 주제였어요. 반비에서도 곧 번역 걱정 없는 한국 철학자의 책이 나올 예정이에요. 한국어로 하는 철학에 풍덩 빠져보세요. ![]() 김재형, 돌베개, 2021 오미크론으로 술렁이는 요즘입니다. 확진자 수는 연일 치솟지만 주변에 확진자는 없는 모순적인 상황이 편치 않아요.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건 어딘가로 그들을 격리하기 때문일 테죠. 보호를 위해 하는 일임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것이 자칫 ‘밀어내기’가 되진 않을지 걱정입니다. 『질병, 낙인』은 지금의 코로나 상황과 꼭 닮은 100년 전 한센병 발병을 주제로 합니다. 병원균의 전파를 막고자 사회를 통제하고 격리 시설과 나병원을 세우는 과정은 국가가 어떤 식으로 건강에 개입하고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지 극명히 보여줍니다. 새로운 병이 닥쳐오는 오늘날, 건강과 돌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 반비도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 전에 이 책으로 과거를 돌아보면 어떨까 합니다. ![]() 존 캐그, 전대호 옮김, 필로소픽, 2022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를 조명한 책이 흔치 않아 보자마자 장바구니에 넣었던 책입니다. 제임스가 창시한 프래그머티즘은 흔히 한국에서 실용주의로 번역되는데요. ‘실용’이 주는 느낌 탓에 과학과 비슷한 철학이라는 오해가 많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용주의는 쓸모 있는 철학, 다시 말해 삶을 더 낫게 하는 철학입니다. 플라톤이나 데카르트를 마주칠 때 ‘이런 구닥다리가 중요해?’ 하는 생각을 해본 적 없으신가요? 프래그머티즘은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 비교적 젊은 철학입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 대신 커피 마시는 현대인의 고민에 답하는 제임스의 프래그머티즘을 이 책에서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됩니다. 2주 전, 다큐멘터리 피디이자 저자인 김현우와 소설가 김연수가 함께한 『타인을 듣는 시간』 북토크가 열렸어요. 질문하랴 이야기 들으랴 채팅창 보랴 정신없으면서도 너무 즐겁던 와중에 책 장바구니가 무거워졌는데요. 북토크의 주인공이 ‘논픽션 독서 에세이’인 만큼 북토크 내내 흥미롭고 좋은 논픽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날 소개받은 책 몇 권을 여기 나눠봅니다. 책을 당장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두 분의 재능이 자꾸만 빛을 발했거든요! ‘나의 세계가 얼마나 협소한지 깨닫기 위해서,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체의 한 인간으로서 논픽션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고요. ![]() 사이토 하루미치,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0 농인 사진가 부부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아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특히 북토크에서 아이가 부모가 소리를 못 듣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에 관한 대목을 듣고, 이 책을 꼭 읽고 싶어졌어요. 또 이 책은 “서로 다른” 언어와 몸, 그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를 섬세하고 따듯하게 보여줄 것 같습니다. 청인 아이와 농인 부부가 다를 뿐 아니라, 청인 집안에서 태어나 음성언어를 훈련받으며 자란 저자와, 농인 집안에서 태어나 수화언어로 소통해온 그의 아내 역시 다르다는 것을 정확히 드러내니까요. ‘우리’가 서로 다른 존재임을 깨달은 날을 ‘기념일’이라고 칭하는 저자의 감각과 생각이 무척 궁금합니다. ![]() 로빈 월 키머러,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2020 북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의 식물생태학자 키머러는 이 책에서 “원주민들의 토박이 지혜와 과학의 섞어짓기를 모색”합니다. 원주민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겸손한 과학자의 언어와 태도를 익힌 저자의 사유는 인간과 자연이 호혜적 관계를 회복하는 길에, 자연을 정복하는 (과학) 지식이 아닌 새로운 지식에 가닿지요. 발췌문들을 살피다가 이런 문장을 기억해두기도 했어요. “우리는 어떤 장소에 살아 있는 옛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새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그저 이야기꾼이 아니라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으며 옛 이야기의 실에서 새 이야기가 직조된다.” ![]() 스터즈 터클, 김지선 옮김, 이매진, 2015 방송인이자 전문 인터뷰어인 스터즈 터클은 한 가지 주제로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한 결과를 엮은 독특한 책을 내왔어요. 이를테면 50여 명의 지극히 개인적인 구술사를 통해 미국사를 그려내고(『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133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집으로 미국 민중의 역사를 재구성하죠(『일』). 하나의 테마 또는 질문에 대한 갖가지 답을 기록함으로써 한 사회를 그리는 그의 작업은 보통의 역사서나 사회과학서에서는 얻을 수 없는 디테일로 가득합니다. 그의 여러 책 중에서 제가 담은 것은 간호사, 호스피스, 신부, 사형수, 참전 군인, 에이즈 환자 등 죽음 앞에 서본 64명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을 다루는 책! ‘잘 죽을 준비’는 늘 반비 편집부의 관심사 중 하나니까요. ![]() 박지원, 김혈조 옮김, 돌베개, 2017 한국의 고전 산문에 크게 관심을 가지거나 주의 깊게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열하일기』를 장바구니에 담게 된 건, 『타인을 듣는 시간』 저자 김현우 선생과 김연수 작가의 북토크를 들으면서였어요.(이날 북토크에서는 이 책뿐 아니라 무수히 많은 논픽션 영업을 당했습니다……) 잘 쓴 산문이자 잘 쓴 여행기라는 두 분의 추천도 한몫했고, 두 분이 함께 찍은 다큐멘터리 『김연수의 열하일기』를 통해 새롭게 관심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논픽션 작가’로서 연암 박지원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 임민경, 아몬드, 2022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의 저자 임민경 선생의 신작이 출간되어 냉큼 담았습니다. 이 책의 띠지에는 “자해의 역사와 정의부터 이유와 회복까지, 자해에 관한 가장 논쟁적이고 균형 잡힌 탐구”라는 문구가 쓰여 있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제가 기다려온 책이기도 한데요.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를 만들 당시, 자해와 같은 테마를 다루는 파트에서 상당히 조심스러워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고할 수 있는, 접근성 높은 책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그런 맥락에서 저에게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 황유나, 오월의봄, 2022 책 제목이 일컫는 ‘남자들의 방’이란, “룸살롱, 단톡방, N번방, 벗방……” 등 여성에 대한 폭력-상품화가 벌어지는 공간들입니다. 저자는 이런 공간들을 '남자-되기의 장치'로서 들여다본다고 합니다. 한국 사회의 남성(성)이 구성되는 유희/놀이들이 얼마나 문제적인지를 지적하는 논의들이 있어왔는데, 이런 맥락에서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평범한 한국 남자’의 형상을 치밀하게 살펴보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에 추천사를 쓰시기도 한 김주희 선생의 책들(『레이디 크레딧』, 『페미니스트 타임워프』)과 나란히 읽어보려 해요. 이번 책타래 어떻게 보셨나요? |
책과 책을 잇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