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오늘 레터의 메인 도서인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가 나왔습니다. 이 책의 저자 박미소는 오랜 세월 동반자처럼, 친구처럼, 연인처럼 가까이해온 술과의 관계가 중독으로 발전하면서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알코올중독을 치유해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자신의 중독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 사회적, 문화적, 생물학적, 역사적 실마리들을 찾아가는 여정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술 많이 마시기로 유명한 업계인 언론계 종사자,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기진맥진한 워킹맘, 경력 단절 이후의 불안과 우울을 남몰래 부엌에서 술로 달래는 전업주부, 남자들에게 지고 싶지 않았던, 인정욕구 강한 술꾼 아버지의 딸…… 저자는 자기 삶의 여러 측면에서 알코올과 깊이 관계 맺을 수밖에 없었던 경로를 추적하고, 나아가 한국 사회가 얼마나 알코올 친화적이며 어떻게 사람들을 중독에 취약하게 만드는가를 탐색합니다. 이 책과 함께 읽을 책들 역시 중독에 관한 도서들입니다. 반드시 술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한 번쯤 빠지게 되는 중독이라는 함정에 관해 탐구한 책들을 소개하려 합니다.―편집자Y 술을 마셔본 적 있고 무언가에 중독되어본 적 있고 글을 쓰려 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롤모델로 품어보았을 작가, 캐럴라인 냅의 대표작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입니다. '중독 3부작'으로 유명한 냅의 저서들 중에서도 가장 널리 읽힌 책이 아닐까 합니다.(다른 두 권은 최근 『욕구들』과 『개와 나』로 복간이 되었습니다.)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의 저자 박미소도 이 책을 인상 깊게 읽은 기억에 관해 몇 번을 언급합니다.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이 '나도 나의 중독에 관해서 써야겠다.'라고 마음먹게 한 것에 대해서도요. 냅은 이 책에서 자신의 평생을 함께한 술과 관련된 애착과 갈망, 두려움과 결핍에 관해 예리하고도 정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이 강렬한 인연의 기록을 읽다 보면 원 부제가 '사랑 이야기(A Love Story)'인 것도 절로 이해가 됩니다. 한국 사회에도 다수 존재하는, 겉으로는 완벽하게 일과 일상을 수행하지만 술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고도 적응형 알코올중독자'의 초상을 통렬하게 그려낸 수작이기도 합니다. "나는 별장에서 식구들과 함께 앉아 있다가, 화장실에 간다고 나와서는 내 방에 몰래 들어가 가방에 숨겨온 스카치를 병째로 들이켰다. 술은 식도를 태우며 내려갔고, 나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것은 따뜻하고 푸근했다. 만일을 대비해서 보험을 들어놓는 듯한 기분이었다. 보험, 바로 그랬다. 가방 속에 든 스카치는 내게 안전을 보장해주었다. 그로 말미암아 나는 저녁 식사 내내 마실 와인은 충분한지, 내가 술을 너무 빨리 마신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는 않을지,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이상한 눈치를 보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술잔을 다시 채울 수 있을지 조바심내지 않고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욕구가 지나치게 강렬해졌을 때도 나 자신을 돌볼 수단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25쪽 작가와 예술가는 '술 많이 마시는 직종'으로 유명합니다. 술(중독)과 창작을 둘러싼 오래된 신화, 술이나 약물이 '특별한' 이야기를 자아내는 연료가 된다는 신화도 상투적일 만큼 오래되었지요. 레슬리 제이미슨의 『리커버링』은 이런 신화에 경도되어 있던 젊은 작가가, 알코올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이야기에 관한 또 다른 관점을 얻어가는 과정의 기록입니다. 제이미슨은 언제나 창작에 관해서는 '클리셰에 저항해야 한다.'라고 배웠다고 말합니다. 그런 그녀가 알코올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찾은 AA 모임('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 알코올중독 환자들의 자조모임)에서 만난 것은 정반대의 관점이었습니다. AA 모임은 '단순하고 상투적인 이야기'를 자신들의 신조로 삼습니다. 이는 나 개인의 중독 이야기가 다른 이들이 참조할 수 있는 서사가 된다는 철학과 관련이 있습니다. 내가 겪은 중독 이야기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 또한 겪은, 겪게 될 이야기이기에 가치가 있다는 관점입니다. 제이미슨은 AA 모임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술을 끊고, 이들의 집단적이고 단순하고 환원적인 서사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리커버링』은 술과 중독에 관한 책인 만큼, 이야기와 스토리텔링에 관한 책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야기가 말해질 가치가 있는가' 또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관한 책입니다. 제게는 이 점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어요. 이야기를 사랑해온 많은 사람들은 이 책에서 저마다의 질문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또 하나의 중독 회고록”이라고 구글에 입력하면 여러 페이지가 검색되는데, 주로 어떤 책이 “그저 또 하나의 중독 회고록”만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광고문들이다. 한 저자는 자신의 책이 “그저 또 하나의 중독 회고록”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한 편집자는 자신이 받은 원고가 “그저 또 하나의 중독 회고록”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고집스러운 합창은 이미 말해진 이야기에 대한 대체적인 경멸, 그리고 서로 엇비슷한 장르에 대한 냉소적 견해를 보여준다. 전에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 비슷한 이야기를 또 듣고 싶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이 동일성, 그저 또 하나의 중독 회고록이라는 비난을 완전히 뒤집는 게 바로 회복이다. 여기서 이야기가 똑같다는 건 정확히, 그것이 말해져야 하는 이유가 된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기 때문에 당신의 이야기는 유용하다.”―『리커버링』 401쪽 다이어트 역시 중독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이 책에서 그려지는 다이어트와 거식과 폭식의 경험은 알코올중독을 다룬 책들에서의 그것과 무척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소개합니다. 드라마 「앨리 맥빌」의 배우 포샤 드 로시는 이 책에서 10대 시절부터 겪어온 섭식장애에 관해 지극히 솔직하게 서술합니다. 모델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다이어트에 대한 집착은 그녀에게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배우로 데뷔한 후에도 자신의 몸에 대한 처벌에 가까운 통제는 지속됩니다. 충분히 예쁘지 않아서, 충분히 성공하지 못해서, 충분히 이성애자가 아니라서 느끼는 결핍에 대한 해결책은 극단적인 식이조절과 혹독한 운동이었습니다. 포샤 드 로시는 몸에 대한 이 강박적인 태도가 결국 인정욕구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10대 때 엄마에게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했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배우로 성공하려면 성적 지향을 감춰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으며, 자신의 여러 '핸디캡'을 만회하려면 날씬한 몸을 갖추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 결과는 37킬로그램까지 내려간 몸무게와 구석구석이 고장 난 몸이었습니다. 어두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포샤 드 로시의 글쓰기는 대단히 유머러스합니다. 저자가 자신의 강박을 객관화하며 써내려가는 섭식장애의 경험들은 소름 끼칠 정도로 감각적입니다. 껌 한 통을 다 씹어버리고 '망했다'는 생각에 하이힐을 신고 건물 계단을 미친 듯이 뛰어 오르내리거나, 요거트 하나를 몇 끼니에 걸쳐 세심하고 정밀하게 소분해 먹는 장면의 생생한 묘사가 엄청난 흡인력이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여성들이 경험하고 있을, 지독한 자기 통제, 그리고 그 통제를 상실해버리는 순간의 경험에 관해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아침에 그렇게 열심히 달리기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침대에서 빠져나와 깊숙한 런지 동작으로 거실을 지나 욕실까지 갔다. 오늘은 150칼로리를 덜 섭취하고 설사약 스무 알을 먹어야지. 그러면 좀 낫기는 하겠지만 정말 겁나는 건 요거트 165그램을 먹고 살이 찔 거라는 게 아니었다. 내가 정말 겁내는 건 통제력을 잃었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완전히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욕실에서 나와 거실로 갈 때도 런지 동작을 하며 갔다. 울음이 나왔다. 이렇게 울면 칼로리가 얼마나 소비될까? 울면서 런지하기. 적어도 30칼로리 정도는 되지 않을까?”―『너 어젯밤에 뭐 먹었어?』 15~16쪽 |
책과 책을 잇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