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적·경험적으로 동감되는 질문을 담은 제목과 오피스빌딩 사진이 너무 잘 달라붙어, 본문을 펼치면 정말 ‘일하는’ 느낌일 것 같은 책이에요. 페미니즘과 마르크시즘의 관점에서 노동 문제를 다뤄온 케이시 윅스는 이 책에서 노동을 의문에 붙일 수 없는 ‘당연한 것’, ‘좋은 것’으로 간주하고, 정치적 논의 및 비판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현대 노동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이런 노동사회는 ‘노동윤리’와 ‘가족윤리’의 합작으로 유지됩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말로 대표되는 “노동윤리의 핵심에는 성실한 노동, 긴 시간의 노동이 고결할 뿐 아니라 그런 노동이 불가피하다는 가정”이 자리합니다. 일자리 불안정성이 높아진 탈산업화 시대에 노동윤리는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단순한 근면뿐 아니라 노동자의 마음, 감정, 관계까지도 요구하죠. 열정·기획력·창의 등을 요구받는 우리에겐 이미 익숙한 것이기도 합니다. 한편, 성별 노동분업을 포함한 가족윤리는 전통적인 생계 부양자로 상정되는 남성 노동자에게 ‘가족임금’을 주는 등 성별 임금격차를 정당화하고, 여성이 무급 가사노동을 담당하게 하면서(“가족은 사회적 재생산의 사유화된 장치로서 기능한다.”) 노동사회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에도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보다 간명하게 설명되어 있는데요. 두 책을 같이 읽어보면『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에서 주요하게 제기되는, 여성들을 포박하고 있는 능력주의의 문제나 탈노동사회 담론 등을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윅스가 말하는 ‘가사노동 임금 요구’, ‘가사노동의 거부’ 같은 의제가 노동사회 내 어떤 문제를 가시화하고 비판하려는 것인지 상대 책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 역사적으로 노동은 임금노동과 동일시되고, 임금노동은 남성성과 연결되었으며, 무급의 가사노동은 비생산적인 여성의 일로 여겨졌다. 여성의 타자화는 이런 역사적 과정을 통해 가능했다. 산업화 초기, 가정 내 무급노동이 비노동의 (자연화되고 여성화된) 모델로 정립되면서 (이제 남성화된) 일의 개념과 대비를 이루며, 그런 일의 개념을 지탱해 주게 되었다. 여성화된 가사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이와 더불어 등장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105쪽. ‘외롭지 않을 권리’, 사회적 약자·소수자도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 권리를 실현하는 방안으로 ‘생활동반자법’을 제안하는 이 책은 돌봄은 민주주의의 과제이고, 고독과 외로움 역시 정책적 과제라고 말합니다. ‘생활동반자 관계(두 성인이 합의하에 함께 살며 서로 돌보자고 약속한 관계)’를 지원하는 법안의 실행은 곧 혈연관계 또는 결혼으로 이룬 정상 가족이 아닌,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한다는 의미겠지요. 1인 가구 보편화 등에 따라 기존의 결혼·가족 제도로는 현재의 돌봄 공백을 충분하게 회복할 수 없습니다. 또한 돌봄은 또한 사회화·시장화된 영역이 충족시켜줄 수 없는, 내 주거지에서 ‘아주 친밀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한 영역이죠. 이 대목에서 여성 청년들이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감에서 벗어나려면 소비나 ‘덕질’, 소셜네트워킹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시대 여성, 이방인, 비인간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존재들과의 관계 맺음이 필요하다는『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의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1인 가구 여성들은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행복주택에 집중되어 있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주택 사업에 항의하면서 ‘세금을 내는 만큼의 혜택’을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생활동반자법 운동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재분배의 정치나 가족의 의미 확장을 통해 ‘단절된 개인’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곧 페미니즘 정치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가장 개인적이고 고립된 방식의 소비로 풀어내지 않고, 국가와 사회의 변혁 및 제도 변화를 거쳐 공동의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 운동입니다.”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259쪽 이 책을 읽고 크게 깨달은 점은, 이런 제도가 청년뿐 아니라 중년층이나 노년층 모든 세대에게, 성소수자나 장애인 등 여러 사회적 약자에게 안전망과 울타리가 되어준다는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생활동반자법이 보장하는 주요 혜택인 주거권이 현재 신혼부부 등 일부에게만 한정되어 있는 정책 수혜의 폭을 적극적으로 확장해낼 수 있다는 점도 특히 고무적이었어요. 또한 제도나 법이 개인의 행복과 삶과 만나려면 어떤 세심한 고민과 상상력이 필요한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하는 사람과 같이 삶을 꾸릴 자유가 헌법적 권리라면, 그 틀이 꼭 혼인이어야만 할까? 혼인으로만 제한하는 것이 어떤 정당성이 있을까? …… 결혼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의 권리나 우리 사회의 공익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면 혼인만이 ‘특별한 한 사람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는 길은 아니다. (중략) ‘소중한 한 삶을 가질 헌법적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혼인 외에도 더 많은 사람들, 그만큼 다양한 행복 여정을 포용할 수 있는 유연한 제도가 필요하다.” ―『외롭지 않을 권리』174~176쪽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활동가이자 작가인 저자 고금숙은 느슨한 관계망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과 함께 제로 웨이스트 실천하고 연대하며 변화를 이뤄내기 위해 그간 쌓아온 활동과 기술을 들려줍니다.『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서문에서 ‘소문자’의 삶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해,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명제를 따라 대문자의 삶으로 나아가고, 그 경험들을 자기만의 하나의 삶의 양식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일상, 그것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이다.”라는 카프카의 말을 인용한 것이 또렷합니다.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이 제안하는 중요한 라이프스타일로서의 사회운동 중 하나는 생태주의적 가치와 관점을 견지하는 것입니다. 수치적 성장주의하에서 생태계, 그리고 여성의 돌봄노동 같은 유무형의 자원은 모두 “회복 가능한 수준 이상으로 착취”당하고, 그렇기 때문에 생태주의적 가치를 사회 운영 원리로 고려하지 않으면, 젠더 불평등과 환경 파괴는 동시적으로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를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느끼고 있죠. 이와 같은 책들이 전하는 “덜 소비하며 생겨나는 기쁨과 즐거움의 감각”에 좀 더 기대를 걸어봅니다. “일회용 플라스틱 반대는 서로의 삶에 말을 걸고 시간을 들이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운동이다. 그저 쓰레기를 줄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삶의 속도를 늦춰 보통의 일상과 다른 사람의 안녕과 지구의 건강을 챙기는 여정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다른 삶의 방식과 속도를 원한다. 그리고 그 길은 세상의 어떤 물건도, 어느 누구도 쓰레기로 취급하지 않는 삶에 있다.”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46쪽 |
책과 책을 잇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