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의 세계에서 책은 집이다. 집은 거주자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보호해준다.” 글쓰기에 관해 말하고자 하면서 책에 관해 말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책에 바침』은 종이책에 보내는 헌사와 같은 책입니다. 저자 슈피넨은 자신이 “종이책에 대한 애착이 너무 큰 사람”이기에, 디지털 독서의 장점에 대해 말하거나 혹은 책을 옹호하는 새로운 논거를 발굴하는 대신, “책이 언젠가 내 곁을 떠나게 되면, 내가 잃어버리게 될 것들을 이 책에서 한번 열거해보”겠다고 말합니다. 차례가 흥미롭습니다. ‘몸체에 대하며’, ‘사용에 대하여’, ‘전문성에 대하여’, ‘모여 있는 책들’이라는 큰 제목 아래에는 ‘훼손된 책’, ‘부적절한 책’, ‘훔친 책’, ‘불살라진 책’, ‘초판본’, ‘헌책방’ 같은 작은 제목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슈피넨은 이 각각에 대한 짧은 에세이를 통해, 책을 둘러싼 우리의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글 곳곳에 깃들어 있는 저자 개인의 책에 관한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우리 자신의 책 이야기 역시 손쉽게 길어 올려집니다. “책은 청동 동상처럼 완결되고 완성된 작품의 본보기이다. 편집과 인쇄, 제본이 저술 작업을 마무리 짓는다. 이제는 덧붙일 수도 없고 삭제할 수도 없다. ‘개정판’이 출판되려면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 이제 완성된 작품으로서 수백만 권의 책은, 세상의 모든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들이 확고한 형태, 즉 처음과 중간과 끝을 가진다는 확신을 더욱 고양시킨다. 가령 인간의 삶이 그렇듯이.”―『책에 바침』 25~26쪽 책이 텍스트의 집이라면, 도서관은 책의 여러 집 중 하나,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집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 책은 배틀스의 전작으로, 하버드대학교 희귀본 도서관인 휴턴 도서관 사서로 일하기도 했던 배틀스가 도서관에 관해 쓴 에세이입니다. 『흔적을 남기는 글쓰기』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배틀스의 글쓰기 방식, 즉 역사적 접근을 따르되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는 곳마다 찾아가 그 이야기들을 길어내는 글쓰기가 이 책에서 역시 빛납니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지식을 형성하고 생산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배틀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현대의 공공도서관까지 아우르는 지적 여정으로 독자를 이끌면서, ‘지식’을 둘러싼 인류의 복잡다단한 욕망과 투쟁과 협상을 그려냅니다. “수령술을 내세워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쓴 사람은 프랜시스 베이컨이었다고 주장하는 논문집이나 여러 가지 기록들을 꼼꼼하게 짚어나가면서 옥스퍼드 백작 에드워드 드 비어에게 원작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연구서나 셰익스피어의 손을 들어주는 전기 문학은 따로 떨어져서는 빛을 발할 수 없다. 이런 책들은 책꽂이에 함께 꽂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혼자서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 33쪽 배틀스가 『흔적을 남기는 글쓰기』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 중 하나는 글쓰기의 ‘교권’입니다. 원래는 신학적 주제에서 교회의 가르침이 가지는 권위를 일컫는 이 단어를 배틀스는 “인간의 경험에 글쓰기가 미치는 영향”이라고 정의합니다. 제국의 통치에서 글쓰기의 역할 등 권력이 작용하는 통로로서 글쓰기를 살펴보는 한편, 그에 저항하는 한 사례로서 드는 것이 바로 버지니아 울프의 글쓰기입니다. 울프의 문학적 혁신을 통해서, 글쓰기가 오직 권력의 도구이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쓰기를 통한 해방이라는 가능성도 지니고 있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울프는 여성들에게 가장 열려 있었던(또는 여성들에게만 제한되어 있었던) 글쓰기의 영역―편지와 일기―을 호사스러울 만치 생산적인,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로 변이시켰다. 그러나 그녀는 글쓰기의 이러한 물적인 힘을 더욱더 내밀한 (그리고 과거에는 난공불락이었던) 영역까지 가져감으로써 더 많은 나라들을 탐구했다. 대화와 관습의 대위법을 넘어 의식 그 자체의 왕국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밀접한 경험의 양태로. 이런 미지의 세계로 힘차게 떠나간 그녀는 글쓰기를 상대로 일종의 승리를 거두었는데, 그것이 바로 글쓰기의 젠더화된 교권을 폐지한 것이다.”―『흔적을 남기는 글쓰기』 175쪽 『자기만의 방』은 이러한 젠더화된 교권이 여성을 창작을 어떻게 제약해왔는지에 대해서 잘 말해주는 책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성이 어떻게 하면 이런 제약을 벗어나 글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사고실험, 그리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책과 책, 작가와 작가, 독자와 독자가 만드는 일종의 공동체에 대한 의식도 드러나 있는 책입니다. 쓰인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성의 글쓰기와 말하기에 관한 문제의식이 성장하고 있는 오늘날과도 공명하는 지점이 많은 글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 바랍니다. …… 여러분은 여행과 모험에 관한 책, 연구서와 학술서, 역사와 전기, 비평과 철학, 과학에 대한 책들을 쓸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틀림없이 픽션 기법에 도움을 주겠지요. 책이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픽션이 시나 철학과 뺨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면 훨씬 나아질 것입니다.”―『자기만의 방』 164쪽 |
책과 책을 잇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