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단에 맞춰 옷을 입어야 할지 모르겠던 4월도 끝나가요. 아직 털갈이조차 못 했는데 여름을 맞닥뜨린 생명들에게 참으로 가혹하다고 느끼며, 인도 출신 과학자가 쓴 『내일 날씨는 맑음』을 마무리했습니다. 불과 40여 년 전까지만해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날씨의 중장기 예측,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역학계절예측‘을 가능케 한 기후학자 자가디시 슈클라의 회고록이에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슈클라는 “기상학은 인류가 서로를 돌보는 가장 오래되고 협력적인 시도“라고 말해요. 슈클라가 기상학 연구자로서 첫 발을 디디게 된 이유가 고향의 이웃들인 점을 떠올리면 무척 일맥상통해요.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잇는 이웃들이 몬순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고는, 더 멀리 날씨를 내다보는 ‘계절예측‘을 향상해 이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자 했거든요.
날씨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상기하면, 왜 하늘을 읽고 날씨를 내다보는 ‘앎‘이 서로를 돌보는 행위인지 새삼 되새기게 되는데요. 오늘 책타래에서는 『내일 날씨는 맑음』을 포함해 보살피고 구하고 살리는 행위로서의 과학이 담긴 책들을 엮어봤어요.(왜 나비 떼냐고요? 책 속에 그 답이 있습니다.🤓)—편집자 my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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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시골 마을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던 소년이 기상학·기후학의 중심에서 활약하기까지의 삶과 연구를 촘촘하게 엮어낸 이 책은,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깊고 방대할 수 있는지 증명해요. 사랑하는 가족을 상실하고 그로부터 회복하는 보편적인 경험, 서구 중심의 학계에서 글로벌사우스 출신 연구자로서 겪는 곤경, 인도와 미국이라는 두 문화 사이에서 이중적인 정체성…… “기상학·기후학계의 포레스트 검프라고 부르고 싶은 인물“이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생애가 펼쳐지는 가운데, 제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책의 마지막 파트 4부였어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제4차 평가보고서의 핵심저자로서 ‘인류발 지구온난화‘를 확증했음에도, 화석연료업계는 과학자들을 기용해 화석연료 사용이 기후변화의 원인이 아니라고 기만하고, 탄소 배출을 감축하려는 입법을 막습니다. 이에 자가디시 슈클라는 과학자 동료를 여럿 모아 오바마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요. 기후변화의 악영향을 우려하는 기후학자로서, 기후변화에 관한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기업과 단체를 처벌하라는 내용이었죠. 그러고는……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주로 우익 스피커)들이 슈클라를 공격합니다.(이들은 슈클라에게 미국인이 납부한 세금을 ‘이중 수급’했다며 공격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이 겪는 세금, 보험과 관련된 혐오 발언과 다르지 않아 너무나도 숙연해졌습니다.)
중립적으로 여겨지는 과학이야말로 놀라우리만치 정치의 영역임을 증명하는 슈클라의 사례를 읽고는, 수많은 기후활동가가 살해당했다는 뉴스가 떠올라 더욱 마음이 아팠어요. 살해당한 사람들에는 선주민과 농민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데요. 기후 담론이 수치에만 기반하는 와중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사라지는 목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책의 말미에 과학이 아니라 행동에서 세상을 바꿔나갈 원동력을 찾으려는 슈클라의 제안이 귀하게 들려요. 우리의 행동이 우리를 구할 것이라는 말이요.
“결국 우리를 구하는 것은 모델이 아니다. 슈퍼컴퓨터나 IPCC 평가보고서나 기후 관련 비정부단체도 아니다. 기후학자만도 아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을 몸소 받아들이고 행동을 선택하는 모든 사람이다. (……) 기후불안을 이겨내는 최고의 방책은 기후행동이다.“―345~34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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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편집하며 기후위기를 다루면서 과학자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를 떠올렸어요. 벌써 20년 전 영화가 되어버린 「투모로우」, 모두가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던 팬데믹 한복판에서 공개된 「돈 룩 업」, 지금 극장에서 상영 중인 「프로젝트 헤일메리」까지……. 이들 영화 속에서 과학자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존재만은 아니에요. 행성을 구하기 위해 열띠게 외치고 분노하고 절망하며,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료에 가까워요. 기후과학자 케이트 마블 역시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서, 그리고 누구보다도 먼저 예정된 종말을 예언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믿지 않는 탓에 “미쳐가고 있는” 과학자로서 느낀 여러 감정을 기후과학 지식과 연결해 이야기해요.
“그리스 신화 속 카산드라와 나 같은 현대의 기후과학자 사이에는 명백한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도사리고 있는 비극을 본다. 그리고 그 비극을 사람들에게 경고하려 애쓴다. (……) 우리가 아무리 보고서를 발표해도,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적어도 사태의 심각성에 상응하는 조치는 없다.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이야기를 외치고 또 외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내려진 저주다.”―26쪽
경이, 분노, 죄책감, 두려움, 놀라움…… 케이트 마블이 서술하는 감정들을 따라가다 보면, 기후불안 즉 감정이 어떻게 세상을 바꿔나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가 생각하게 되어요. 늘 분노나 우울, 불안 같은 감정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고 이를 떨쳐내야 한다고 여기지만, 이들 감정이야말로 ‘우리’를 더욱 단단히 연결해주며 세상을 뒤엎을 토대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이 말은 하도 여러 번 되풀이된 바람에 진부하고 성의 없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여전히 진실이다. 열대 태평양에서 형성된 엘니뇨가 수천 킬로미터 먼 곳의 날씨를 바꾼다. 뉴욕에서 나는 한때 열대우림이 내뱉은 산소를 들이마신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이, 전체에서 부분을 분리해려는 시도에 경고를 보낸다.”―33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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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의 지식의 위계가 분명하고, (불)확실성을 수치화하는 체계를 지닌 과학의 언어는 언제나 왜곡되기 쉽습니다. 그 때문에 자가디시 슈클라 또한 인류발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음에도 “입수할 수 있는 관측값과 모델링 결과”가 미흡하기에 화석연료업계로부터 공격을 받으리라는 우려를 했다고 밝혔고요. 실제로도 화석연료업계는 과학자들을 기용해 지구온난화란 사실이 아니라고, 대중을 오도하기도 했습니다.
“청부과학은 연구 방법과 자료를 조작해 기업이 정해 놓은 결과를 만드는 과학을 말한다. 청부과학자는 이러한 과학을 생산한 과학자다. 내가 현장에서 만난 몇몇 피해자와 활동가들은 가습기살균제와 관련된 지식 생산을 연구한다는 내게 옥시의 청부과학자를 연구하는지 꼭 집어 물어오기도 했다. 피해자와 시민사회 영역은 제품을 판매한 기업이 부정한 연구 청탁을 했다는 점을 특히 비판했다.”―154~155쪽
이러한 청부과학의 사례는 기후변화에만 한정되지 않아요. 1990년대부터 30여 년에 걸쳐 2000명 가까이 사망자가 발생했음에도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임을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기에, 가습기살균제가 피해의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해온 가습기살균제 기업 또한 마찬가지예요. 환경사회학 연구자 박진영은 오랜 기간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현장을 오가며, 과학이 사회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세세하게 써 내려갑니다. 원인이 확실한 사건임에도 왜 참사의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피해자를 애도하고 피해자와 함께 분노하며 사회의 고통에 깊숙하게 연루되려는 과학이에요. 과학이 사회적 고통에 기꺼이 다가서려는 “정치와 뒤섞이는 과학”(195쪽)이 될 때 그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음을 일깨워요.
“전문가 사회의 성찰과 변화를 향한 목소리는 주로 피해자를 만나 진료를 한 전문가 사이에서 나왔다. (......) 임 교수는 ‘가습기살균제 증후군’과 같은 개념을 도입해 피해 사실을 더 폭넓게 인정하자고 제안했다. 폐손상조사위원회는 중증 환자를 판정하기 위해 기준을 협소하게 정했다. 이후 더 많은 연구가 수행되었을 뿐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가 나타나고 있으니 이제는 기준을 바꿀 때가 되었다는 주장이었다. 그의 제안은 내게 과학적 연구를 통해 소통하는 과학자 역시 우리 사회의 일원이며, 재난 피해자의 반대편이 아닌 그 곁에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말로 들렸다.”―159~16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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