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언제 눈물을 흘리시나요? 물론 슬플 때도 있겠지만 무언가에 크게 감동했을 때, 또 기쁠 때, 감격했을 때, 너무너무 화가 날 때도 있겠고, 말도 못하게 웃길 때도 있겠지요. 박선영 기자님의 에세이 『그저 하루치의 낙담』을 세상에 내보이며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울었다"는 표현을 많이 썼어요. 이 책이 얼마나 좋은지 그렇게 한창 떠들고 다니다 문득, 슬프기만 한 책으로 여겨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다다랐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 작업하는 내내 책상 앞에서 원고를 보면서 훌쩍거리다 못 참고 화장실로 달려가고, 집에 가는 길에 그날 본 내용을 떠올리면서 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는 다양합니다.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에 스스로의 상황을 겹쳐보며 서럽고 슬퍼서, 누군가가 안쓰러워서, 나의 작은 세계가 순간적으로 확장되는 감각에 벅차올라서, 나 역시 이 땅에 발을 굳게 딛고 잘 살고 싶어서, 그리고 웃겨서…….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감정의 온도가 웬만큼 오르지 않고서야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 막판에는 나만 박박 울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작업했답니다 후후후……. 여러분은 이 책의 어떤 대목에서 울게 되실까요? 어디서든 울게 되신다면 후회 없는 눈물이 될 거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려요. 그런 뒤 책을 잘 읽었다는 감상을 어디든 남겨주신다면 저와 동료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릴 거라고도요.―편집자 만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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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좆같을 땐 헌법을 읽는다. ‘좆같다’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등재된 표준어라는 사실이 조금도 놀랍지 않다. 이곳은 너무 자주 좆같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더이상 이곳에서는 못살겠다고 마음이 아우성칠 때, 환란을 마주한 신의 백성이 성경을 읽듯 헌법을 읽는다. 이게 나라냐는 절규를 참을 수 없어 그저 가슴을 뜯고 싶을 때, 버려진 연인이 서정시를 읽듯 헌법을 읽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허구의 시를 도대체 누가 썼을까.”—184~185쪽
"박선영"이라는 이름에 《한국일보》에서 공개될 때마다 뜨거운 반응을 불러모았던 명칼럼들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가난해서 죄송합니다」, 「따뜻한 개천으로 내려오든가」, 「도라에몽은 울지 않는다」 등등……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는 그 칼럼들에 살을 더하여 엮은 칼럼집입니다. 시의성이 중요한 일간지의 성격상 언급되는 몇몇 사건들은 이제 다 지나간 얘기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것들을 입구 삼아 들어가 기술, 빈곤, 노동, 교육, 젠더 이슈에 대해 논하는 대목들을 보면 어쩜 지금도 구절구절 들어맞는지 놀라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기자님 글에 시간을 버텨낼 힘이 있다는 반증이겠지요. '에볼라'를 '코로나'로 바꾸면 그대로 코로나 시기의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자님이 현직에 계셨다면 우리 사회가 지나온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어떤 기사들을 써주셨을까 아주 궁금하고 아쉬웠어요. 참지 못한 편집자는 박선영 기자님께 이제 그만 쉬시고 새 글을 써주십사(혹은 내놓아라) 읍소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그저 하루치의 낙담』이 이제 여러분 곁으로……. 절판된 상태라 소개를 드리면서도 민망하지만! (후후 저는 가지고 있답니다 후후)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 발견한다면 소장해보셔도 좋을 거예요. 그리고 칼럼들은 여전히 한국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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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현의 부재를 안다. 그리하여 종현이 영원으로 존재한다는 것도 안다.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몸으로 아는 감정이 있다. (……) 내 마음에는 할머니 무덤도 있고, 아빠 무덤도 있고, 종현의 무덤도 있다. 살아 있는 일은 마음에 그렇게 몇 번이고 무덤을 만드는 일임을, 슬픔은 그 모든 일을 대표하는 감정이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85쪽
위의 책이 나온 뒤 1년 후, 채널예스에서 어마어마한 칼럼을 읽었어요. 김애란 작가의 소설과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나란히 두고 풀어내며 읽는 사람을 옆으로 바짝 끌어당기는 글. 조금은 긴 텀으로 올라오는 연재글을 그 이후로 빠짐없이 따라 읽었고, 어느 순간 끊긴 뒤에는 혹시라도 다른 곳에서 연재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로 글을 쓴 사람의 이름을 검색창에 가끔씩 쳐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시사IN>의 장일호 기자님. 몇 년 뒤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얼마나 기뻤는지!
그사이 기자님은 유방암 확진을 받아 투병 생활을 했고, 채녈예스 연재글에도 나오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고, 또…… 사랑했던 샤이니의 종현도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 모든 순간을 하나하나 주워담아 언어로 붙들어맨, “인생의 예기치 않은 사건 앞에서, 책 속의 말들이 다 무너지는 걸 목도하고도 다시 책 앞에 선 이야기”(김애란)입니다. 책과 삶, 책과 세계를 이렇게도 깊이 있게 엮어 읽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는 책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자신의 삶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에 한 발씩을 굳게 디디고(제 느낌으로는 콱 박아버리고……) 씩씩하게 서 있는 책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아껴 읽으신 분들이라면 『그저 하루치의 낙담』을, 『그저 하루치의 낙담』을 아껴 읽으셨다면 이 책을 기쁘게 읽으시리라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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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는 것은 그 좋아하는 대상의 알고 싶지 않았던 점, 영영 모르고 싶었던 것, 몰랐으면 좋았을 얘기까지 알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110쪽
어쩐지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쑥스럽게 만드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시나요……? 이제는 ‘워라밸’이라는 표현조차 구닥다리처럼 느껴질 만큼, 일과 일 아닌 삶 사이의 분리가 중요하다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진리로 여겨지고 있는 듯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자기 일을 좋아하지 않기도 꽤 어렵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 만큼, 어느 정도는 좋아해야 견딜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일을 너무 좋아하기도, 사랑까지 해버리기도 하는 것 같고, 제가 관찰했을 때 기자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그런 듯합니다.
『청춘유감』을 가져온 것은 저자의 직업이 기자라는 점, 그것도 박선영 기자님이 몸담았던 《한국일보》의 기자라는 점 때문만은 아닙니다. “나는 기자라는 일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래서 내내 낙담했”다는 박선영 기자의 고백 앞에서 한소범 기자님이 이 책에서 보여준 마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기쁨과 슬픔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달까요. “기자라는 직업을 좋아하기 전에, 기자들을 먼저 좋아하게”(『청춘유감』 243쪽) 되어 그중 한 기자와 한 회사에 근무하게 된 것만으로도 감격했던 어린 기자는, “기자가 아닌 사람들이 기자를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기자를 싫어했고 그래서 나를 싫어하게 되는 일도”(『청춘유감』 246쪽) 잦아졌다고 해요. 그럼에도, 본인의 일이 어째서 지긋지긋한지 얘기하는 대목에서조차 어쩐지 행간에서는 기자 일에 대한 애정, 감히 추측해도 된다면, 뜨거운 사랑이 느껴집니다. 저희 책타래를 읽어주시는 여러분도 자신의 일을 아주 사랑하고, 또 그래서 자꾸만 슬퍼지는 순간을 맞닥뜨리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해요. 같이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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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예고🎤
이번 책타래를 읽고 나니,
세 분 기자님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 삭삭 솟지 않으셨나요?
그럴 줄 알고 북토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후후……. 조만간 저희 채널을 통해 공지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사이 『그저 하루치의 낙담』 문장을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오픈채팅방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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