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16
2021년 11월 13일 토요일
엄마를 잃었다.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엄마를. 서울의 방 두 개짜리 작은 집 그보다 더 작은 침대 속에서. 진한 남색 이불을 온몸에 두른 나는 페이스타임으로 엄마를 잃었다.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뜻이다. 아아, 레즈비언 연애의 징그러움이여.
원래는 샌프란시스코에 가려고 했다. 5년 넘게 만나던 여자친구와 떨어져 지낸 지도 1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이 몇 번이나 취소되었다가 마침내 그를 만나러 가기 위해 짐을 싸고 있었다. 출국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겨울을 통째로 따뜻한 도시에서 보내려 했다. H네 집 테라스나 바로 그 앞 해변에 눕듯이 앉아 논문을 쓸 계획이었다. H는 우리가 함께 듣던 와인 세미나에서 추천한 나파 밸리 와인을 한 박스 주문해 놓았다고 했다. 바다와 와인과 섹스. 철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도 한참을 미루던 졸업 논문을 완성하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 했다.
충분히 사려 깊은 내 친구들은 위로하기에 앞서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너희는 정말 백년해로할 줄 알았는데.” 남의 연애에 섣부른 예측은 절대 하지 않는 신중한 친구조차 말했다. “곧 H에게 연락 와서 다시 만나겠지.” 주변인조차 부정할 정도로 갑작스러운 이별. 하지만 H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였다. 끝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롱디는 원래 이런가? 어제까지 서로 “사랑해.”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다가 오늘은 갑자기 헤어지다니. 물론 울며 매달렸다. 연애는 참 이상하다고. 두 사람이 동의해야만 시작하는데 한 사람이 통보만 하면 끝이 난다고. 너무 가혹하다고.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지.” 그는 칼같이 말을 잘랐다. 다음 달이면 내가 거기로 가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내가 지금 당장 갈 테니 비행기 표 끊겠다는 어떤 설득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얼굴을 맞대고 마음을 맞춘 채로 협의할 수 있는 이별이란 환상인가.
연애는 끝났다. 모든 것이 사라진 와중 다행히도 비행기 티켓만은 수수료 없이 취소할 수 있었다. 코로나 시대의 유일한 덕이었다. H가 당장이라도 전화해 싹싹 빌면서 미안하다고, 내가 실수했다고 하지는 않을까? 그 희망을 혼자서 놓을 용기는 없었다. 친구들을 줌으로 모아 내 인터넷 창을 공유했고, 다 같이 “하나, 둘, 셋” 하고 티켓 취소 버튼을 눌렀다. 나는 울지 않았다.
이별 후에 할 일
- 조이(레즈비언 소개팅 앱)에 사진 업로드.
- 인스타그램에서 커플 사진 지우기.
눈물이 나려고 할 때마다 통속적이고 뻔한 이별의 과정을 충실히 수행했다. 내 나이 서른. 좀 더 성숙하고 멋진 이별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할 수 있는 만큼 뻔한 방식으로 난리를 쳐야만 속이 시원했다. 아! 넷플릭스 가족 계정에 등록된 H의 프로필도 지워 버렸다. 모바일로는 할 수 없다기에 굳이 컴퓨터까지 켜서. 정말 내가 이렇게나 치사하다.
- 넷플릭스 가족 계정에서 H를 추방하기.
- ○○당 대선 캠프에 들어가기.
갑자기 대선 캠프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에게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려고 했던 3개월이 대선 기간과 얼추 들어맞는다고 설명했다. 그게 이유의 다는 아니었는데. 단순히 몰두할 대상이 필요해서였을까? 아니면 H에 대한 복수심에서였을까?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고 H는 늘 한국 밖에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차별과 분노, 부조리에서 한 발 떨어져 살기 때문에 우울증이 심해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글쎄, 나도 외국에 살아 봤지만 내가 겪은 상황은 반대에 가까웠다. 사회의 맥락 속에서 아예 지워진 사람, 심지어 투쟁의 주체도 되기 힘든 사람. 소수자가 아닌 투명 인간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유쾌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저 지독하게 외로웠다. 어떤 상황에서 더 행복할 수 있는지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H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나는 여기서 싸우겠다고. 모두가 그럴 수는 없지만, 난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도 ‘탈조선’을 꿈꾼 적이 있었다. 20대 초중반에는 그 막연한 희망이 아주 크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너를 만나고 비로소 한국에 살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 너를 사랑하면서 살아간다면 이 못생긴 도시 서울도 꽤 낭만적이고, 아름답다고. 물론 화나고 스트레스 받는 일도 많지만, 충분히 투쟁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는 나를 만나고 나서야 외국에 나가고 싶어하더라. 내 덕분에 유학을 할 용기가 났다고도 했고.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덕에 나와 떨어져 지낼 수 있게 되었다니? 난 사실 서운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