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사월의책, 2025
얼마 전, 함께 사는 개가 중성화 수술을 받았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휘청이며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인간의 편의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을까, 정말 개를 위한 것이었을까 하고요. 중성화 수술뿐만이 아닙니다. 비인간동물과 함께 살다보면 내가 ‘보호’라는 명목으로 이들의 자유를 해치는 건 아닌가,라는 질문이 종종 스쳐요. 이 책은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장바구니에 담아봤는데요. 책의 목차에서 먼저 눈에 띈 건 ‘애완동물’이라는 단어였어요.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하며 사장되어버린. 책 소개에서도 “반려동물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애완의 대상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인간과 ‘길들여진 동물’ 사이의 윤리를 가장 바닥에서부터 따져봅니다. 당장에 개와 나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윤리적인, 더 평등한 관계 맺기를 위해 읽어보려해요. 동물 권리를 위한 정치를 다루는 책 『주폴리스』와 함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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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쉬안, 임경용 옮김, 미디어버스, 2023
파면 한 달이 지나고 ‘선거의 시간’이 도래하였지만 어쩐지 ‘광장의 시간’을 놓치 못하는 사람, 어디 없나요. 지난 네 달 동안, 광장과 거리를 오가며 저항과 투쟁의 수단으로서 ‘책’이 가진 힘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어요. 전장연의 출근길선전전에서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를 읽거나, 광화문 앞 농성장에 설치된 ‘무지개책방’ 등을 목격했거든요.(광장의 책에 관해서는 몇몇 뉴스레터에서 더 자세히 다뤄주셨어요!) 2025년 한국에서 출판운동이 여전히 유효할까 하는 고민이 드는 찰나, 이 책이 떠올랐습니다. 글로벌 사우스, 즉 지리상으로는 남반구에 속하고 역사적으로는 서구의 식민 통치를 경험한 국가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출판 실천을 기록한 책이에요. 독립 출판 역시도 서구의 자장 속에서 그 흐름이 만들어지기 마련이지만, 거기에서 벗어난다면 어떤 식의 자주 출판이 가능한지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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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문, 한겨레출판, 2024
지난달,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행사 ‘역자후기+’에서 알게 된 책이에요. ‘역자후기’는 번역자에게 자신이 번역한 책 이야기를 들어보는 행사인데요, 이날은 『랭스로 되돌아가다』와 『상속자들』을 옮긴 이상길 선생님께서 두 책을 바탕으로 계급 불평등에 대한 담론을 나누어주셨어요. 그 과정에서 추천받았습니다. 여전히 ‘계급 불평등’은 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문제를 이야기할 때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무기력에 쉽게 빠지곤 합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은 것은 “만연한 불공정과 불평등에 치를 떠는 N포 세대 청년들에게 주는 희망의 전언”이라는 송경동 시인의 추천사 때문인데요. 불평등과 ‘희망’을 함께 이야기한다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 궁금해졌거든요. 책은 ‘희망’을 한국의 민주주의, 즉 2016~2017년의 “촛불 항쟁”에서 찾고 있는 듯해요. 지난해와 올해 광장을 경험한 입장에서 읽는다면 또 다른 시사점이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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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리나 임블러, 김명남 옮김, 아르테, 2025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과학 저널리스트 사브리나 임블러의 책입니다. 자신의 전문 영역과 사적인 삶을 좋은 이야기로 잘 엮어내는 책들이 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최근 몇 년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요. 이 책 역시 "과학책과 회고록 사이에서 두 장르 모두를 아름답게 재창조"(《뉴욕 타임스》)한 것으로 출간 당시 극찬을 받았다고 해요. 그런데 현지의 이런 화려한 반응보다 옮긴이 이름에 더 강하게 이끌려 책을 자세히 들여다본 분도 분명 적지 않겠지요? 저도 그중 하나입니다. "'나/우리와 다른 존재'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연민이 삶을 끝끝내 살게 하는 동기이자 과학 저널리즘의 자세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메시지가 어떤 문장들로 전해질지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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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O. 허시먼, 강명구 옮김, 나무연필, 2016
얼마 전 여러 동료가 한데 모인 자리에서 소개받고 장바구니에 넣어두었어요. '퇴보하는 기업, 조직, 국가에 대한 반응'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썩 만족스럽지 않은 조직에 몸담고 있을 때 사람들이 내리는 다양한 선택에 대해 살피는 책입니다.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에서 '남다'로 표현된 부분이 영어 원제에서는 무엇일 것 같으세요? remain이나 stay가 아니라 voice입니다. 어딘가에 남는다는 것은 그저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것.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탄성을 참지 못한 것이 저만은 아니었는지 그 순간 분위기가 뜨거워졌던 기억이 나요. 이것은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동료들뿐 아니라 지난겨울부터 쉽지 않은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겠구나 싶어 소개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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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한겨레출판, 2025
지난번 책타래를 보내드리고 다음주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나이를 먹으며 장례식을 경험하는 일이 조금씩 늘어났지만, 상복을 입고 유족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조문객일 때는 그저 스쳐 지나갔던 풍경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온 것은 장례 현장을 일터로 삼고 군더더기 없이 움직이는 분들의 모습이었어요. 현대의 장례는 임종부터 고인의 유골을 안치하기까지 거의 모든 단계에서 전문가의 손길을 빌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지만, 각각이 아주 세분화되어 있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금 깨달았네요. 때마침 장례업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책이 나왔다고 하여 장바구니에 넣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할머니와 남은 가족들의 평안을 위해 애써주신 분들을 떠올려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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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 스스무, 김웅기 옮김, 서해문집, 2025
제주 4.3 사건에 관해 읽다가 오키나와의 역사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주와 오키나와는 닮은꼴로 여겨지는 고통스러운 역사를 공유하는 땅이기도 하고, 평화를 위한 교류를 이어나가고 있기도 해요. 그러던 와중 신간을 둘러보다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논픽션 그래픽노블인 『오키나와』는 오키나와 출신의 만화가 히가 스스무가 오키나와라는 땅의 역사와 정체성을 복잡다단하고도 생명력 있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히가 스스무는 인터뷰에서 “솔직히 내 만화는 안 그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면서도 자신의 이상과 삶에 충실하기 위해 그리고 이야기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오키나와 사람은 이곳에서 생계를 꾸리며 살아가야 하거든요.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서로에게서 행복을 찾아야 해요.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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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세 고헤이, 박동섭 옮김, 김영사, 2025
신간 목록에서 눌러보고 ‘무슨 책일까?’ 싶어 담아둔 책이에요.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에서 따온 제목을 가진 일본 문화인류학자 이노세 고헤이의 에세이입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요. 책은 자폐스펙트럼이자 지적장애가 있는 저자의 형이 계속해서 ‘실종’되는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일본어에서 ‘실종’과 ‘질주’는 둘 다 ‘싯소’로 발음되어요. 책의 원제도 싯소를 히라가나로 표기한 ‘野生のしっそう’로, 형의 실종에서 어떤 가능성을 향한 질주를 발견하는 저자의 관점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실종’과 ‘질주’ 둘 중 무엇을 제목으로 남길 것인지, 담당 편집자의 고민이 깊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실종된 형을 뒤쫓는 여정 속에서 타자, 장애, 늙음, 이해와 같은 주제에 관한 논의가 함께 이루어지는 책인 것 같은데요. “다 읽고 나서도 왠지 이 책 생각만 하고 있다.”라는 일본 독자 서평이 궁금증을 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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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그레이버·데이비드 웬그로, 김병화 옮김, 김영사, 2025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유작이자, 고고학자 데이비드 웬그로와 함께 쓴 책입니다. 몇 년 전 출간을 고려하며 검토했던 책이에요. 반비에서 내기는 여러모로 어렵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누군가 잘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터라, 반가움에 담았습니다. 두 학자는 우리가 이제껏 알아온 인류사, 즉 ‘역사는 단계적으로 발전한다’, ‘민주주의나 평등은 유럽 계몽주의의 유산이다’ 같은 통념에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인류사 전체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함이나 912쪽에 달하는 분량 모두 조금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는 하는데요, 독서모임을 꾸려서 함께 읽어보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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