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의 2부에 해당하는 이영준의 기계비평은 잠실야구장, 수술실, 지하철역, 빌딩 속으로 걸어 들어가 기계의 작동 원리를 경험하고 온몸으로 이해하려는 글쓰기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기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것들이 사회와, 또 우리 자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성찰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책타래에서 이영준의 『기계비평』을 소개했었지요. 이 책은 이영준이 개척한 이와 같은 독특한 분야인 '기계비평'의 시발점과 같은 책이었습니다. 이번 책타래에서 살펴보는 『기계비평들』은 2019년 『기계비평』 복간에 맞춰 기획된 책으로, 이영준으로부터 영향받은 여러 저자들이 시도한 나름의 기계비평'들'입니다. 저자들은 세월호를, 구의역 사고를, 거리의 저항을 위한 기계들(화염병과 사제폭탄 들)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우리 삶을 촘촘하게 채우고 있는 기계들과 우리의 노동, 발전, 일상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학습 예제집"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적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은 이영준의 기계비평을 교과서 삼아, 『기계비평들』에 실린 글들을 예제 삼아 각자의 기계비평을 시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쓰인 구의역 사고의 내러티브는 그동안 충분히 합의되었다고 간주되었던 문제들을 풀어헤쳐서 다시금 물음을 던진다. 첫 번째는 '외주화'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다. 외주화는 어떻게 고 김 군의 목숨을 앗아갔는가? 확장된 내러티브는 구의역 사고가 안전 관리의 외주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는 오히려 비교적 단순하게 이해되던 외주화의 위험이 경제적일 뿐 아니라 기술적, 사회적, 기계적이었다는 사실을 밝힌다.”―『기계비평들』 70쪽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의 1부, 임태훈의 디지털 비평과 연관 지어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임태훈은 블록체인부터 게이미피케이션까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디지털 문화를 인문적인 비판의 시선으로 뜯어봅니다. 이런 디지털 문화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과 같은 빅 테크 기업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좋든 싫든 이들이 구축해놓은 다종다양한 플랫폼 위에서 소통하고, 정보를 얻고, 쇼핑하고, 생활합니다. 프랭클린 포어는 『생각을 빼앗긴 세계』에서 이와 같은 테크 기업들을 비판하는데, 단순히 이들을 악마화하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기업들의 낙관주의와 이상주의라는 관념 자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떤 폐해를 낳고 있는지를 뜯어봅니다.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라는 독특한 출발점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실리콘밸리 문화까지를 일목요연하게 들여다보는 관점은, 우리가 놓인 이 거대한 디지털 문화라는 환경이 어떻게 주조되었는가를 살펴보는 신선한 통로를 제공할 것입니다. “테크놀로지가 가져올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황금광시대의 탐욕스런 독점 기업가들이 가졌던 사고방식 사이에는, 사람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특이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두 집단 모두 자본주의에 존재하는 힘겨운 경쟁을 벗어나려 하고, ‘협력’의 가치를 역설하며, 협력이야말로 경제적으로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한다.”―『생각을 빼앗긴 세계』 46쪽 기술은 인간에게 작용할 뿐 아니라 인간 종을 떠난 지구상의 모든 존재에게 작용합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기후위기는 이런 기술 작용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탁월한 과학 에세이스트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는 우리가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왔고, 그 결과 어떤 풍요를 누렸으며 지금은 어떤 지점에 도달해 있는지를 말하는 책입니다. 자런은 우리와 동떨어져 있는 추상적인 수치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대신, 자신의 삶이 지구와 맺어온 관계, 지금까지 자신의 생애 동안 변화해온 지구의 모습을 함께 들여다보자고 제안합니다. 자런의 이런 접근은 막다른 곳에서 러디즘적 비판으로 빠져드는 대신, 또는 종말론적 절망에 손쉽게 젖어드는 대신 인간 문명과 기술의 명암을 구체적이고도 실감 나게 살펴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 이제껏 누려왔던 풍요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도 지구를 지속 가능한 곳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인 현실주의자의 책이기도 합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지구와의 새로운 관계 맺음을 고민하려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좋은 동반자가 되어주리라 생각합니다. “얼음은 기온이 섭씨 0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녹게 되어 있다. 어려서 가장 먼저 해보는 과학 실험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일 듯싶다. 당신 역시 아기 때 엄마의 물컵을 보며 그 안에서 반짝이는 사각형 물체를 궁금해했을 것이다. 엄마가 얼음 몇 개를 꺼내 당신의 작은 손에 쥐여주면 그 유리 같은 고체와 그것이 녹아가며 남기는 물기에 매혹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1976년 봄이 오면서 커빙턴과 작별을 하게 되었다. 여섯 살 내가 어느 4월 아침 커빙턴이 작은 물웅덩이로 변해버린 것을 발견하고는 펑펑 울어 흘러내린 눈물이 그 변화물의 잔해에 더해지는, 어린이책에 소개하고 싶은 강렬한 장면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겨울이 물러가고 늘 그렇듯 온 세상이 따뜻해졌다. 얼음이 모두 녹았고, 노동절인 5월 1일이 되자 나는 제니퍼라는 이름의 살아 있는 진짜 친구를 갖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커빙턴이 사라졌을 때 슬펐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물의 순환 체계를 공부하기 훨씬 전에 모든 얼음이 녹으면 가는 곳, 환영의 팔을 활짝 내민 그 광대한 대양의 품으로 커빙턴도 향했을 것임을 본능적으로 이미 알았는지도 모른다.”―『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200쪽 |
책과 책을 잇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