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이 이끄는 자리』는 '의료'를 입구로 삼지만 결국 이야기하는 것은 그 안에서 서로를 돌보고 감내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관계입니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오가는 보살핌과 응답, 느리지만 끈질긴 관계의 움직임들. 그것들이 이 책의 핵심이자, 표지로 전하고 싶은 결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의료'는 구체적이고, '돌봄'은 추상적입니다. 여러 독자에게 가닿으려면 어느 정도는 의료를 시각적으로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은 의료진의 손끝이나 병원의 시스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지요. 각자의 자리에서 행해지는 작고 느린 움직임이 결국은 돌봄을 만들어낸다는 점—그걸 어떻게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안고 디자이너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균형, 신뢰, 기다림, 관계, 그리고 서로를 향한 조용한 응답 같은 것들이 표지에 담기면 좋겠다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더없이 막연한 요청이었지만, 디자이너는 그것을 한 겹씩 천천히 풀어내며 응답해주었습니다. 누구의 얼굴도, 어떤 구체적인 장면도 없지만 색과 결, 구조와 여백 속에 이 책이 전하려는 돌봄의 감각이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표지에 담긴 이야기, 그리고 디자이너가 머문 시간의 기록을 함께 소개합니다.―편집자 만두
이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즈음 가족이 대장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처음 암을 발견하고 병원 예약을 잡기 위해 동동거리면서 파업으로 수술을 잡지 못해 암이 진행되어 돌아가셨다는 분들의 얘기를 너무나 많이 들었어요. 겨우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위해 140분씩 대기하는 가족을 보며 현재의 의료는 어디에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봄이 이끄는 자리』는 제 물음에 대해 새로운 답을 주는 책일지도 모릅니다. 치앙마이의 공공 의료는 '돌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찌 보면 옛 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도 같은 그 모습은 우리가 되찾아야 할 의료의 본질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처음 원고를 읽고 떠오른 건 블록으로 만들어진 성의 이미지였어요. 돈이 없어도 환자를 일단 치료하는 의료진, 치료가 늦어지더라도 인내하며 기다리는 환자들, 사람을 돌보겠다는 마음과 수혜 받았음에 감사하는 마음 등이 서로에게 제 무게를 맡기고 균형 있게 쌓여 있는 모습이요. 여러 사진과 패턴으로 구조물을 만들어 첫 번째 시안을 디자인했습니다. 그리고 피드백을 받았어요. 두둥…!
의료진과 환자들 중 의료진을 더 많이 연상시켜 한쪽으로 치우치게 될까 우려된다는 의견을 듣고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어요. 청진기, 알약, 심장모니터 아이콘 등 관습적인 이미지를 넣지 않으면서 의료 이야기 표현할 수 있는 방법? 밥을 먹을 때도, 운동을 할 때도, 자려고 누웠을 때까지 생각해봤지만 제 머리는 텅 빈 백지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택한 방법은 모든 이미지를 덜어내고 '의료진과 환자가 동등하고 균형 있게 만들어낸 관계'라는 점에만 집중하는 것이었어요. 둘의 상징색을 하나씩 정해 큰 제목 글자 위에 패치워크처럼 겹쳐지게 올렸습니다. 책이 따뜻해 보였으면 해서 온화한 색감으로 칠하고 뽀얗게 인쇄되는 종이를 골랐어요. 여러 조각들이 모여 있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를 이루는 디자인으로 책이 세상에 잘 나와주었습니다.
여러분의 눈길을 끌고 싶어 화사한 노란색으로 배경을 골라보았는데 책이 잘 보이시나요? 어딘가에서 이 책을 발견하신다면 한번 열어봐주세요. 그 안에 인간적이고 가끔은 지난하고 느리지만 서로의 손을 잡고 천천히 나아가는 의료의 모습이 있으니까요.―디자이너 콩자
『돌봄이 이끄는 자리』 출간 기념 북토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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