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귀갓길에 보도블럭이 고르지 못한 부분을 잘못 디뎌 크게 넘어졌습니다. 왼쪽 발목이 꺾여 한 걸음 걷기도 어려웠지만, 이미 밤 10시에 가까운 시간이라 근처 정형외과는 문을 닫았고 응급실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의료 대란’으로 병원들이 인력 부족에 허덕이는 때였거든요. 우선 그날은 깨금발로 집까지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운이 아주 좋았습니다. 다음날로 처치를 미뤄도 되는 정도의 부상이었고, 병원에 가느라 하루 일을 쉰다고 당장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치료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늘 이번처럼 운이 좋을 수 있을지, 그리고 내가 어려움을 비껴갔다고 안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습니다. ‘건강한 삶’이 과연 자격과 조건에 따라 좌우되어야 하는지도요. 누구나 조건 없이 필요한 보살핌을 받는다는 이상은 정말 동화 속에서나 실현되는 것일까요?
오늘 소개할 『돌봄이 이끄는 자리』에서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병원의 미래를 현실로 경험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무대는 태국 치앙마이의 어느 공공 병원인데요, 그곳에서는 치료비와 보험이 있는지, 국적이나 시민권은 있는지 따지지 않고 환자에게 필요한 진료를 우선 제공합니다. 그리고 서보경 선생님은 이곳의 의료 시스템을 이끄는 핵심에서 기술이나 자본이 아니라 돌봄을 포착합니다. 이번 책타래에서는 의료와 돌봄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책들, 건강할/치료받을 자격이 아니라 권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책들을 함께 엮어보았어요.―편집자 만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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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집, 동네, 학교, 일터, 지하철과 버스, 시장, 공공기관, 공연장, 경기장 같은 곳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외부의 자극은 모두 우리 몸에 생물학적 반응을 이끌어낸다. 이 중에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경험들도 있고, DNA나 세포와 조직에 상처를 내는 경험들도 있다. 이렇게 상처를 내는 환경들은 ‘랜덤’으로 존재하거나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미 생겨난 상처를 치료하고 치유하는 기회 또한 마찬가지다.”―『가장 평범한 아픔』, 9쪽
오랫동안 건강 불평등과 노동자 건강권,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에 대한 연구와 실천 활동을 해왔던 예방의학 전문의 김명희 선생님의 책입니다. 모든 사람이 ‘온전한 건강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보여주는데요, 건강과 의료를 개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할 문제로 파악하면서도 “숫자가 아닌 아픈 사람들의 삶에서, 역사의 오랜 흐름 속에서 함께 고뇌한 학자만이 낼 수 있는 향기가 느껴진다”(김관욱)는 점에서 『돌봄이 이끄는 자리』와 닮아 있는 듯해요. 국내의 실정을 좀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데 도움이 될 책이라 함께 읽으면 더욱 의미 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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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자 당사자가 스스로 돌보는 힘, 서로 돌보는 힘에 기대어 사라와 동료들이 곁에 다가갈 때 스르르 열리는 문. 의료, 돌봄, 복지의 경계를 허무는 힘은 선언으로 되는 게 아니라 그런 만남과 부딪힘이다.”―『돌봄의 상상력』, 208쪽
‘핫! 이 책은 우리 책의 자매다!! 자매일 수밖에 없다!!!’ 출간 소식을 접하자마자 맨 처음 든 생각입니다. 우선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를 돌봄으로 놓고 본다는 데서 공통점이 있고, 저자 중 한 분이 『돌봄이 이끄는 자리』에 추천사를 써주신 김영옥 선생님입니다.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역시 표지! 오해를 피하기 위해 밝혀보자면, 요 책이 출간되었을 때 저희 책의 표지도 이미 결정되어 있었답니다. 김영옥 선생님도 “돌봄의 감성이 이끈 디자인일까요?”라고 기쁘게 놀라셨는데요. 크고 작은 색색의 조각들이 모여 제목을 이루는 풍경이 마치, 돌봄에 얽힌 다양한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만들어낸 커다란 돌봄의 회로망, 안전망처럼 느껴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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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왕진을 간다. 의원에서 출발해서 마을 가게를 들러, 아는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오르막을 올라 땀을 훔치며 집에 들어간다. 이렇게 가면 동네가 더 잘 보인다. 얼마나 가파른 오르막을 걸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는지도 보고, 집까지 가는 길에 싱싱한 식재료와 생필품을 구할 곳이 마땅히 있는지도 본다. 집에 도착해서는 고혈압·당뇨 교육도 하고, 무좀 상태도 본다. 소리를 잘 못 들으시는 것 같아 귀안을 들여다보면 귀지가 가득 찬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기구를 넣어 살살 빼내기도 한다. 근육위축이나 관절구축이 더 진행되지 않았는지도 살피고, 방 안의 가구 배치도 본다. 방에 볕과 바람이 잘 들어오는지 확인한다.”―『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28쪽
『돌봄이 이끄는 자리』에서 크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치앙마이의 공공 병원에서는 살리고 보살피는 일이 병원 담장을 넘어서도 이어진다는 부분이었어요. 만성질환자나 첫 출산을 한 산모, 노인 환자처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경우에는 퇴원 후에도 의료진들이 집으로 방문해 건강 상태를 살피고 주거 환경을 점검합니다. 병원의 역할이 단순한 의료 서비스 제공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 구성원의 총체적 안녕을 보살피는 일로 확장되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마침 한국에서도 그런 돌봄이 실천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바로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은 그곳에서 의사로 일하시는 추혜인 원장님의 에세이예요. 가장 인간적이고 안전한 의료 시스템을 바라는 지역 의사의 따뜻하고 다정한 기록이 담겨 있는데요, ‘살림’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신 분들은 올해 반비의 출간작을 지켜봐주시면 반가운 소식이 찾아갈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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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빵과 장미, 그리고 피켓🌹
지난 12월 이후 매주 집회에 참석 중인 반비의 아무개 편집자.
더 참신한, 더 재미있는 집회템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3·8세계여성의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는데……😏💡
그리하여 만들어봤습니다. '여성의날'에 사용할 집회템을요!✊
우리의 연대를 넓히고, 더 나은 내일을 상상할 수 있게끔 돕는 문장들로 피켓을 만들었어요.
피켓이 필요한 분은 인쇄해서 사용해보세요!
(참고로 '민페퀴네'의 #민주주의_구하는_페미 프로젝트에 영감을 받았답니다!)
피켓 속 글귀는 반비의 책 속에서 뽑아봤는데요.
이 문장들이 광장과 거리, 모두가 살아내는 일상의 한가운데서 용기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만드는 김에 휴대전화 배경화면으로도 만들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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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이런저런 이유로 아쉽게도 피켓에 담지 못한 문장을 소개해보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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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걷게 하라. 내 속도로 걷게 하라. 삶이 나를 따라, 내주위에서 흐르는 것을 느끼게 하라.
―『도시를 걷는 여자들』, 로런 엘킨, 홍한별 옮김, 65쪽
내게 희망이란 미래의 인지 불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며, 미래에 나타날 결과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그 결과에 개입할 수도 있다는) 감각이다.
―『야만의 꿈들』, 리베카 솔닛, 양미래 옮김, 23쪽
“‘모두를 위한 빵과 장미‘가 있게 되는 날에는 감옥도, 교수대도,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도, 빵을 벌기 위해 거리로 내몰리는 소녀들도 없을 것이다.”
―『오웰의 장미』, 리베카 솔닛, 최애리 옮김, 12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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