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돌봐야 할 시간에 형편없는 문장만 쓰고 있노라면, 그 애한테 써야 하는 시간을 낭비한 것 같아 늘 아이를 실망시키는 기분, 나아가 그 애한테 잘못을 저지른 느낌이었다. 그 시간을 딸과 함께 보냈더라면, 적어도 딱 한 번이라도, 내 몸에서 나 자신의 영혼이 둥실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아기가 깔깔 웃는 순간이 있었을 텐데. 내 딸의 엄마가 되는 일에 담긴 선함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예술하는 일에 담긴 선함은 보다 알쏭달쏭한 것, 유사처럼 흐르는, 허영과 뒤섞인 것이었고. 아기와 떨어져 보내는 모든 순간이 보상해야 할 순간처럼, 돈을 벌거나 아름다운 것을 창조함으로써 합리화해야 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때로 내게는 오로지 그 준엄한 논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때로는 다른 무엇이, 라디오 방송국 사이에서 나는 지직거리는 음으로 덮인 음악 같은 것이 들리기도 했다. 다른 엄마들이 부르는 노래. 그들의 예술은 좀 더 믿기 쉬웠다.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뉴어크에서 열린 웬디 레드 스타(Wendy Red Star)의 전시회에 갔다. 레드 스타의 작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점은 그녀의 딸 비가 계속 작품에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둘은 생활상을 재현한 디오라마 속에서 함께 포즈를 취했고,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갤러리 투어에 협력했다. 직접 디자인하고 어머니가 바느질한 도슨트 의상을 입은 비. 일고여덟 살쯤으로 보이는 비가 크로족 모카신을 만지작거리고, 그 애 어머니는 사무적이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작업 중인 아티스트의 모습입니다.”라고 말하는 영상. 레드 스타와 딸의 초기 협력 작품 중 일부는 그저 비가 어머니를 따라 작업실로 왔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레드 스타는 어느 전시회를 준비하던 중 기록 사진 한 무더기에 비가 색칠해 놓은 것을 발견했다. “그 사진들을 보는 순간, 이게 제가 늘 염두에 두고 작업해 왔던 역사적 개념의 다음 단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레드 스타의 대표작인, 풍자적인 주석을 잔뜩 휘갈겨 쓴 기록 사진들이다. 이건 붙임머리를 고정하는 끈입니다. 난 백인 남성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상상해 보라. 딸이 내 작업물에 낙서를 했는데, 망했다라고 생각하는 대신, 만약에?라고 생각한다니. 거의 초인적인 일이지만, 영감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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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았지만, 웬디 레드 스타의 딸이 가진 본명은 비어트리스 레드 스타 ‘플레처’였다. 그렇겠지. 그 애한테도 아버지가 있었구나. 알고 보니, 비는 세 살 때부터 아버지와 협력하기 시작했다. 그 애의 아티스트 웹사이트에서 찾은 프로필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웹사이트가 있다니! 열한 살인데.) 아버지와 한 비의 첫 번째 협력 작업은 인터뷰 시리즈였다. 비는 아버지에게 꿈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잠을 자면 뇌가 사라지지 않아. 누가 곰팡이 핀 당근을 먹었어. 엄마는 작업실에서 예술하는 중이야(arting).” 엄마는 작업실에서 예술하는 중이다. 아기는 꿈으로 예술하는 중이다. 아빠는 인터뷰로 예술하는 중이다. 처음에 비의 아버지는 내가 가졌던 어머니와 딸 둘뿐이라는 환상을 방해하는 훼방꾼처럼 느껴졌다. 내 안 어딘가에서 오래된 착각이 다시금 깨어나기 시작했다. 부모 중 한쪽에게 더 많이 사랑받을수록, 나머지 한 부모의 사랑이 자리할 공간은 적어진다는 것.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애의 아버지라는 존재가 나타나 내가 내 환상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환상은 언제나 가족이었으니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환상은, 모두가 살아가고, 모두가 무언가를 만들고, 모두가 예술하는 집이었으므로. 다만 그런 집은 그저 상상하기 더 힘들 뿐이었다. 내가 살아 본 적 없는 공간이었으니까. 내 안의 일부분은 언제나 온전한 가족을 원했다. 마당에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벽난로에는 불이 타고, 서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는 가족. 그러나 그런 환상은 늘 손 닿지 않는 곳에 존재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 대신 엄마와 아이로 이루어진 한 쌍이라는 다른 환상에 매달렸다. 그것이 내가 아는 것이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그것은 내가 가능하다고 믿는 환상이었다. 그해 5월,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의 졸업 기념 파티가 있던 밤, 아이 돌보미를 구하지 못했던 나는 딸을 데리고 업타운으로 향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할렘으로 갔고, 아기는 내내 아기띠 속에 들어가 내 가슴에 안겨 있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속에서도, 졸업 기념 파티에서 잡담이 오가는 동안에도, 심지어는 내가 무대에 올라 연설하는 동안에도. 행사 장소에 도착하자, 아기는 내 가슴에 매달린 채 아무 곳에도 가고 싶지 않아 했다. 둥근 대리석 돔형 천장 아래 놓인 나무 무대에 올라간 나는 밝은 조명 때문에 눈을 깜빡였다. 딸은 호기심으로 초롱초롱해져 있었다. 아기띠 속 아기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눈길이 행사 장소 이곳저곳을 떠돌며 우리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을 흡수했다. 연설이 끝나기 직전, 아기는 자기 쪽으로 마이크를 끌어당기더니 마치 이제 연설을 마무리 지을 때가 되었다는 듯, 다 알고 있다는 듯 느린 손뼉을 쳤다. 연설을 마친 뒤, 딸을 여전히 턱밑에 매단 채로, 나는 학생들과 서서 주의를 기울이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되면서 내 시야는 예리해졌다고,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가 깊어지고, 가장 사소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고……. “레슬리,” 그때 학생 한 명이 끼어들었다. “아기 목에 포도가 걸린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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