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지금, 레터를 쓰면서도 마음이 착잡합니다. 한편으로는 3일 밤 이후로 내내, 좋은 책을 만드는 게 내가 조금이나마 이 사회에 책임을 다하는 일일 것이라는 생각도 강하게 하고 있는데요. 오늘 보내드리는 글이 이 분노와 불안 한가운데에서 어떤 방식으로건 독자 여러분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광장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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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사전연재가 나간 직후 여러 분께서 놀랍고 감동적인 감상을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한 분 한 분 회신을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소개해봅니다. 책은 지금 제작 막바지 단계여요. 다음 주에는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무 좋아서 메일 서문 자세히 안 보고 도서사이트에 책 제목 검색까지 하고서야 출간 작업 중인 책인 걸 알았어요. 언제 출간될까요? 너무 기대돼요. 아기는 아니지만 강아지를 기르는 입장에서 비스듬하게나마 공감이 가서 좋았어요."
"나이 마흔에 찾아온 아기에 관한, 결국은 나에 관한 임신일기를 쓰다가 레슬리 제이미슨의 신간 소개 메일을 읽고 발작적으로 소감을 보냅니다. 아기를 둘러싼 세계를 기다려온 줄도 모르고 기다려왔다는 생각이 드는 와중인데, 이 책도 기다려온 줄 모르고 기다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전연재도 출간일도 손꼽아 기다릴게요!"
"돌겠네. 창 밖으로 뛰어내리고픈 마음을 붙잡고 여지껏 살아 있는 이유는 내 인생을 어떻게든 펼쳐놓고 가려는 미련 때문인데 이 책, 이 글이 몇 달 뒤의 저를 살릴 거예요. 어서 마저 읽고 싶네요. 곧 셋째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사실 그냥 읽고 싶다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편집자님 방 쳐들어가서 훔쳐 읽고 싶은 그런 심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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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이제 유아차 안에서도 잠을 잤지만, 움직이고 있을 때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속도를 늦추면 폭탄이 터지는 버스가 등장하는 영화가 떠올랐다. 또, 상어가 헤엄치기를 멈추면 숨을 쉴 수 없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나는 예술계의 상어였다. 수유할 때를 빼면 멈추지 않고 걸었다. 때로는 역사 속 여성들에게 한 자리씩을 헌정한 거대한 삼각형 테이블을 구현한 작품인 주디 시카고(Judy Chicago)의 「디너 파티」 주위를 빙빙 돌기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천왕성을 발견한, 발진티푸스에 걸려 왜소한 체격을 가졌던 여성 천문학자에게 헌정된 자리였다. 접시 위로 푸른 파도가 휘돌아서, 마치 하늘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언젠가는 하늘이 나를 끌어 올려 줄 것만 같았다. 나는 딸이 잠에서 깨어 이 작품을 보기를 바랐고, 동시에 딸이 잠에서 깨지 않아 내가 이 작품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어쩌면, 아기의 욕구로 방해받지 않고 이 작품을 볼 수 있기를 바란 건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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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 시카고, 「디너 파티」. © Judy Chicago. (Photo: Donald Woodm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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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천문학자 캐롤라인 허셜에게 헌정된 자리. © Judy Chicago. Photograph by Jook Leung Photograph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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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함은 집중을 흐트러뜨릴 뿐, 집중력을 전환하거나 심화하는 게 아니라는 관념을 배운 건 어디서였을까? 때로 어딘가 딴 데를 향했다 돌아온 정신의 인식력은 한층 더 예리해진다. 때로 산만함은 거친 표면에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듯 관찰력에 불꽃을 일게 한다. 내 딸은 세상의 다른 모든 것에 대한 내 집중력을 빼앗아 온 한편으로, 내가 그것에 더욱 굶주리도록 했다. 그 애는 세세한 것들까지도 내 마음 속에 모조리 저장하고 싶게 만들었다. 사포의 접시 위 꽃처럼 만개하는 보랏빛 질, 아니면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의 접시 위 세 개의 얼굴들—하나는 울고, 하나는 화가 났고, 하나는 가면을 쓰고 있다. 세 번째 얼굴은 모든 이가 숨기고 있는 내면의 어떤 부분들을 표현한다. 주디 시카고는 말한 적 있다. “저는 또한 제게 아이가 있었다면 원하는 커리어를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무연고 상태이기를 원했습니다.” 무연고. 기저귀와 물티슈가 잔뜩 들어 있고—내 컨디션이 정말 좋을 땐—여벌 유아복까지 넣은 숄더 백을 짊어지고 눈 쌓인 거리로 유아차를 밀 때만큼 그 단어가 생생한 실체로 느껴진 적은 없었다.
시카고는 자신이 아는 아이가 있는 여성 예술가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한다 할지라도 늘 죄책감이 떠나지 않습니다. 작업실에 있는 매 순간 죄책감을 느껴요.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도 죄책감을 느낍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는 이렇게 말한 적 있었다. “제가 세 번의 임신중단을 한 건, 아기가 생기는 일은 제 작업에 있어 재앙이 되리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몸에 있는 에너지는 한정적이기에, 그걸 둘로 나누어야 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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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저너 트루스의 접시 위 세 개의 얼굴들. © Judy Chicago. (Photo: © Donald Woodm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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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의료진이 갓 태어난 내 아기를 신생아실로 데려갈 때 내가 울었다고 썼던 건 진실이다. 잠깐이라도 그 애가 내게서 떨어지길 바라지 않았던 것도 진실이다. 그러나 아기가 신생아실로 가자마자 내가 더플 백에서 노트북컴퓨터를 꺼낸 것 역시 진실이다.
혹시 누가 날 보고 있을세라 주변을 두리번거린 건 부질없는 짓이나 마찬가지였다.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새벽 3시였다. 마치 벌써부터 뭔가 잘못한 것만 같았다. 출산하러 병원에 오면서 노트북컴퓨터를 가져오는 사람이 있을까? 아기가 신생아실로 가자마자 나는 병원 와이파이에 연결하고 이메일을 불러와서 그 주에 마감하는 기사에 대한 사실 확인 질문들 몇 가지에 답변을 보냈다. 며칠 전 나는 편집자에게 수정고를 보내며 추신을 덧붙였다. “두 시간 전에 양수가 터졌어요.” 나는 비몽사몽인 상태였고, 결의는 확고했고, 수치심과 자부심으로 눈앞이 흐렸다. 내가 병원에서 잡지 기사를 마감하고 있다니! 아기를 낳은 직후에! 그러면서, 복도 끝 신생아실에서 황달기 있는 몸에 조그만 기저귀를 차고 이상한 푸른 태양 아래 빛을 받으며 잠들어 있을 내 어린 딸을 상상했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쓸 때, 내가 노트북을 펼치기 전 머뭇거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들이 아기 요람을 밀고 떠나자, 나는 울었다. 어쩐지, 나는 아기가 떠날 때 울었던 버전의 나 자신이, 아기가 떠나자마자 노트북을 향해 손을 뻗었던 버전의 나보다 좋았다. 어쩐지. 마치 내가 바로 정확히 그 죄책감을 느끼도록 길들지 않았다는 듯이.
딸을 태운 유아차를 밀며 「디너 파티」 너머 갤러리를 돌아다니다가, 장식 없는 새하얀 갤러리에 놓인 요람을 향해 몸을 숙이고 있는 한 여자를 찍은 사진 몇 점을 발견했다. 예술가 레아 루블린(Lea Lublin)의 1968년 퍼포먼스 「몽피스(Mon Fils)」의 사진이었다. 루블린이 생후 7개월 아들 니콜라스를 파리 시립 근대미술관으로 데려와 갤러리 중 한 곳에 요람을 설치하고 그곳에서 아기를 돌본 퍼포먼스다. 한 인터뷰에서 루블린은 이 퍼포먼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의 큰 기쁨은 아들을 낳은 일이었고,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제 일상의 순간을 예술적 공간, 바로 미술관으로 전치(轉置)하는 일이라고요.” 때로 아름다움을 가장 강렬하게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데서 솟아난다. 갤러리에 놓인 요람 같은 것이다. 루블린은 우리가 육아를 목도할 것이라 예상치 못한 공간으로 엄마 되기를 가져와서, 그것을 위반적인 것, 그리고 공공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상 속 순간을 전치했다. 또, 퍼포먼스에 관해 설명할 때 그녀는 이론이 아닌 정서에 의지했고—큰 기쁨은 아들을 낳은 일이었고—이 역시 이론으로 단단히 무장한 지성인들의 냉정한 흰 벽에 날것의 감정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위반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니까, 그렇다. 내 안의 비평가는 그녀의 말에서 결정적인 단어는 전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안의 엄마는 결정적인 단어가 기쁨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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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 루블린, 「몽피스」. 출처: lealubli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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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 존재하면 엄마 아니면 아기가 된다.
누군가를 보살피거나,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엄마, 작가, 교사, 아내, 연인……
수많은 자아에 동시에 깃들어 사는 고통과 기쁨
레슬리 제이미슨의 지적인 문장이 출산이라는 동물적 경험과 만나며 찢어질 듯 폭발적인 힘을 가진 책이 탄생했다. 자기 변혁을 이어가는 작가와 동시대를 살며 그를 목격할 수 있어 기쁘다. 나는 제이미슨을 나침반 삼아 걷는다.―하미나(작가)
레슬리 제이미슨을 읽을 때마다 그녀의 언어로 지은 집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왜 이혼 소송, 젖먹이 아기와 씨름하는 싱글맘이라는 까끌까끌한 현실도 그녀의 고요한 응시와 세밀한 묘사라는 천을 통과하면 향초에 둘러싸인 욕조나 비단에 수놓은 한 폭의 자수가 될까? 하지만 제이미슨의 매력은 아름다움이 전부가 아니다. 분열된 욕망과 상실이 남긴 그늘, 삶이란 치러야 할 대가의 연속이라는 불편한 진실까지 정직하게 마주하게 하기에 이 작가의 글을 사랑한다. 위태로운 나를 돌보고 아이를 뜨겁게 안아줄 힘을 또다시 찾는다. 이 재건의 과정에 중독된다.―노지양(번역가, 작가)
편집자로서 만드는 레슬리 제이미슨의 두 번째 책이자, 독자로서 읽은 네 번째 책이에요. 그녀의 신작을 읽을 때마다, 제이미슨의 글쓰기를 "목격할 수 있어 기쁘"다는 하미나 작가님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게 됩니다. 읽다가 비명을 지르고 싶어지는 그런 책은 잘 없지요, 그런데 이 책은 제게 몇 번이나 그런 순간을 안겨주었답니다. 에세이라는 장르의 정수를 보여주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문장들을 빨리 함께 읽고 싶어요.
12월 13일 금요일, 사전 연재 마지막 화가 찾아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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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름다움은 이미 때 묻은 것』, 어떻게 읽으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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