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나는 아기가 온전히 내게만 속한 것 같다고 느꼈다. 때로, 아기가 내 옆에 놓인 아기 침대에 누워 자고 있을 때면, 내 몸에 남은 흉터를 어둠 속에서 손가락으로 쓸어 보았다. 굵게 꿰맨 자국, 절벽 사면에서 튀어나온 바위처럼 흉터 위로 불룩 솟은 살. 그 기다란 흉터는 내 몸속으로 이어지는 구멍이 아닌,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느껴졌다. 아기가 온 세계.
처음부터 내 아기 안에는 선함이 존재했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님을 나는 알았다.
아기의 몸이 아기띠로 안을 수 있을 만큼 자라자, 나는 종이접기를 연상시키는 신축성 있는 천 소재 둥지 속에 아기를 넣고 품에 꼭 붙인 채 어디건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추운 바깥을 몇 시간이나 서성이다 돌아오면 손가락에 감각이 없었고, 그때마다 내가 얼마나 간절히 집을 벗어나고 싶었나 생각했다. 아기의 손가락도 확인했다. 그러나 내 다운재킷 안에 파묻힌 채 가슴에 안겨 있던 아기의 몸은 따뜻했다.
산책하면서, 여태까지는 몇 년이나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던 나무들의 이름을 배웠다. 단풍버즘나무, 은단풍나무, 비술나무. 아기방 창밖의 헐벗은 가지에서 움이 트고 꽃이 피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 첫 후원자*가 한 말을 떠올렸다. 그저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된다는 사실이 그녀가 믿는 신이라고 했다. 그녀가 믿는 신은 수염 난 할아버지의 유령 같은 신체가 아니라, 이 부조리하면서도 엄청난, 눈에 뻔히 보이는 곳에서 일어나는, 과격한 동시에 흔하기 이를 데 없는 변신 속에 살아 숨 쉰다.
매일, 매시간 아기와 함께 있으려면 면밀한 주의가 필요하고, 이때 주의는 아기를 향한 것—아기가 침대 모서리에 얼마나 가까이 굴러가는지, 아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건 잠에서 깨려는 건지 아니면 그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이런 온갖 사소한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 외의 다른 모든 일들은 지루하기 짝이 없을 뿐이었다. 어둠 속에 오래 있다 보면 앞이 잘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시선은 더욱 민감해졌다.
아기가 태어난 뒤 첫 몇 달 덕분에, 다시금 하루하루가 보였다. 모든 게, 우리 일상을 이루는 천편일률의 순간들이 별안간 그곳에 존재하게 되었다. 젖을 먹던 아기가 입가에서 젖 방울을 졸졸 흘리며 킥킥 웃는 모습. 아니면 비 내리는 오후, 잠든 아기를 아기띠로 안은 채 몇 킬로미터나 걷고 있자면 우리의 살갗에 떨어지는 바늘 끝만 한 이슬비. 아기의 숨결이 내 갈비뼈에 닿으며 부풀어 올랐다. 플리스 안감을 댄 손모아장갑 속 아기의 손은 잠에서 깰 때면 새처럼 움찔거렸다.
아기와 보낸 첫 나날은 과잉이고 환각이었다. 엄청났지만, 그 나날을 표현할 언어를 찾으려 들면 전부 별것이 아니었다. 젖과 기저귀, 젖과 기저귀, 젖과 기저귀. 아기를 돌보는 일이라는 놀라운 발견은 놀랍다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것이거나, 솔직히 말하면, 발견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애착은 모든 사물을 거짓된 비범함의 광채로 물들인다. 사랑에 흠뻑 취한 내 눈은 무언가가 정말로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분별할 수 없었다.
나는 이미 12단계 회복 모임에 참여하면서, 내가 경험하는 모든 건 과거에 누군가에 의해 경험된 일임을 배웠다. 이 배움 덕분에 부모가 될 채비를 할 수 있었다. 부모 되기란 독창적인 일이 아니다. 모두가 아기를 갖는 건 아니지만, 모든 사람은 한때 아기였다. 그렇기에, 애초부터 전혀 독창적인 일이 아니다.
아기와의 나날을 일기장에 조금씩 기록하다 보면 내 안의 비평가와 엄마가 다투기 시작했다. 비평가는 서정적인 세부 사항을 선택하고 싶어 하지만—내 딸은 젖은 벚꽃 송이들 속에 작은 손을 파묻었다.—내 안의 엄마가 선택하고 싶어 하는 것은…… 전부 다였다. 그녀는 선택하지 않기를 원했다.
한편, 제3의 자아—몇 주째 하루에 고작 몇 시간 눈을 붙인 여자—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20년 뒤 미래로 가고 싶어 했다. 이런 나날들 속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이 나날을 전부 기억하는 미래로.
한밤중,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동계올림픽 중계를 보고 있을 때면 내 딸의 젖내 나는 숨결이 내 뺨에 훅 끼쳤다. 나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황금 시간대가 아닌 새벽 3시에 방영하는 아무 중계나 봤다. 2인 봅슬레이, 스켈레톤 챔피언십, 아이스댄싱, 다운힐 스키 훈련 중계.
풍부한 젖으로 가득한 밤, 구겨진 옷, 갈라진 입술과 축축한 브라, 증기 난방기가 내뿜는 열대의 호흡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따스한 은신처는 텔레비전 속, 뽀드득거리는 흰 눈으로 뒤덮인 먼 곳의 슬로프, 얼음과 레일 위를 긁고 가르는 스키와 보드와는 정반대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찬 공기 속에 입김을 내뿜었다. 그들의 회전은 절도 있으면서도 가차 없다.
성인이 된 뒤로 나는 줄곧 시간이 다른 것, 특히 예술로 변환할 수 있는 자원이라 여겼다. 시간은 내 무한한 야망의 수단이었으며, 내 야망은 세계를 이루는 물질들을 이해하고 이로써 내 존재를 합리화할 방법을 만들겠다는 정신 나간 시도였다. 살아 있는 일은 어째서 내게 살아갈 자격이 있는가를 끊임없이 합리화하는 과정을 수반했다. 한 번에 가로대 하나씩 놓아 거대한 틈을 넘어갈 다리를 짓는 것처럼.
그러나 아기가 생기자 시간은 이제 어떤 성취를 수호하는 부적인 양 거래되는 화폐가 아니라, 헤치고 나가야 하는 것, 물처럼 헤엄쳐야 하는 것이 되었다. 중요한 건 그저 한 시간 한 시간을 움직여 나아가는 게 다였다. 그게 우리의 유일한 할 일이었다. 해방감과 소진감을 동시에 안기는 일이었다. 나는 언제나 할 일 목록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작은 생물을 살아 있게 하는 것 말고는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다시피 했다. 내 하루의 리듬은 단순했다. 왼쪽 가슴, 오른쪽 가슴. 왼쪽 가슴, 오른쪽 가슴. 상어에게 출산은 일시적인 식욕 억제제로 작용하고, 그렇기에 새끼가 잡아먹히는 일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간절히 글을 쓰고 싶었다. 글쓰기가 최고조에 달한 순간이면, 글을 쓴다는 것이 나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닿는 일 같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아기가 태어난 직후의 나날 동안에는, 나, 내 집, 내 아기 같은,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있는 것들보다 더 큰 무언가에 닿는 기분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일, 여행, 강의, 마감에 온몸을 던질 수 없는 이상, 내가 이룬 삶을 속속들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남편, 이 결혼. 매일 느끼는, 떠나고 싶은 욕망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아기를 데리고 추운 동네를 서성거리다가, 점점 커지는 동심원을 자꾸만 만들며 집으로부터 멀어지고 싶다는 욕망.
*) 알코올중독 회복 모임에서, 이미 회복의 단계를 거친 사람이 단주를 시도하는 회원의 후원자가 되어 회복 과정을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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