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 싱어, 김승진 옮김, 위즈덤하우스, 2024
2년 전,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뒤 정부는 ‘참사’를 ‘사고’로, ‘피해자’나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기하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이를 두고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이 책은 ‘사고’라는 말이 “우발적”이며, “예견되거나 예방될 수 없다”는 잘못된 함의를 지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는 사고의 책임을 사회가 아닌 개인이 감당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죠. 책의 저자는 ‘사고’로 친구를 잃고 난 뒤 사고의 방대한 역사를 탐구해나갔다고 해요. 그리고 ‘사고’라는 말이 더 취약한 사람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시스템을 가리고 있다고 짚어내죠. 이태원 참사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이 연달아 무죄 판결을 받고 있는 지금, 함께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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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샤 허시, 장상미 옮김, 갈라파고스, 2024
버스 정류장 설치 작업을 통해 알게 된 책이에요. 한국어판이 출간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신간 목록에서 확인하고는 냉큼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그나마 있는 여가 시간마저도 운동하고, 외국어를 익히며, 미래를 위해 생산적으로 ‘갓생’ 살기를 요구받는 요즘. 휴식과 잠은 어쩌면 스스로를 도태시키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흑인 페미니스트인 저자는 스스로를 “낮잠의 주교(Nap Bishop)”라고 칭하며, ‘휴식’이 자본주의와 백인우월주의에 저항하는 해방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일하지 않음으로써, 그리고 생산하지 않음으로써, 돌봄의 저항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적 착취를 가속화하는 휴식이 아닌, 체제에 저항하는 휴식을 알아가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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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 동녘, 2024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할 때, 이사 가기 위해 부동산 어플을 열었다가, ……..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치솟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서울만 벗어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순진한 낭만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들을 살펴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타인과 스스로를 착취하기에 도시가 작동할 수 있다면, 도시가 기반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시스템 자체에서 벗어나야만 대안적 삶이 가능하지는 않을까요? 이 책의 저자는 누구도 착취하지 않는 삶이 가능한지 실험하기 위해 시골살이를 시작했다고 해요. 언젠가 도시에서 벗어나 살기를 바라는 한 사람으로 단순히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정치적이고 저항적인 시골살이를 꿈꿔보고자 장바구니에 이 책을 담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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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행성B, 2024
삼림교육전문가이자, 이름 없던 들꽃에 ‘쇠뿔현호색 ’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식물 전문가 김영희 작가의 책이에요. 식물에 관련된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준다고요. 반비 편집부에서도 여성 과학자의 책을 야심차게 준비 중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는데, 여러모로 참고할 부분이 많아 반갑게 골라보았습니다. (그 책, 그러니까 한국에서 유일하게 갯가재를 연구하며 눈길이 닿지 않던 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계통분류학자이자 갯가재와 연구 못지않게 가족과 아이를 사랑하는 리서치 맘의 에세이는 《릿터》에서 연재를 시작했어요. 황희승 작가의 「나만 귀여워? 갯가재」에 많관부! 많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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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미, 동아시아, 2024
30대 중반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은 ‘불만 많은 암 경험자’가 당사자를 통제하고 죄책감을 강요하는 암 치유 문화를 비판하며 “지 쪼대로 아플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완치를 목표로 재배치되는 일상 속에서도 암 경험자가 누려야 할 존엄과 자유는 무엇인지 치열하게 탐구한 기록이라고 해요. “무리하지 말고 푹 쉬어.” “암환자는 밀가루 먹으면 안 된다는데…….”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래. 차가버섯 한번 먹어봐.” 모두 쾌유를 기원하는 말들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청순한 무례’로 느껴진다는 고백에 나 역시 언젠가 저 중 하나를 쉽게 내놓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되었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에서 아픈 사람을 보는 일은 늘어날 테고, 언젠가는 저 역시 높은 확률로 당사자가 되겠지요. 완치만큼이나 존엄한 삶이 중요한 환자 당사자에게,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지 몰라 망설이는 주변인에게 자유를 줄 이 책을 늦지 않게 읽어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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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사 피보스, 송섬별 옮김, 갈라파고스, 2024
최근 몇 년 사이 영미권에서 좋은 글을 쓰는 여성 작가로 ‘멀리사 피보스’라는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심심찮게 보아왔던 터라, 이 책을 어디에서 어떻게 소개해주실지 아주 기대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직 정식 출간도 되기 전이지만 반가워 장바구니에 담아보았습니다. 반비에서 곧 선보일 또 한 명의 빛나는 여성 에세이스트 레슬리 제이미슨의 신간과 함께 읽으면 한층 더 좋겠다는 기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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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 닌, 하재홍 옮김, 아시아, 2012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있었던 그날, 축하와 기쁨의 목소리와 함께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 작가’랄까, 아시아의 중요한 작가들을 소개하는 분들도 계셨어요. 덕분에 장바구니에 담은 책입니다.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은 베트남 전쟁을 다룬, 작가의 참전 경험을 토대로 한 소설이에요. 소설이 그리고 있는 참상은 당시 정부가 선전하고자 했던 내용과 대단히 달랐고, 베트남에서는 출간 당시 판매금지 처분을 받습니다. 해외에서 널리 읽히고 문학상을 수상한 다음에야 베트남에서도 읽힐 수 있게 되었다고 해요. 어느 독자는 인터넷서점에 “어느 문장도 버릴 게 없다”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정서적 밀도가 엄청난 작품이라고 합니다. 베트남 전쟁은 한국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은 사건, 한국이 가해국으로서 돌이켜봐야 하는 역사라는 점에서 한국의 독자로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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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커 켈트너, 이한나 옮김, 위즈덤하우스, 2024
여러분은 혹시 ‘이런 순간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제게 2024년은 ‘나를 살게 하는 순간’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는 경험이 몇 번 있었던 해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출간된 것을 보고 반가웠어요. 책의 부제는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경이의 순간은 어떻게 내 삶을 일으키고 지탱해주는가”입니다. 경외심(awe)은 심리학에서 그렇게 많이 다루어진 감정은 아닙니다. 저자는 경외심이 우리가 타인에게 관심을 쏟게 되고 우리 본성의 인도적 측면을 이끌어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 이 감정을 연구했다고 해요. 책은 경외심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삶의 여덟 가지 경이와 만났을 때’로 설명하는데, 여기에는 타인의 용기나 친절, 스포츠 경기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하나 되는 경험, 대자연, 음악, 예술, 위대한 통찰이나 깨달음 등이 포함됩니다. 세속적인 세계를 뛰어넘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다시 말해 우리로 하여금 세속적인 것들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는 경험들인 것이지요. 사회 전반에서 경제적인 여건이 점점 나빠지고 있기에 잊기 쉬운 경험들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그럼에도 경외심을 경험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눈길이 갔던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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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릴런드, 송섬별 옮김, 어크로스, 2024
번역가 송섬별 선생님이 언젠가 ‘시각장애에 관한 책을 번역하고 있는데 『거기 눈을 심어라』가 출간되어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만큼 시각장애 문화 전반을 다룬 책이 없어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가 출간된 걸 보고, ‘이 책이었구나’ 생각했답니다. 반비에서 2022년 펴낸 『거기 눈을 심어라』는 문학, 철학, 대중문화 콘텐츠가 시각장애(인)를 어떻게 재현해왔는지를 살피는 문화사이자 문학·예술 비평이면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간 자신의 경험을 엮은 에세이입니다.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의 저자 앤드루 릴런드 역시 시력을 잃어가는 시각장애 당사자로서 시각장애를 둘러싼 역사와 사회를 탐구했다고 해요. 나란히 놓고 읽을 만한 점이 많을 듯해 담아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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