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태, 시대의창, 2024
한승태 작가는 지금은 『퀴닝』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인간의 조건』을 읽었을 때부터 인상 깊었던 저자입니다. 『퀴닝』은 꽃게잡이 배, 편의점과 주유소, 돼지농장, 비닐하우스 등 온갖 곳에서 온갖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간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노동과 계층에 대해서 쓰고 있는 책입니다. 몸으로 쓰는 작가, 생생함과 날카로움을 동시에 지닌 작가라고 생각했었어요. 한승태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기에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이번 책에서는 기술 발달로 인해 근미래에 사라질지도 모를 직업들에 관해 쓰고 있다고 해요. 콜센터 상담, 택배 상하차, 뷔페식당 주방, 빌딩 청소. 이번 책에서 작가가 겪은 풍경들입니다. 제목에서 ‘멸종’하는 동사는, 동사로서의 이 직업들을 말하는 것일 테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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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디디, 빨간소금, 2024
크게 들리지 않는 중요한 이야기들을 길어 전달하는, 제가 좋아하는 출판사 빨간소금의 책이에요. ‘커먼즈’라는 단어를 혹시 들어보셨나요? 요즈음 많이 이야기되는 단어인데, 커먼즈 담론이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좀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 책의 부제는 ‘자본주의를 넘어서 삶의 주권 탈환하기’입니다. 저자는 흔히 ‘공유자원’으로 번역되곤 하는 커먼즈는 자원의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안내하는 패러다임이라고 말해요. 삶의 주권을 지키려는 자율성, 기꺼이 의존하며 살아가는 돌봄과 상호의존성, 타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공통의 감각…… 그런 관점에서 커먼즈를 이야기하는 책인데, 쉽고 친절하게 쓰여 있다는 점에서 1번으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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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런 벌랜트, 박미선·윤조원 옮김, 후마니타스, 2024
정동 이론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오래 기다려온 책입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잔인한 낙관’, 좋은 삶에 대한 환상과 애착이 우리를 어떻게 마모시키는가에 대해 다룹니다. 절대로 달성할 수 없는 욕망, 가령 부자 되기라든가 그린듯한 행복한 가정 같은 것에 대한 환상 말입니다. 그러면서 낙관 때문에 오히려 소모되는 상황, 개인의 이성이나 의지나 합리적 선택 같은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몸, 그리고 몸과 연결된 ‘애착’이라는 정동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해요. 벌랜트와 종종 같이 이야기되는 사라 아메드의 『행복의 약속』이 떠오르는 책이기도 한데요. 『행복의 약속』은 ‘행복’이 어떻게 우리를 순응적인 존재로 묶어두는가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라, 나란히 놓고 읽어볼 만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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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아로즈 크레이그, 신혜빈 옮김, 최순규 감수, 문학동네, 2024
새 좋아하세요? 어쩐지 요새 새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느낌……. 얼마 전에는 교통상황을 파악하는 CCTV로 '새호리기'라는 친구를 관찰하는 팁도 입소문을 탔지요. 멸종위기종인 새는 조금도 괴롭히지 않으면서 코앞에서 그 맹금류의 멋진 자태를 감상할 수 있는 천재적인 방법! 크게 관심이 없던 저도 일상 속 새들이 은근히 신경 쓰이던 와중에(최근에는 회사 근처에서 "까치둥지 보호전주"라는 전봇대도 발견했답니다🚏) 세계 최연소로 5천 종이 넘는 새를 본 젊은 탐조인의 에세이가 나와 반가웠어요. 담당 편집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오타쿠의 자기 장르 이야기"인 이 책의 무드를 "최애 기다리다 두피에 구더기 들어간 썰 푼다"로 소개해주셨는데, 과연 어떤 에피소드일지……?!(두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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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미술문화, 2024
2017년 휴가지는 별다른 고민 없이 치앙마이로 정했습니다. 이다 작가님의 『내 손으로, 치앙마이』를 읽었기 때문이에요. '일러스트레이터 이다의 카메라 없는 핸드메이드 여행일기'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시리즈에는 사진이 한 컷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모든 장면은 작가가 직접 쓴 글씨로, 눈으로 관찰해 손으로 옮긴 그림들로 소개되는데, 그것들이 정말 생생하고 웃기고 흥겹고 스릴 넘쳐서 저도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아주 커졌었어요. 책과 함께 치앙마이로 떠난 휴가는 그야말로 대만족. 그사이 해외여행이 불가능했던 코로나 시기도 지나고 7년 만에 소개된 이번 여행일기의 무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입니다. 때마침 러시아는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 리스트에 있는 곳, 하지만 전쟁으로 당분간은 가기 어려운 곳. 이다 작가님의 눈으로 본 러시아 곳곳을 구경하며, 언젠가 이 책과 함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탈 그날을 기다려보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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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야 시멀리, 류기일 옮김, 문학동네, 2022
여성으로 살면서 하루라도 화를 내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일 텐데, 최근에는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로 SNS 타임라인이 터져나가고 있지요. 또 이런 상황인가, 세상이 바뀌기는 하는 것인가……. 그렇게 무력감에 빠져들려던 찰나 떠오른 책입니다. 세상은 여성을 분노하게 하면서도 그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도록 억누르지만, 여성의 분노야말로 '불의에 대항하는 제1방어선'이며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메시지가 정신을 바짝 일으켜세우는 것 같아요. "분노하는 여성은 태양보다 밝게 타오른다."는 문장은 또 어떻고요. 세상이 저를 빡치게 할 때마다 언제고 다시 이 책을 펼쳐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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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아침 일찍 군산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이틀간 군산회관에서 열리는 ‘군산북페어 2024’에 가기 위해서였지요. 폭염에 지쳐 있던 여름의 끝에서 책과 책을 둘러싼 사람들로 기운을 충전할 수 있었는데요. 군산에서 만난 수많은 책들 중 세 권을 소개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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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소피트·로사마리아·마리·킴얏뚜·김로빌린, 좀비출판 엮음, 좀비출판, 2023
북페어에서 가장 처음으로 산 책이에요. 낯선 곳으로 여행 갈 때마다 가장 몸으로 남는 기억들은 ‘요리’에 관한 기억입니다. 돌아온 지 몇 해가 지났는데도, “여행지에서 먹었던 그 맛이 아니야.”라고 외치게 되는 걸 보면요. 어쩌면 『식탁은 걷는다』는 떠나온 맛에 대한 기억에 답이 될 요리책입니다. 태국, 페루, 멕시코, 미얀마, 필리핀에서 온 여섯 명의 이주민이 자신의 기억 속의 요리를 어떻게 이국의 땅인 한국에서 되살릴 수 있을지, 그 레시피가 담겨 있어요. 요리를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레시피에 얽힌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저의 식탁 위에서는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지 궁금해서 구입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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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괴는여자들·카로우 셰지아크·김규진·김원영·김인정·박초롱·이연·이훤·임동우·하미나, TohPress(턱괴는여자들), 2024
사진작가 카로우 셰지아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양로시설 ‘베타니아의 집’에서 5년간 요가 수업을 진행하며, 그곳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의 초상 사진을 찍습니다. 한국에서는 “초고령 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도 편견과 터부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외로움의 장소”인 양로시설이지만, 셰지아크의 초상 사진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삶이 담긴 고유한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셰지아크가 찍은 사진들은 여덟 명의 한국 작가에게 도착해, ‘외로움’과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내지요. “외로움의 원인을 개인의 내면이 아닌 사회 구조에서 찾는” 이 책은, 단단하게 붙어 있어 도무지 떼어낼 수 없을 것 같은 ‘나이 듦’과 ‘외로움’이라는 두 이미지를 다르게 바라보려는 시도입니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보내온 사진들이 한국이라는 땅에서 어떻게 피어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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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시타 류이치, 송태욱 옮김, 힐데와소피, 2024
얼마 전 만화 『골든 카무이』를 읽은 덕분일까요. 아니면 일본의 아나키스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가 워낙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덕분일까요. “우리는 아이누 인민, 오키나와 인민, 조선 인민, 대만 인민의 반일투쟁에 호응하여 그들의 투쟁에 합류하기 위해 반일제 무장투쟁을 집요하게 전개하는 늑대다.”라는 뒷표지 문구에 끌려 집어 들었습니다. 전범 기업 등에 폭탄 투쟁을 벌여온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주요 멤버 다이도지 마사시를 중심으로 다룬 책이라고 해요. 플랫폼C 홍명교 활동가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이 ‘정의로운’ 무장투쟁의 어두운 면모가 가장 폭력적인 국가권력을 떠받쳐 왔던 것은 아닐까?”라고 말하는데요. 일본 안에서의 반일 투쟁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라 책을 집어들었지만, 저항과 투쟁에 언제나 따라붙는 폭력의 윤리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관심이 생겨요. 더불어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 역시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어요. 다이도지 마사시의 서간집 『최종 옥중 통신』도 읽어보려고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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