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인 저자가 인지장애를 가진 딸을 보살핀 경험을 바탕으로, 돌봄윤리에 관해 고찰하는 책이에요."
처음 편집자에게 책 소개를 간략하게만 들었을 때 가볍지 않은 주제라서 그런지 막연히 어려운 책일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진지하고 무겁게 작업하면 더욱 어려워보일 것 같았습니다.(막상 읽어보면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ㅎㅎ)
어려워 보이는 키워드들을 독자들이 친근하고 쉽게 느끼게끔 서체와 표지 이미지 모두 단순한 형태를 지향했습니다. 서체는 무게감이 덜한 탈네모꼴 글자 ‘sandoll 서울’을 사용했고 이미지는 인지장애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인지장애 당사자를 위한 훈련 프로그램 중에 (아마도 모두에게 친숙한) ‘따라 그리기’가 있더라고요.(책 속에서 인지장애(cognitive disability)는 “생애 전체에 나타나는 인지 능력의 다양한 저하”를 가리키며, ‘따라 그리기’ 활동은 주로 인지 능력 저하를 방지하기 위한 활동의 하나다.—편집자 주) 저도 어릴 때 많이 했는데, 점 위의 숫자에 의존해서 하나씩 연결하여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이 『의존을 배우다』라는 제목과 꼭 맞았습니다.
그 방식을 찾았으니 무엇을 그려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궁극적으로는 피어나는 삶, 즉 좋은 삶에 대해 질문하는 책이기도 하고요. 때문에 모두의 삶이 피어나는 것만 같은, 밝고 명랑한 느낌의 이미지가 떠올랐어요.”라는 편집자의 말이 떠올라 꽃을 그리기로 했습니다. 엄마와 딸이 서로 사랑하고 의존하며 더 나아간다는 점이 불완전하고도 완전한 행위로 생각되어, 꽃잎의 선은 다 닫지 않고 마지막 하나를 열어두었습니다.
표지 지류는 스케치북 위에 그린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미세한 티끌이 있는 ‘켄도’를 사용했고 배경에도 약간의 텍스쳐를 주었습니다.
본문의 구성도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장을 구성하고 있는 층위가 많은 책인데요. 처음엔 로마자 숫자가 책을 한층 어렵게 보이게끔 한다는 생각에 최대한 삭제하고 싶었지만 구조적으로 파악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다시 넣기도 했습니다.
생활 속에서 자주 접하지 않는 주제이기에 낯설게 느낄 수 있지만 읽다보면 빠져드는 책입니다. 조금 더 쉽게 책을 집어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는데 독자분들은 어떻게 읽고 계실지 궁금하네요! :)
―디자이너 N(『의존을 배우다』 디자이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