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노」가 성공을 거두자 영화계 사람들은 내게 내가 퀴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라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한테 해가 될 거라고, 내게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고, 그게 최선이라고 나를 설득했다. 그래서 나는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했다. 사진 촬영을 했다. 폴라를 비밀로 간직했다. 그러면서 우울증과 쓰러질 정도로 심각한 공황발작에 시달렸다. 나는 거의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다. 몸속에 못이 가득 든 것처럼 무감각했고 조용한 고통에 시달렸지만, 그 고통이 얼마만큼 큰지조차 표현할 수 없었다. 특히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적어도 남들이 그렇게들 말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과한 거라고, 내가 감사할 줄 모른다고 스스로를 비난했다. 아프다고, 꼼짝도 할 수 없다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기에는 죄책감이 너무 컸다.
마이클 무스토의 기사를 읽고 나서 매니저에게 연락했지만, 그 결과 매니저와의 통화 내용이 상세히 담긴 블로그 글이 또 하나 등장했을 뿐이다. “나는 화가 나서, 누군가가 동성애자인지 궁금해하는 건 비열한 짓이 아니라고 꽥 소리 질렀다.” 맞다. 단순히 누군가가 동성애자인지 궁금해하는 건 비열한 짓이 아니다. 사려 깊지 못하며 위험천만한 일은, 젊은 퀴어의 여정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글을 쓴 일이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최초로 상영된 「주노」는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당시 내게는 개인 홍보담당자가 없었다. “「여전사 지나」를 본 적 있으세요?”라는 십 대다운 순진한 질문을 했더니 “아뇨, 전 레즈비언이 아니라서요.”라는 반응이 돌아온 경험 때문에 혼자서 홍보에 나서는 게 낫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 홍보담당자와 더는 함께하지 않는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그 사람이 내게 한 말들은 사람들이 경고하던 전형적인 할리우드의 언어였다. 가식적이고 공허하며 동성애혐오적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처음 얻은 유명세를 홀로 헤쳐나갈 준비도, 경험도 부족했다.
캐나다에서 배우 생활을 하며 보낸 성장기는 할리우드와는 달랐다. 특히 나 때는 그랬다. 캐나다에서는 번지르르한 외양은 중요치 않았다. 찬란한 외모에 그다지 집착하지도 않았다. 나를 숨겨야 한다는 압박은 대부분 「주노」와 함께 찾아온 것이다.
나는 「주노」가 최초로 상영되는 자리에 청바지와 웨스턴풍 셔츠를 입고 갈 계획이었다. 내 생각에는 쿨한 옷차림인 데다가, 셔츠에는 칼라도 달려 있었다. ‘이 정도면 멋지지 않나?’ 나는 생각했다. 내가 입으려는 의상을 알게 된 폭스 서치라이트의 홍보팀은 할리우드 시스템 특유의 난리를 피우며 나를 블루어 스트리트에 있는 홀트 렌프루 백화점으로 급히 데려갔다. 나는 수트를 입겠다고 제안했으나, 그들은 드레스와 하이힐을 고집했다. 홍보팀이 내 의상을 놓고 감독과 상의한 끝에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다. 홍보팀의 의견에 동의한다며 내게 주어진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이클 세라는 스니커즈를 신고 슬랙스와 칼라 달린 셔츠를 입기로 했다. 내 눈엔 멋져 보이는 의상이었다. 왜 마이클은 홀트 렌프루 백화점에 가지 않아도 되는가? 그는 숨길 게 없으니까, 그는 승인받은 존재니까. 그는 자기 역할에 적합한 사람이니까.
내가 불충분하며 잘못된 존재, 나 자신을 부정하는 대가로 칭송받는 동안 숨겨 두어야 하는 존재인 어린 퀴어라는 메시지를 듣는 건 가파른 비탈에 있는 것과 같았고, 나는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이 비탈을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피부에 들러붙은 막처럼 씻어낼 수 없었다. 스스로를 벌하기라도 하듯 내 살을 찢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들만큼이나 나도 나 자신에게 역겨움을 느끼게 되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보내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주노」 기자 간담회, 미팅, 실제로는 두 계절에 달하는 ‘시상식 시즌’. 노바스코샤에서는 마이클 무스토의 “섹슈얼리티 맞추기 게임”을 뛰어넘을 기세로 내 섹슈얼리티를 문제 삼는 기사가 또 하나 등장했다. 1987년부터 핼리팩스에서 출간된 ‘매거진’인 《프랭크》는 자칭 풍자 잡지이지만 실상 황색언론에 가까운 매체였다. 아버지가 샌타모니카에 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선댄스 영화제에서 찍은 내 사진이 “엘런 페이지는 동성애자인가?”라는 큼직한 헤드라인과 함께 잡지 표지에 등장했다고 알려주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친구가 내준 손님용 별채 침대에 누워 눈을 질끈 감자 눈물이 뺨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제발 꿈이었으면 좋겠어, 제발.’
핼리팩스로 돌아가자 잡지가 사방에 깔려 있었다. 마트에 가도, 주유소에 가도, 구멍가게에 가도 그 잡지가 눈에 들어왔고…… 그것들은 전부 이렇게 묻고 있었다. “엘런 페이지는 동성애자인가?” 폴라는 잡지를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다른 잡지들 사이에 숨겨 놓았다. 한번은 사우스엔드에 있는 어느 주유소에서 잡지를 한 무더기 훔쳐 오기도 했다고 했다.
그해 여름 폴라와 함께 누리던 자유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잡지에 실린 사진 중에는 폴라가 함께 나온 것도 있었다. 파티에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핼리팩스를 점점 잠식해 가던 칙칙한 콘도 건물 중 한 군데에 있는 누군가의 아파트에서 모였던 그날 밤이 기억난다. 기사는 떠도는 소문을 들먹이며 우리가 사귀는 사이인지 아닌지를 떠들어댔다. 폴라는 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 않은 상태였다. 사진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나는 깨달았다. ‘내 친구들 중 하나가 사진을 잡지에 보냈구나.’ 누구인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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