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라보는 반듯하고도 비스듬한 시선으로, 독자들의 시야를 깊고 넓게 해주는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2011년 4월 25일 첫 책 『철학 연습』을 시작으로, 반비가 책을 통해 독자 여러분을 만나온 지도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개한 80권의 책 각자의 얼굴은 다양하지만, “독자들이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아파하고 불편해할 수 있는 책들을 펴내고 싶”다는 지향만큼은 지켜내려 노력했습니다. 지난 10년, 반비와 함께해주신 여러분은 어떤 책과, 어떤 기억을 공유하고 계신가요? 오늘 책타래에서는 반비의 10년을 간추려보았습니다. 반비 하면, 어떤 책이 떠오르시나요? 반비의 책들 중에서 여러분의 관심사에 맞는 책은 어떤 것인가요? 혹시 아직 찾지 못하셨다면, 저희가 찾아드립니다!! 1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2016. 1999년에 발생한 미국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격 사건 가해자 부모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몇 문장으로 요약하기 어려울 정도로, 총 34년간의 일을 수없이 반추하고 숙고하여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가, 사건을 벌인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이었는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변명이나 명예회복에 대한 시도 없이 사건 이후 가해자의 가족들이 어떤 일들, 생각과 감정을 겪어왔는지 솔직하고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기도 합니다. 가해자 중 한 명의 어머니가 쓴 책이라는 점에서, 출간을 앞두고 편집부는 이 책을 어떻게 사려 깊게 잘 소개할 수 있을까 고민이 컸는데요. 본래 무척 조용한(!) 반비 블로그에 500여 개의 댓글이 달려 구성원 모두가 바짝 긴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이 궁금한 분들은 출간 직후 포스팅했던 담당 편집자의 글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 『걷기의 인문학』, 리베카 솔닛, 2017. ‘걷기’라는 가장 보편적인 행위의 철학적이고 창조적이며 혁명적인 가능성을 탐색하는 책이자, 걷기에 관한 가장 다층적이고 비인습적인 탐구라고 할 만한 책입니다. 이 책에 담긴 걸으면서 사유하고, 걸으면서 창조하고, 걸으면서 연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의 생각을 더 깊이, 더 오래, 더 멀리 나아가게 하는 걷기의 힘을 실감하게 됩니다. (솔닛 책을 만든 담당자들은 한동안 걷기, 여행, 방랑에 취하게 된다는 소문…!) 3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2016.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란, 말하는 행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읽기와 쓰기, 고독과 연대, 어머니와 딸, 삶과 죽음, 질병과 돌봄 같은 주제들을 다룹니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경유하여 감정이입과 여행, 돌봄이라는 노동을 통한 이해와 화해에 대해 말하는 책이고요. “가장 구체적인 ‘잠언’”이며 “노동하는 여성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 평한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의 추천사가 인상적입니다. 이야기를 사랑하고 이야기의 힘을 믿는 독자분들에게 꼭 맞는 책입니다. 4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임동근·김종배, 2015. 오늘날 서울(수도권)이라는 독특한 메트로폴리스를 만들어내고, 또 그만큼 독특한 ‘서울 사람’의 삶을 만들어낸 통치술과 특정한 선택들을 역사적으로 되짚어보면서 그 효과와 부작용을 살펴보는 책입니다. 많은 독자분들이 이 책을 꾸준히 찾아주고 계신데요. 한국에만 있는 동사무소는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다세대 주택은 이토록 많은데도 왜 지배적인 주거 양식이 못 됐는지, 서울숲에는 왜 그렇게 비싼 주상복합아파트가 많은지 등등, 무엇보다 책이 풀어내는 구체적인 서울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진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5 『문화로 먹고살기』, 우석훈(글)·김태권(그림), 2011. ‘문화’에 대한 관심은 지금도 여전히, 그 어느 때보다 높은데요,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문화로 먹고살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질문합니다. 문화를 다룬 책은 너무나 많지만, 이 책은 경제학자, 생태학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문화 담론으로, 경제학적 관점에서 문화를 ‘숫자’로 따져보는 작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리베카 솔닛 Rebecca Solnit ⓒTrent Davis Bailey 반비에서 출간한 솔닛의 책 『멀고도 가까운』 『걷기의 인문학』 『길 잃기 안내서』 『마음의 발걸음』은 모두 꾸준히 독자분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그간 반비에서는 솔닛의 저작 가운데서도 문학과 예술, 역사와 철학, 정치, 개인의 경험을 넘나들며 하나의 주제를 깊이 탐구하고 성찰하는 에세이들을 내왔는데요. 그 주제의 목록들은 읽기와 쓰기, 어머니와 딸, 고독과 연대, 걷기의 역사, ‘길 잃는다’는 것의 의미, 정체성과 여행 등입니다. 그중 첫 번째로 출간된 『멀고도 가까운』에 얽힌 일화가 있는데요. 『멀고도 가까운』을 옮긴 김현우 피디님이 샌프란시스코 여행 중 방문한 서점의 “캘리포니아 출신 작가들만 모아 놓은 서가”에서 작가 솔닛을, 이 책을 발견하곤 반비에 연락을 하셨어요. 마침 반비에서는 『걷기의 인문학』 재출간 작업을 준비 중이었고, 이 책에도 빠져들지 않을 수 없어 곧장 출간을 결정했습니다. 💌 『페미니스트 타임워프』의 출발점이 된 기획안을 찾아보니 2015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페미니즘 ‘리부트’가 시작되던 즈음이고, 이 새로운 독자들과 함께 한국 사회에서 전개되었던 페미니즘 담론을 일별하는 책이 필요하다는 다급함으로 기획안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적합한 필자를 찾는 데에 오래 걸렸고, 마침내 세 분 저자들을 만나 만들게 된 책은 오히려 한국 사회의 역사 자체를 페미니즘의 눈으로 다시 읽는 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꼭 필요한 독자들을 알맞게 찾아가게끔 길을 잘 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독자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는 매 책을 낼 때마다 고민하는 문제이지만, 이 책은 독자들의 필요를 가장 앞에 두고 기획했던 책이니만큼 자주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10주년 기념으로 반비 페미니즘 도서 전자책 반값 대여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으니, ‘내가 바로 이 책이 아직 찾아오지 못한 독자다!’ 하시는 분들은 이번 기회에 한번 살펴보심은 어떠할지!) ―편집자 Y 💌 질문과 빈칸들로 가득 찬 『마더북』을 처음 펼쳤을 때의 긴장감(!)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내 엄마의 역사를 아나요?"라는 카피와 마주했을 때는 더 막막했죠. 퀘스천북, 라이팅북 출간은 반비로선 새로운 도전이었고, 내 어머니의 삶에 질문을 던져보는 일도 난생처음이었기 때문인데요. 고백하자면 저는 이 책을 많이 알리는 데에도, 저희 엄마에게 다시 돌려받는 데도 실패했습니다. '아직까지는'요. 엄마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어떨 때 가장 즐겁고 감동받는지, 나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이 남아 있는지, 『마더북』이 품은 질문들을 꺼내는 것이 조금 많이 어렵고 부끄러운 저 같은 딸들이 많다는 것 잘 압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5월은 무슨 달? 가정의 달!) 『마더북』을 어머니께 선물하시고, 아주 오랜 시간 간직할 만한 소중한 책을 가질 기회를 자기 자신에게 선물하세요. (갑자기 장사치로 끝내기…?😇) ―마케터 홍짜장 💌 개인적으로 생각보다 못 떠서(?) 아까운 책은 2013년에 나온 『X이벤트』입니다. 문명 붕괴 시뮬레이션 11가지 중에 당당히(?) 전염병의 창궐이 들어 있네요. 세계가 잘 굴러가는 듯하지만 한 가지 취약한 부분을 잘 보여준 책이고, 앞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큰 방향을 제시하는 좋은 책인데, 크게 주목받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저 11가지 시뮬레이션은 당연히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너무 거시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 같지만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그런 책이었습니다. ―디자이너 N 💌 많은 도움이 필요했지만 '담당 편집자'라는 이름을 달았던 첫 책 『건축 멜랑콜리아』. 당시 편집기획안을 보면, 핵심 독자를 “90년대 이후 진지한 문화비평에 대한 갈증이 있는 40대 이상 독자”와 “건축 및 도시 공간 관심 독자”로 설정했는데요. 원고 모니터링이나 패키징 등의 과정에서는 낡고 불편해도 역사를 지닌 건물, 장소에 얽힌 이야기에 관심(과 이상한 노스탤지어)을 품게 된, 저와 비슷한 젊은 층을 포함하는 후자의 확장성에 주력해보고자 했어요. 돌아보면,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저자, 디자이너, 편집부 등과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기보다는 쉬운 타협만 하지 않았나 아쉬움이 듭니다. 책이 최종적으로 독자를 설득하기 전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며 자기 자신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잘 설득해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지나고 나서야 배웠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얼마나 능숙하냐고는…… 묻지 않기로 해요.😂) ―편집자 핖 💌 시간이 지날수록 젠더 갈등이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처럼 느껴지고 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어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서로를 배척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죠. 『이토록 두려운 사랑』은 식민지 조선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어떤 식으로 남녀의 관계 및 문화가 진행되어왔는지에 대한 큰 흐름을 보여주며, 그 안에서 저자의 문제의식을 더하고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책입니다.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모든 건강한 관계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자 김신현경의 이야기들은 분명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다운 소통을 실현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에요. 『이토록 두려운 사랑』이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평행선을 좁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추천하고 싶습니다. ―디자이너 땅콩 이번 책타래 어떻게 보셨나요? |
책과 책을 잇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