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젊은 층에서 여성혐오가 점점 거세어지고 있는 이때, 위기에 처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성애 연애/사랑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남성 파트너와의 관계에 대해 회의를 품기도 하고, 젠더 이슈를 둘러싸고 너무나 간극이 벌어져버린 시각차를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어떤 여성들은 아예 남성과 친밀성을 나누기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토록 두려운 사랑』은 이처럼 친밀성의 한 양식이 위기에 처한 상황 앞에서, 그렇다면 그 친밀성을 둘러싼 우리의 기대와 욕망은 어떻게 주조되어왔는지, 또 왜곡되거나 훼손되어왔는지 살펴보자고 말하는 책입니다. 저자 김신현경은 이를 위해 나혜석의 「이혼 고백장」으로부터 출발하여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걸그룹 열풍, 「치즈 인 더 트랩」과 같은 웹툰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겪어온 대중문화 및 현상을 텍스트로 삼습니다. 한편 이 책은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변동에 관해 사유할 수 있게 돕는 책이기도 합니다. 민주화 이후 ‘개인’이라는 형상이 어떻게 연애라는 형식으로 대중적 상상의 장에 등장했는지, 경제위기는 이런 개인들의 자기 인식과 관계 맺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신자유주의화와 불안정화는 어떻게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거래될 수 있는 자원으로 만들었는지 등, 지난 30여 년간 한국 사회가 무엇을 꿈꾸었고 무엇이 좌절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지만 특히 사랑과 연애에 대해서는 학문적 분석 못지않게 우리 자신들의 친밀성에 대한 욕구가 어떻게 조형된 것인지 성찰에 이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찌되었든 나는 이 모든 일들이 이번 생에 더 나은 사랑을 하기 위함이라고 믿는다. 이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와 다르지 않다.” ―『이토록 두려운 사랑』 7쪽 『레이디 크레딧』은 한국 사회의 금융화가 성매매 산업과 관계를 맺고 지속되고 확대되어온 방식을 조명합니다. 여성학자 김주희는 활동가 출신 연구자로서 현장관찰과 심층면접을 바탕으로 성매매 산업 구성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동시에, 페미니스트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한국 성매매 산업에서 돈이(그리고 신용과 부채가) 어떤 흐름을 타고 어디에서 누구에게 흘러가는가를 치밀하게 밝힙니다. 책타래 연말결산에서 이 책을 잠깐 언급했었지요. “한국의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에 성매매 문제, 그리고 페미니즘적 시각이 얼마나 핵심이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요. 이처럼 『레이디 크레딧』은 왜 ‘한국 사회의 역사는 페미니즘의 눈으로 다시 쓰여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분석적인 시선으로 2000년대 이후 성매매 여성들이 ‘담보’가 되는 대규모 대출금이 제공되면서 기업형 성매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과정과, 성매매 여성들의 생애가 어떠한 대출의 연쇄를 따라 이동하는가를 추적합니다. 이처럼 ‘지하경제’로만 여겨져온 성매매 산업이 한국의 경제적 현실에서 광범위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그것을 밝혀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한국의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감추고 있던 것, 누구를 수탈하고 착취하며 그것이 확대 재생산되어왔나 하는 것입니다. 21세기 한국 경제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반드시 읽어보셨으면 하는 책입니다. 여기에 더해, 저자 김주희가 『페미니스트 타임워프』에서 서울올림픽 피켓걸에서 버닝썬 게이트까지를 다룬 글 「발전과 젠더, 환대의 성별정치」와 함께 읽는다면, 한국 사회에서 이제껏 이야기되어온 ‘경제 발전’을 젠더적 관점에서 돌아볼 수 있도록 많은 시사점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 책은 성산업이 여성에게 부과하는 부채를 중심으로, 업소 창업 자금, ‘화대’, 술값, 여성들의 수입, 꾸밈 비용, 생계비 등 돈의 흐름 속에서 여성들이 즉각적으로 화폐화 가능한 존재가 되는 방식을 분석한다. 말하자면 여성이 성산업을 거쳐 상품이 되는, 상품화 과정에 대한 분석이라 볼 수 있다. 성매매 산업은 여성에게 낙인을 찍는 동시에 거래 가능한 ‘매춘 여성’으로 만들어 이익을 실현한다.” ―『레이디 크레딧』 13쪽 “신경이 과민한 청년남녀는 한번에 5쪽 이상을 넘게 읽지 말라.”라는 카피(이는 원래 1920년대에 판매된 책 『아귀도』의 광고 문안이라고 합니다.)를 달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 박차민정은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의 풍경으로 우리를 데리고 갑니다. 이 시기 식민지 조선은 ‘변태성욕’, ‘반음양’, ‘여장남자’, ‘동성애자’와 같은 새로운 분류가 처음으로 등장하던 시공간인 동시에, 의료, 대중문화, 자본주의가 싹트면서 독특한 근대성이 형성되던 시공간이기도 합니다. 박차민정은 이런 배경에서 대중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이 ‘이상하고 기묘한 사람들(queer)’의 초상을 그려냄으로써,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의 경계가 어떻게 만들어져왔는가를 밝힙니다. 저자가 수집하고 분석해 펼쳐 보여주는 무수히 많은 자료와 사례만으로도 흥미진진하고 풍족한 책입니다. 남장을 하고 남학교에서 공부하고자 했던 여성들, 탐정소설의 유행 속에서 언론에 등장한 ‘변태성욕자 연쇄살인마’의 형상, 당시 의학적 담론 속에서 성전환자가 이해되었던 방식, 여학생들 사이의 낭만적 사랑의 형식이었던 ‘S관계’……. 박물지를 방불케 하는 이 기록들을 읽으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퀴어한 존재들이 어떻게 정의되고 또 이해되고 있는지를 돌이켜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작업은 푸코의 말을 따르자면, “현재와 과거를 연결해주는 나약한 선을 추적해감으로써 왜 그리고 어떻게 현재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되었을 수도 있는지를 파악하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이 소개할 퀴어한 존재들, 기이함과 낯섦을 통해 발견되는 과거가 현재의 규범들 역시 낯설게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조선의 퀴어』, 12쪽 |
책과 책을 잇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