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알고 있나요? 지하철 개찰구에 카드를 찍을 때 생기는 잠시간의 틈을? 처음 서울에 올라와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게 됐을 때 카드를 찍었는데도 개찰구 바가 돌아가지 않아 자꾸만 턱턱 부딪치곤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물 흐르듯 지나가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 싶기도 하고, 어쩌다 친구들하고 있을 때 그렇게 뒤처지면 괜히 부끄러워 더 과장해 바를 돌리기도 했어요.
개찰구를 통과하는 사소한 일조차 낯선 곳에서는 익혀야 할 것이 되는데, 낯선 문화 속에서 병에 걸린 아이를 치료해야 한다면 얼마만큼의 ‘틈’을 익혀야 할까요? 『리아의 나라』 속에서 미국 의사들과 미국에 처음 도착한 리아의 가족은 아이를 구한다는 같은 목적을 두고도 이 틈을 발견하지 못해 헤매게 됩니다. 책의 저자 앤 패디먼은 이 사이에서 성급히 미국 의료 체계의 손을 드는 대신 균형 잡힌 시선으로 미국에 건너온 이민자 가족이 마주해야 했던 문화의 틈을 섬세히 짚습니다. 9년에 걸친 그의 취재는 자연스럽게 문화 충돌에 관한 질문, 이를테면 문화가 부딪칠 때 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문화 간 권력의 차이 속에서 진정으로 소통하는 것이 가능한지와 같은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울산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프가니스탄 학생들부터 깻잎을 따는 이주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올해만 해도 한국에 정말 많은 문화 간 충돌이 가시화되었어요. 그들에게 한국이 얼마나 거대한 틈으로 다가올지 생각하며, 또 그 틈을 좁힐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며 이 책을 편집했습니다. 『리아의 나라』와 같이, ‘다른 이와 산다는 것’을 돌아보게 할 책 두 권을 함께 소개할게요.—편집자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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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저자는 서로를 전혀 모르던, 심지어는 혐오하던 사람들이 직접 대면하고 함께하면서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모습들을 취재해요. 이를 통해 타인을 혐오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특별히 너그러운 누군가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임을 거꾸로 드러내지요. 진솔한 대화를 통해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았던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어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지만, 만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그것이었지요. 이렇게 생각하니 『리아의 나라』에서 난민과 의사들의 관계에 한계가 있었던 이유도 더 분명히 알 수 있었어요. 『리아의 나라』 속 서로를 이해하고 싶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혐오 없는 삶』 속 평생을 서로 혐오했지만 대화를 나누게 된 사람들. 같은 듯 다른 두 책을 함께 보면서 타자를 혐오하지 않고 포용하는 문제를 더 깊게 고민해볼 수 있었어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다면, 예를 들어 인종주의, 동성애 혐오, 이슬람 급진주의, 무정부주의를 내려놓게 하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얼마나 자주 혹은 얼마나 크게 말하든 상관없다. 그들에게 실제로 보여 주어야 한다. [……] 증오와 싸우고 사회 분열을 극복하고 싶은 정부는 적들, 반대자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만남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인간이 전혀 다를 수 없음을 깨달으며, 타인을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293~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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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의 나라』를 편집하면서, 또 이주민 등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을 대하는 한국의 현실을 보면서 왜 사람은 타인을 알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 사례를 『리아의 나라』에서 확인했으니 그 아래 깔린 이유와 원리를 알아보고자 이 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사람, 장소, 환대』는 우리가 어떻게 인간에게 사람의 지위를 부여하고 박탈하는지 사람과 장소, 환대라는 세 개념의 맞물림을 통해 설명합니다. 사회가 호의를 베풀지만 그것이 도리어 타자를 모욕하기도 한다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리아의 나라』에서 난민들은 편리한 현대식 아파트를 제공받지만 여전히 논밭을 원했는데요, 이전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 행동이 실은 자신들의 공간을 되찾고자 하는 노력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새로 발견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사람, 장소, 환대』를 옆에 나란히 펼쳐 『리아의 나라』 속 현상을 다시 읽어보는 것도 즐거운 독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쟁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대비하고 또 준비해야 하는 사건으로 남아 있는 한, 사람들은 그들의 자리의 안정성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그들은 언제라도 인민의 적으로 규정되어 성원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 환대는 그러므로 전쟁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 신원을 묻지 않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 복수하지 않는 환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절대적 환대이다. 누군가는 우리가 한번도 그런 사회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운동의 현재 속에 그런 사회는 언제나 이미 도래해 있다.”―24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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