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을 다룬 책을 이야기하면서 결코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책입니다. 정신질환에 관해 알고자 하는 사람이든 쓰고자 하는 사람이든 한번은 마주치게 되어 있는 책이기도 하고요. 앤드루 솔로몬은 그 자신이 중증 우울증을 평생 앓아오고 있는 병자로서 자신의 이야기에서 이 책을 시작하여, 수많은 다른 환자들을 인터뷰하고 우울증의 심리학, 의학, 역사를 망라하며 누구라도 이 병에 관해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게 돕는 통합적인 책을 써냈습니다. 한편 이 책은 깊은 우울이 가져오는 절망 속에서도 회복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음을 설득하는 아주 아름다운 논픽션이기도 한데, 이는 저자가 가진 인간에 대한 애정,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제게도 이 책은 몇 번을 반복해서 읽은, ‘인생의 책’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책타래를 준비하면서 오랜만에 다시 책을 들추어보았는데요. 최근에 출간된 개정판에는 100페이지 남짓 되는 ‘그 후’라는 챕터가 새로 추가되어 있습니다. 이 챕터에서 솔로몬은 초판이 출간된 이후 밝혀진 여러 연구 결과와 새로운 사실들, 정신질환을 둘러싼 사회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고 또 여전한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아직까지도 재발하는 우울증과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가, 그럼에도 삶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고 지속되는가 역시 이야기합니다. 이 대목을 읽는 심정은 마치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오랜 친구와 몇 년 만에 안부를 나누는 것과 같았는데, 책 자체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계속되고 있는 솔로몬 자신의 투쟁을 담은 이 안부가 이상한 위안을 안겨주는 면이 있었습니다. “나는 몇 년씩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아 왔지만 솔직히 말해 전혀 모르겠다. 화학작용이나 의지보다 강한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자아의 반란을 극복하도록 해 준 나, 반란의 화학작용들과 뒤이은 관념 작용이 다시 제자리에 정렬할 때까지 버텨 준 통일론자 나. 그 나는 화학적인 문제일까? 나는 심령주의자도 아니고 신앙도 없이 자랐지만, 내 심장부에는 자아가 무너진 상태에서도 굳게 버티는 근본적인 힘이 존재한다. 이것을 체험한 사람은 이것이 결코 화학작용 같은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안다.”―『한낮의 우울』, 131~132쪽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한낮의 우울』의 ‘불안 편’이라고 할 수 있을 책, 『한낮의 우울』을 전범 삼아 썼으리라 짐작하게 되는 방향성과 구성을 갖춘 책입니다. 저널리스트이자 극심한 정신질환을 평생 앓아온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병을 둘러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엮어서 쓴 책이라는 점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책의 톤은 사뭇 달라서, 스콧 스토셀의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는 대단히 유머러스한 책입니다.(단순화해서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런 톤의 차이는 우울과 불안의 차이에서도 일정 부분 기인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자의 이런 유머감각은 무엇보다 자신의 증상과 고통을 객관화해서 한 발 떨어져서 보는 시각에서 나옵니다.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에서 리단은 “병을 모시고 사는 것만큼이나 병을 버려두고 놀러 나갈 수 있는 것이 바로 병과 대항할 수 있는 최후의 힘이다. …… 웃긴 것과 병적인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만약 병을 두고 웃을 일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 종이 한 장을 넘기면 그만이다.”(115쪽)라고 말합니다. 스토셀의 글쓰기는 병을 흔들 수 있는 이런 유머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아주 좋은 사례이기도 합니다. 여담으로, 책의 구성 곳곳에도 스며 있는 불안증적 환자의 면모를 발견하는 것도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일인데요. 이 책에는 각주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편집하는 동안 꽤 애를 먹은 부분이기도 했지만, ‘얼마나 (틀리거나 빼놓은 게 있을까 봐) 불안했으면 이렇게까지 각주를 달았을까?’ 싶기도 했어요. 덕분에 독자로서는 본문에 담기지 않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정보를 각주를 통해서 얻게 되기도 하고요. “필록테테스는 왕의 아들인데 뱀에 발을 물려 생긴 상처가 곪아 낫지 않았다. 그런데 이 상처 때문에 활을 쏘면 백발백중이었다. 필록테테스의 “지독한 냄새가 나는 상처”와 “초인적인” 사격술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어쩐지 이 이야기에 마음이 끌린다. 소설가 지넷 윈터슨의 말을 빌리면 이 이야기에는 “상처와 재능이 함께한다.” 곧 나약함과 수치심이 초월, 영웅적 자질, 구원의 가능성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내 불안은 낫지 않는 상처처럼 가끔은 나의 삶을 막아서고 나에게 수치심을 안겨준다. 그렇지만 동시에 어떤 힘의 원천이자 은총이기도 하다.”―『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422쪽 케이 레드필드 재미슨은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그 자신이 양극성장애 환자이기도 한 저자입니다. 양극성장애와 싸워온 경험을 담은 회고록 『조울병,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 양극성장애와 예술의 관계를 다룬 『천재들의 광기』 등 여러 권의 책이 한국에 소개되기도 했는데요. 함께 읽었으면 하고 제안하는 책은 『자살의 이해』입니다. 제목 그대로의 책입니다. 자살의 역사와 심리학과 생물학, 그리고 예방과 애도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정신질환이 가져올 수 있는 가장 나쁜 증상 중 하나가 자살일 것입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혹은 그런 지인을 둔 사람(그리고 이 둘은 종종 겹치지요)에게는 자살사고나 자살 시도가 늘 가까이 도사리고 있는 문제이며, 그중에는 자살 사별자의 수도 적지 않습니다. 재미슨 역시 자신의 자살한 친구, 생전에 서로 자살 충동이 일면 반드시 만나서 자살을 단념시키도록 설득하자는 맹세를 했던 친구와의 이야기로 책을 엽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전문가이자 당사자로서 수집한 수많은 정보와 사례입니다. 재미슨은 독자가 자살에 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어떤 사람들이 자살에 취약하고 자살사고의 바탕에는 어떤 심리가 자리하며 정신병리는 자살과 어떻게 밀접한지를 하나하나 설명합니다. “그동안 나는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가르치는 젊은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임상적 과학적 연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나는 내 병에 대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공부했고, 자살의 심리학적, 생물학적 결정요인에 대한 문헌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호랑이 조련사가 호랑이의 마음과 움직임을 배우듯이, 비행사가 바람과 공기의 역할을 배우듯이, 나는 내가 앓고 있던 병과 그 종착점에 대해 배웠다. 나는 죽음을 부르는 그 어두운 기분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웠다.”―『자살의 이해』, 19쪽 더 잘 알게 되는 것이 반드시 희망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알지 못하던 때와는 다른 길이 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만 충분히 말하고, 기록하고 관찰하자.”(390쪽)라는 리단의 말을 옮기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리는 지도가 완벽할 필요는 없다. 병이 기상천외한 행동을 보이며 우리를 앞지를 수도 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안에서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정신병의 나라에서.”(391쪽) |
책과 책을 잇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