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타래 #60에서 『이불 속에서 봉기하라』를 소개하며, 출판사명 '생각정원'이 누락되었음을 알립니다. 생각정원 관계자 분들께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누락을 지적해주신 구독자 분께는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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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 동안 책타래 구독자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사셨나요? ‘좋은 삶’을 사셨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좋은 삶이란 어떤 삶인가요? 철학자들은 좋은 삶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좋은 삶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질문해왔습니다. 『의존을 배우다』의 저자 에바 페더 키테이 역시 좋은 삶을 성찰합니다. 기존 철학자들의 질문과 차이가 있다면, 장애를 가진 삶도 좋은 삶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는 것입니다. 키테이는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좋은 삶에 ‘정상성’이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왜 우리는 정상성을 욕망하는지를 탐구합니다.
하지만 키테이는 우리 모두가 꼭 정상성을 바라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소설 「좋은 시골 사람들」의 주인공 조이를 그 예시로 드는데요. 신체적 장애가 있는 조이는 오히려 자신이 정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데에서 자긍심을 느낍니다. ‘헐가’라는 못난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이고, 표준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을 거부하지요. 은연중에 모두가 정상이 되기를 바란다고 단정하며 책을 읽고 있던 제게는 “아, 나도 평범한 사람보다는 개성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길 바랄 때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던 부분이었습니다.
키테이는 현실의 장애인 당사자들의 말을 빌려서 정상에서 벗어난 것으로 여겨지는 ‘장애와 함께 사는 삶’ 역시 만족스러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요. 정상은 좋은 것, 비정상은 나쁜 것이라는 이분법이 허물어지게 되면,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삶이 주어지게 될까요? 모두가 좋은 삶을 사는 세계를 그리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대해 고찰하는 책을 소개합니다.―편집자 my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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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을 배우다』에는 장애 아동의 부모가 쓴 글이 자주 인용됩니다. 그중 하나는, 자폐성장애를 가진 이저벨의 아버지이자 인류학자인 로이 리처드 그린커의 글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이저벨의 세계(Isabel's World)』라는 책 속 글귀로, 키테이는 딸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받기 위해 어떻게든 아이에게 ‘비정상’ 딱지를 붙여야 했던 그린커의 역설적인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이저벨의 세계』가 딸의 장애에서 출발해 자폐성장애라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간다면, 『정상은 없다』는 정신의학에 몸담아온 가족사에서 출발해 정신 질환에 찍힌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탐구합니다. 그린커는 자신의 가족사와 풍부한 인류학적 자료를 엮어내며, 정상이라는 개념이 문화적으로 구성된 허구임을 밝혀냅니다.
“예를 들어, 미크로네시아에는 정신적 장애를 일탈로 해석하지 않고 친족 관계를 공고히 하는 관계 경험으로 해석하는 사회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고통이 사회적이기보다는 개인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의료진과 싸운다. 그들의 관점에서 정신적 고통은 가족을 더 가깝게 만들어 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485쪽
그린커는 정신 질환을 질병이나 일탈로 분류하지 않는 비서구의 사례를 통해 비정상이라는 낙인에 도전할 가능성을 엿봅니다. 낙인을 출발점으로 삼아 뿌리깊은 차별과 불평등, 오명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보자는 그린커의 주장은 정신 질환자 수가 늘어나고 있는 요즘, 특히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관리에 대한 장벽과 정신 질환자들의 이중적 고통을 ‘낙인’이라는 말로 축소할 때 부정적인 태도와 믿음, 차별과 편견의 곡절과 가변성에 대한 논의가 마치 인간 경험의 세부 사항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멈춰 버린다. 내가 여기서 비록 미미하게나마, 낙인이 꼭 대화의 마침표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기를 바란다. 낙인이 우리의 경제적·사회적 역사에 너무도 깊숙이 뿌리박혀 있어서 종종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가 당연시하는 가치와 관점으로 우리의 관심을 이끌 수 있다면, 그것은 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48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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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이 허구의 개념이라면, 정신 질환이나 장애를 정상인 상태로 ‘치유’하려는 행위는 과연 옳을까요? 장애가 없는 세계가 더 나은 세계인지를 질문하며, 키테이는 장애는 결핍이나 부재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게 된 뒤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었다는 사례를 소개하면서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소아마비나 천연두처럼 치료되어야 하는 질병도 있다고 인정합니다.(이는 장애를 일으킨 질병과 그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경우라고 말하지요.)
일라이 클레어의 『눈부시게 불완전한』은 장애와 치유라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고민에 대해 사유하는 책입니다.(책타래 장바구니를 통해서도 소개되었어요.) 장애가 있다고 해서 망가진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역설하며, 치유라는 폭력을 경험한 존재들과 자신의 몸-마음을 계속해서 연결해갑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점은, 저자가 ‘치유 이데올로기’에 강력하게 반대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이 품은 모순을 끌어안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수술과 호르몬요법으로 정상으로 태어난 몸-마음을 재배치해야 했던 자신의 트랜스 정체성을 탐구할 때에 더욱 커집니다. 자신의 몸-마음에서 출발한 일라이 클레어의 질문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을 허물고 우리를 “부서지고 휘어진” 눈부심으로 이끕니다.
“치유와 씨름하는 일은 상충하는 힘과 모순의 미로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수익을 내는 일은 삶을 연장하는 일 옆에 나란히 놓인다. 박멸을 주장하는 일은 편안함을 제공하는 일 위에 놓인다. 고통과 통증을 증식하는 일은 비도덕적인 연구를 용인한다. 이 모든 것들이 공적으로는 의료산업 복합체라 불리는 형태 없는 뭉치 속에, 사적으로는 우리의 침실과 부엌, 욕실 속에 산다. 이 미로 안에서 나는 계속해서 막다른 길을 맞닥뜨리고, 계속해서 같은 교차로를 지난다. [⋯⋯] 나는 모든 모순을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싶어서 그 미로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나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이 모퉁이와 회전 교차로, 막다른 길에서 나가고 싶다. 치유를 모순적인 진창으로 남겨두고 싶다.”―316~31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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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 학자로 식민주의와 국가주의, 디아스포라와 소수자의 삶에 대해 써온 에세이스트 서경식 선생님께서 지난 18일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에는 1991년 출간된 『나의 서양미술 순례』로 알려지기 시작하여, 『디아스포라 기행』, 『고뇌의 원근법』, 『시의 힘』,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등의 책을 쓰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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