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ip: 2020년은 …………(말줄임표만 무한정 쓰고 싶은 심정) 무엇보다 팬데믹의 영향이 절대적인 한 해지요. 집에 있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 많았고, 종종 고립감과 공포를 느끼기도 했어요. 책을 더 들춰보기도 했는데(넷플릭스는 몇 배로 봤고요.), 질병, 고통, 장애, 몸, 돌봄 등을 주제로 한 것이 많았습니다. 지금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보다는 밀접한 주제, 피하고 싶은 주제를 다룬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아픔이나 병, 불안과 거리 두기를 해볼 수 있었고, 개인보다 큰 단위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안정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면역에 관하여』 『아픈 몸을 살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난치의 상상력』 또 『은유로서의 질병』 등이 그런 책이었습니다. 💌 Y: 저 역시 질병, 장애, 고통을 다룬 책들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팬데믹의 영향도 있었고, 많은 인문사회 출판사들이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게 된 해였던 것도 같아요. 『망명과 자긍심』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은유로서의 질병』 등의 책들이 떠오르네요. 일종의 재난 상황을 이겨나갈 힘을 얻기 위해 『이 폐허를 응시하라』와 같은, 재난을 다룬 책을 찾아서 읽기도 했습니다. 한편 저는 고전에 몰두한 한 해이기도 했는데요. 『도시를 걷는 여자들』을 만들면서 읽게 된 버지니아 울프가 그러했습니다. 울프의 『런던 거리 헤매기』 『런던을 걷는 게 좋아,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와 같은 도시 걷기 에세이들이 출발점이 되어주었는데, 걷는 경험에 관한 생생하고 감각적인 글쓰기가, 올해 상당 부분 잃어버린 ‘밖으로 나가는’ 경험을 대신해주는 면이 있었습니다. 💌 Y: 『레이디 크레딧』. 성매매의 금융화를 다룬 김주희 선생님의 박사 연구 결과물을 단행본화한 책입니다. 몇 년 전 이미 이 연구를 현실문화에서 책으로 내기로 계약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아쉬워했는데요, 올해 책이 나와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에 성매매 문제, 그리고 페미니즘적 시각이 얼마나 핵심이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처럼 탄탄한 국내 연구를 먼저 책으로 만들고자 한 눈 밝은 편집자들을 다시금 질투하게 되었지요. 💌 pip: 『커밍 업 쇼트』. 편집자로 늘 꿈꾸는 일 중 하나는 뛰어난 연구를 단행본으로 만들어서 그 연구 내용이 더 많은 독자에게 읽힐 수 있게 하는 것인데요. 『커밍 업 쇼트』가 그처럼 훌륭한 현장연구를 잘 만든 책으로 펴낸 사례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이 경우 번역서이기에 이런 좋은 타이틀을 찾아내는 감식안을 부러워했어요. 『커밍 업 쇼트』는 미국 노동계급 청년 100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들이 느끼는 불안과 불확실성의 정체, 이들을 불안정으로 내몬 사회적 조건을 들여다봅니다. 그럼으로써 왜 현재 청년 세대가 성인이 되지 못하는지를 분석하죠. 읽는 동안 단행본화 과정에서 어떻게 인터뷰 자료와 저자의 분석을 지금처럼 긴밀하게 효과적으로 엮어냈을까를 생각해보곤 했습니다. 💌 Y: 리시올. ‘플레이타임’ 브랜드로 훌륭한 인문 에세이들(오브젝트 레슨스 시리즈)을 출간하면서 시작할 때부터 눈여겨봐온 출판사인데요. 올해는 『감정화하는 사회』 『커밍 업 쇼트』 『관광객의 철학』 등 현재 한국 사회의 주요한 이슈들을 해석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는 책들을 출간했지요. 타이틀을 선정하는 예리한 눈, 세련된 디자인 감각과 패키징이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한 한 해였고, 그런 의미에서 내년에는 또 어떤 좋은 책을 소개할지 기대가 됩니다. 💌 pip: 리시올. 텔레파시가 통했나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책의 분야, 주제, 형식, 원서의 발행지가 달라도, 늘 지금 이곳과 맞닿아 있는 흥미로운 책을 내는 출판사니까요. 제가 속한 시대에 관한 뛰어난 통찰을 리시올이 펴낸 인문사회서에서 매번 발견합니다. 다양한 책들 간의 연결점이 느껴진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과감하면서도 안정적인 디자인과 만듦새를 보면서는, 리시올 디자이너·편집자분들은 어떻게 함께 일하실까 궁금하고요. 그래서 올해 제가 편집한 책들의 모델 도서에는 『자본주의 리얼리즘』 『감정화하는 사회』 『알고 싶지 않은 것들』 등 늘 리시올의 책이 있었습니다. 지난 책타래 한 편을 리시올 책으로만 채우기도 했는데요, 내년에도 이 출판사의 핵심 독자이고 싶어요! 💌 Y: 그야말로 고전이라 언급하기 민망하기도 한데요, 20대 초반에 읽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다시 읽은 것이 제게는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페미니즘 필독서’로만 읽었던 책인데, 대단히 정교하고 독창적으로 쓰인, ‘재미있는’ 글이더라고요. 지금까지도 여성과 예술에 대해서, 여성과 창작에 대해서 힘 있게 이야기하는 글인 것도 물론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뿐 아니라 오래전에 이 책을 읽으신 분들에게도 다시 읽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 pip: 『예언이 끝났을 때』. 이 책이 출간됐을 당시는 ‘사이비’ ‘이단’ ‘재림예수’ 같은 단어가 연일 미디어를 오르내린 직후였지요. ‘세상의 멸망을 예언했던 현대의 어느 집단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연구’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이 책은 대홍수가 일어나는 날, 자신들은 외계의 존재에 의해 구원받으리라는 예언을 신봉했던 종교 집단을 참여 관찰한 기록입니다. 수많은 반대 증거뿐 아니라 심지어 예언의 날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 신념 체계 구조를 분석합니다. 이를 통해 ‘인지부조화 이론’을 구상해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놀랍고, 뜨끔합니다. 2020년 한국에 출간된 1956년도 책이 시의성 있게 다가온다는 점이 슬프고도 재밌었고요. 여러분의 2020년은 어떤 책들이 함께했나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당장 끝나지는 않을 것처럼 보이는 연말, 반비의 책들 그리고 반비가 읽은 책들이 독자 여러분에게도 동반자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올 한해, 반비와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내년 책타래에서 만나요! 😍 이번 책타래 어떻게 보셨나요? |
책과 책을 잇는 편지